서울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 ‘아침 독서운동’을 하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상우야, 책 좀 읽어.”
“아빠 엄마도 안 읽잖아요!”
초등 자녀를 둔 부모라면 집에서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대화다. 학부모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바로 ‘우리 아이 독서량’이다. 서울대 필독서 리스트부터 동·서양 문학전집, 고전 시리즈 등을 사들이며 어떻게든 아이가 책 들고 앉아있기를 바라지만 쉽지만은 않다.
부모는 아이에게 왜 책을 권할까? 부모들은 ‘진짜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아이가 게임을 덜 한다는 말과 통한다. 정보와 지식 습득 시간이 많아지니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고, 공부를 잘하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사회 입시 공식’이다. 독서가 공부의 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공부’란 90점, 100점으로 환산하는 입시용 성적을 뜻하는 게 아니다. ‘공부머리’가 있느냐는 질문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익힐 준비가 되었느냐’를 말한다. <다시, 초등 고전읽기 혁명>을 펴낸 송재환 동산초등학교 교사는 “책 한 권에 담긴 주제와 세부 정보를 파악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이 ‘진짜 공부머리’”라며 “공부머리를 키워주려면 글자를 읽은 뒤 이해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모든 과정을 해볼 수 있는 활동이 바로 독서”라고 강조했다. “영국 런던대 교육연구소가 영국의 16세 학생 6000명을 추적 조사했는데, 초등 시절인 10살 때부터 책과 신문을 즐겨 읽은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어휘력은 14.4%, 수학 성적은 9.9% 높았어요.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 수준보다 성적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게 바로 독서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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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까지 ‘독서태도’ 잡아줘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 독서는, 게임 아이템처럼 빠른 보상이 오지 않는 고리타분한 취미일 수 있다. 게다가 입시 공부하느라 읽을 틈이 없다는 그럴싸한 핑계도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책과 멀어지게 한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하 직능원)에서 ‘한국 고등학생들의 독서활동 실태 분석’ 자료를 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약 16%가 고교 재학 중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 공백’ 비율이 16%에 달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독서 거부감’ 때문이다. 초등 시절부터 책 읽기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경우 고학년이 될수록 교과서 외 다른 책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독서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6년 과정에서 아이들 ‘독서 태도’를 잡아줘야 한다. 조사에 나타난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고교생들’도 어린 시절 책에 접근하는 법을 배웠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력 15년 이상의 베테랑 초등교사들은 “학년별로 독서법과 책 고르는 법 등을 부모가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부가 쉬워지는 초등독서법>을 쓴 김민아 병점초등학교 교사는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학년별 교과과정을 참고해 독서 전략을 짜는 게 좋다. 전략은 곧 ‘독서 태도’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먼저 유치원에서 초등 1학년 시절까지는 ‘초기 독서기’로 잡는다. 아이들이 책을 보고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기초 단계다. 8살 무렵까지는 주로 학교생활 적응에 필요한 책들을 읽게 하는 것이 좋다. 일어나고 잠자기, 시간 개념 알아보기, 공중예절 등에 대한 다양한 그림책들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어보는 것이다. 책꽂이에서 아이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을 분류해보도록 하면 동기 부여도 된다.
초등 2~3학년부터를 ‘독립 독서기’라고 부른다. 호기심이 폭발하는 만큼 흡수력도 좋다. 통합교과가 사라지고 사회나 과학처럼 ‘단독 과목’이 생기는 때다. 각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활용하는 단어도 다양해지는 시기다. 김 교사는 “아이 스스로 책을 고르게 하고,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부모가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초등 4~6학년부터는 ‘독서 확장기’다. 4학년 교과서부터 난도가 높아져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며 학업 스트레스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정보를 다룬 글에 관심이 높아지고 ‘선과 악’, ‘삶과 죽음’ 등 추상 개념을 본격적으로 이해하는 때다. 우정과 사랑, 자연과 문명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 갖기 시작할 이 시기에 정독, 통독, 속독 등 다양한 읽기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 실제 부모와 아이가 각 독서법으로 ‘실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김 교사는 “독서태도를 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독서 시간 경영하기’다. 학원과 숙제로 바쁜 아이들이 하루 중 여유 있는 시간을 5~10분이라도 찾아내 활용해보면 성취감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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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잔소리보다 힘이 세다
<논어>, <명심보감>, <채근담>…. 사실 요즘 부모들도 잘 읽지 않는 책이다. 하지만 초등 독서법에서 ‘고전’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고전은 오랜 시간의 검증을 거친 필독서이기 때문이다. 송재환 동산초등학교 교사는, 8년째 ‘전 학년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 교실에 ‘고전 읽기’를 도입한 것도 송 교사가 처음이다. 이 독서법에 참여한 학생 수만 1200명이 넘었다. 동산초의 고전 읽기 프로그램은 ‘뭘 좀 아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6년 동안 고전 읽기를 진행하는 이 학교 입학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이사를 올 정도다.
공교육 현장에 코딩·메이커교육이 대세인 요즘, 이런 ‘아날로그 독서법’을 전파하는 이유는 뭘까? 송 교사는 ‘생각의 뿌리와 공부의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초등 독서법 가운데 ‘고전 읽기’가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송 교사는 “학교에서 <소학>, <명심보감> 등을 읽은 뒤 아이들의 어휘력과 표현력이 좋아졌다. 모르는 한자의 뜻을 찾아본 뒤 수업시간에 활용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커진다”고 설명했다. “<논어>도 조선시대부터 12세 아이들이 읽었던 책이지요. 고전을 읽은 뒤 교과서가 쉽게 느껴져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물론 아이들 혼자 몫으로 두면 안 됩니다. 무조건 함께 읽어야 합니다.”
‘공부머리’ 키우는 고전 독서법도 가정에서 적용해볼 수 있다. 요일과 시간, 분량과 기간을 정하는 게 첫 단계다.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거실에 둘러앉아 ‘우리가족 북 토크 시간’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책을 미리 읽어오거나 발제문을 준비하는 등 거창하게 진행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가족들이 주1회 정해진 시간에 모여 20분 동안 고전을 함께 소리 내어 읽은 뒤, 내용에 대한 소감 나누기와 간단한 토론 등을 이어가면 된다. 송 교사는 “이렇게 읽으면 당연히 오래 걸린다. <명심보감> 25편을 6개월에 걸쳐 읽을 수도 있다”며 “그런데 가족 모두 함께 읽으면, 한 권의 책을 3~4명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소화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아이들 ‘학습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가족끼리 모여 고전 읽는 것을 ‘부모가 아이에게 봉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40대 부모도 <논어>에서 배움을 얻고, 10대 자녀는 부모와 ‘할 말’이 생기는 소통과 상생의 시간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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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독서 기록장’ 만들어주세요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독서 기록장’을 만들어주라고 추천한다. 공책 한 권에 써도 좋고, 때에 따라 웹 공간을 알차게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현정 화도진도서관 팀장은 “공책에 ‘나만의 서재’ 등 이름을 붙여 읽은 책에 대한 정리를 해볼 수 있도록 기록장을 만들어주면 좋다”며 “책 이름과 읽은 기간, 10줄 내외의 줄거리 요약과 소감을 써보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큰 도움이 되는 포트폴리오가 된다”고 했다.
독서 기록장 정리에 익숙해지면 웹에 ’책 블로그’를 개설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인터넷 공간에는 게임이나 유해 정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함께 교육해주는 것이다. 독서 뒤 블로그 활동을 통해 자신이 흡수한 지식을 다시 정리하고 공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 팀장은 “일상 속 단문 메시지에만 익숙한 아이들이 비교적 장문의 글을 손수 써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초등 시절부터 책 읽은 뒤 글쓰기까지 이어지는 독후 활동을 꼭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