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입니다> 장면 갈무리. 서울시교육청 제작, 케이툰 제공
어릴 적 어두운 만화방에 처박혀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을 쌓아두고 종일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쾌적한 만화카페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거나 온돌 형태의 방에 누워 만화를 봅니다.
이보다 더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것, 바로 ‘웹툰’입니다. 웹툰은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의미하는 ‘카툰’(cartoon)을 합쳐 만든 단어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열면 원하는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웹툰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고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떱니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그리는 ‘데일리툰’부터 역사적 사실을 요즘 트렌드에 맞게 각색한 장편 웹툰까지 학교나 학원을 오가며 웹툰을 챙겨 보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인권’ 주제 학생 눈높이서 그린 <전√학생입니다>
# 쌍둥이 라수호, 라수현은 전교 1, 2등을 다투는 모범생 형제. 교사가 수업시간에 소지품 검사를 하고 용모나 복장을 지적하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도 “알아도 모른 척, 일일이 대꾸해봤자 학생은 힘이 없다”고 순응합니다. 몸을 사리고 부딪히지 않는 게 학교생활 편히 하는 방법이라 생각해서입니다.
전학생 정가윤양은 이런 쌍둥이 형제의 태도를 지적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게 오히려 학생들 자신이라며, 학생을 위해 만든 교칙이 학생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이후 쌍둥이와 교사에게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지난해 12월 발표한 웹툰 <전√학생입니다> 내용입니다. ‘전 학생입니다’와 ‘전학생입니다’라는 중의적 뜻으로, 학생 인권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웹툰입니다. ‘이게 다 너희 잘되라고’, ‘문제의 전학생’, ‘학생이 학생답게’ 등 총 4화로 구성했습니다.
최근에는 교육청에서 정책 홍보나 교육용으로 웹툰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전√학생입니다>도 그런 작품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이 ‘인권’이라는 주제를 좀 더 친숙하게 생각해보도록 하기 위해 교육자료를 웹툰으로 기획했습니다. <라면 대통령> 등 청소년에게 인기 있는 웹툰을 연재하는 작가 명랑, 신얼이 제작을 맡았습니다.
명랑 작가는 스토리 구성을 할 때 교육청에서 제공한 인권 침해 사례가 너무 무겁고 다양해서 한 사건에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른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나 갈등 상황을 만들다 보면 교사가 너무 악역이 될까 봐 걱정도 했습니다. 디테일을 살리려고 조카나 주변 학생들에게 등교시간이나 아침 선도활동 내용을 직접 물었습니다.
그는 “공익적 차원의 만화는 대부분 뻔한 내용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 형식이 많았다. 그림은 있지만 글로 풀이한 거랑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작품도 ‘너희 인권은 너희가 지켜라’라는 심플한 주제였는데, 이를 대놓고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하니까 아이들 입장에서 공감이 가면서 스스로 의식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짰다”고 했습니다. <전√학생입니다>는 2개월 만에 20만 건 이상 조회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학생뿐 아니라 어른들도 댓글을 달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서울교육소식’ 누리집(
enews.sen.go.kr)과 올레마켓 ‘KTOON’(
www.myktoon.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급식체’, ‘9시 등교’ 등 학생 밀착형 <생활 웹툰>
“야 이거 봐 개이득임”, “레알”, ‘ㅃㅂㅋㅌ’, ‘ㅂㅂㅂㄱ’.
<경기도교육청과 함께하는, 학생 생활 웹툰>(이하 생활 웹툰) ‘급식체?’ 편에 나온 학생들의 은어입니다. 급식체는 인터넷상에서 ‘급식충’으로 불리는 학생들, 특히 남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문자체를 말합니다. 주로 ‘ㄹㅇ’(레알), ‘ㅇㅈ?’(인정?) 같은 초성체를 쓰며 ‘패륜 드립’을 섞어 쓰기도 합니다.
이 웹툰은 ‘은어를 통해 학생들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거나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상황을 깨닫고 자제 좀 하자’는 나름의 교훈(?)도 담았습니다. 참고로 앞서 나온 말은 각각 ‘아주 크게 이득을 보았다’, ‘정말’(영어 real(리얼)에서 나옴), ‘빼도 박도 못하다+영어 캔트(can’t)’, ‘반박 불가’라는 의미입니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초 블로그(
goedu.goe.go.kr)에 연재할 웹툰 제작을 한국애니메이션고 학생들에게 맡겼습니다. ‘9시 등교’, ‘장애 학생 당번 도우미’, ‘스마트폰 중독’, ‘부모와의 대화’ 등 학생 생활 밀착형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육용 웹툰은 학생들이 무겁고 어려운 주제에 흥미롭게 다가가게 합니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특정 가치관을 심어주기보다 학생 독자가 상황에 녹아들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하는 거죠. 학생들이 웹툰을 보는 이유도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나 웹서핑을 하다 살짝살짝 보기에 접근성이 높고, 내용을 쉽게 풀어내 이해하기 편하다고 합니다.
생활 웹툰은 주제별로 한두 명이 스토리팀과 작화팀으로 나눠 제작했습니다. 회의를 통해 또래 학생이 공감할 만한 소재 10개를 뽑아서 시놉시스를 짰습니다. 만화창작과 박벼리양은 “특성화고에 다니니 일반고 생활을 잘 몰라서 주변에 일반고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각자의 중학교 생활을 돌이켜봤다. ‘장애학생 당번 도우미’나 ‘급식체’도 직접 겪었던 경험을 끌어다 이야기를 짰다”고 했습니다.
그는 “학습만화가 애초 학습을 위한 지식 전달을 위해 만든 것이라면, 웹툰은 작가가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독자가 나름대로 느껴줬으면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생활하면서 짜증 났던 일,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문제 등을 웹툰에 담고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블로그에는 누리과정, 진로 교육, 가족 대화 등을 다룬 전문 작가들의 작품도 연재해 학부모, 교사에게도 유익한 정보가 될 법하니 한번 찾아서 읽어보세요.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학생 생활 웹툰> 장면 갈무리. 한국애니메이션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