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1일 경기도 김포시 운양동에 있는 유아 하브루타 교육 시설인 ‘토브메오드’에서 아이들이 ‘뱀의 머리와 꼬리’ 놀이를 하고 있다. 왼쪽 서 있는 이는 정향옥 원장, 오른쪽은 김민희 교사. 김태경 기자
“나는 몸이 길고 목이 길어요. 뭘까요?”
“기린….”
“한데 나는 숲에 살고 긴 혀가 있어요. 뭘까요?”
“카멜레온이요!”
“몸도 길고 목도 길고 혀도 길고… 뭘까요?”
“뱀요. 뱀이에요”
지난 8월21일 경기도 김포시 운양동 유아 대상 하브루타 교육 시설인 토브메오드(히브리어로 ‘토브’는 좋다, ‘메오드’는 매우라는 뜻). 약 5평 방에 4~6살 정도 미취학 어린이 6명이 모였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던 김민희 교사는 동화 <뱀의 꼬리와 머리>를 읽기 시작했다.
뱀의 꼬리가 맨날 뒤쪽에서 머리만 따라가는 데 불만을 품고 항의를 했다. 눈이 없는데도 이제는 앞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꼬리는 앞장서게 되는데…. 신이 났던 꼬리는 돌과 나무에 부닥쳐 상처를 입더니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고, 머리와 꼬리 모두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꼬리의 불만은 무엇이었지?”, “뱀은 왜 그런 불만을 품었을까?”, “뱀은 어디에 부닥쳤어?” 아이들은 이 질문들에 대답하고 뱀의 꼬리와 머리가 되어보는 놀이를 했다. 머리가 된 아이는 뱀 머리가 그려진 캡을 썼고 꼬리가 된 아이는 안대를 했다. 꼬리를 맡았던 아이가 앞서 가다가 방 안 작은 탁자에 부닥쳤다.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수업이 끝날 때쯤 김 교사가 질문했다. “화장실 갈 때, 교실로 갈 때 꼭 무조건 앞서 가야 하는 걸까?” 아이들은 “아니요!”, “잘못하면 나도 친구도 다칠 수 있어요”, “친구랑 같이 가는 게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이날 수업은 특징이 있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는 점이었다. 30분가량 수업에서 교사는 20번 정도 질문을 했다.
정향옥 원장은 “하브루타에서 중요한 게 질문이다.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상호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서로 깊은 대화를 하기 힘들다. 따라서 교사가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어린이집에서는 원아는 많은데 교사 숫자는 한계가 있어 그냥 놀게 할 뿐 교사가 개입하기 힘든 것과 차이가 있다”며 “놀이기구도 완제품이 아니라 아이들이 손을 사용해 조립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야 창의성이 계발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브메오드는 지난 4월 개원했다. 비영리 영유아 하브루타 교육단체로 내년에 유아 하브루타 학교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상대방 의견 잘 듣는 ‘경청’이 중요
초등 5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이 있는 주부 김희정씨는 집에서 아이들과 1주일에 1~2시간 정도 시간을 내 하브루타를 한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들이 읽을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숲속에 나무가 쿵 쓰려졌는데 아무도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 소리가 난 것일까 아닌가?’ 이런 식의 질문을 하고 토론한다.
‘앰뷸런스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새벽에 잠을 깼다. 기분이 나쁘다. 아침에 일어나 봤더니 내가 잘 알고 있는 친구네 집이 화재가 나서 친구가 죽었다. 만약 다음에 새벽에 앰뷸런스 때문에 잠을 깬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앰뷸런스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위급한 상황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김씨는 “아이들과 이런 식으로 소재를 정해 대화한다. 그럼으로써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요즘 유대인의 전통적 교육법이라는 하브루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브루타는 히브리어로 ‘동반의식’ 또는 ‘우정’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짝을 지어 공부하는 학습법’을 말한다. 토론과 대화를 강조하는 다른 학습법과 하브루타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 흔히 생각하는 토론과는 차이점 있어
하브루타는 우리가 보통 연상하는 토론과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들어온 디베이트는 편을 갈라 같은 질문 시간, 같은 대답 시간을 주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여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압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브루타는 논쟁을 벌이면서도 서로 함께 ‘계발’되는 게 목적이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다. 지난 8월15일 하브루타미래포럼(대표 심평섭)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엘리 홀저 교수(이스라엘 히브리대)는 “하브루타는 논쟁을 하면서 배우는 학습 방법이다. 단 내가 항상 올바르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건 ‘이기기 위한 토론’이 아니다. ‘설득력 있는 토론'을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뱀의 머리와 꼬리’ 놀이를 하기 전에 김민희 교사가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그는 특히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홀저 교수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들을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듣는 게 중요하다”며 “상대방의 얘기가 다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텔레비전 시사토론이든 선거 때 후보자들 간의 토론이든 자기주장만 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끊는 게 흔한 우리 모습과는 다르다.
하브루타의 특징은 끊임없이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유대인의 지혜를 집대성했다는 책 <탈무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랍비(유대교의 율법 교사)가 한 청년에게 물었다.
2명의 남성이 굴뚝 청소를 하고 내려왔다. 한 명은 얼굴이 깨끗하고 다른 한명은 검댕이가 묻었다. 세수하러 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얼굴에 검댕이가 묻은 남성이 세수하러 간다고 청년이 대답했다. 그러나 랍비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검댕이 묻은 남자는 자기 얼굴이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얼굴 깨끗한 남자는 자기 얼굴에 때가 묻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얼굴 깨끗한 남성이 세수하러 간다.’”
랍비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고 청년은 얼굴 깨끗한 사람이 씻으러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랍비는 “얼굴 더러운 사람은 상대방을 보고 세수하지 않는다. 얼굴 깨끗한 남성은 상대방이 세수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세수하러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무도 세수하러 가지 않는다.”
랍비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고, 청년은 “아무도 씻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랍비는 “똑같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명은 얼굴이 깨끗하고 다른 한 명은 얼굴에 검댕이가 묻는 경우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이다. 하브르타의 학습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토브메오드 아이들이 작은 나무토막으로 각자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 최고의 교육장소는 가정…부모가 스승돼야
하브루타는 가정에서의 교육과 인성을 강조한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하브루타부모교육연구소 김금선 소장은 “하부르타는 결국 '소통'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질문’으로 소통한다”며 “최고의 교육 장소는 어디일까? 가정이다. 인성교육을 학교에서 안 시킨다고들 하는데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스승이 돼야 한다. 부모가 곧 자녀의 스승”이라며 “예를 들어 손님이 오면 자녀에게 ‘들어가 책 봐’ 이런다. 그러나 손님과 부모가 얘기하는 것을 자녀가 들으면 진짜 살아 있는 독서가 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가 잘 되는 집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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