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11월22일 낮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서명 강행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한-일 군사정보협정, ‘파탄 정권’이 할 일인가
박근혜 정부는 12일 사실상 국민으로부터 정치적인 불신임을 받았다. 정통성을 잃고 기능도 마비된 파탄 정권으로 전락했다. 이런 정부가 외교·안보적으로 매우 민감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원래 한-일 군사정보협정은 일본 쪽이 먼저 요청해 2012년 6월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밀실 추진 논란이 불거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그 뒤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국방부가 지난달 27일 갑자기 협상 재개를 선언한 뒤 1일(도쿄), 9일(서울) 실무회의를 거쳐 14일 도쿄에서 3차 회의를 열어 가서명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이 약속했던 ‘국민 공감대 형성’ 등의 작업은 거의 없었다.
한-일 군사정보협정에 관해선 그간 일본이 가지고 있는 북한 핵·미사일 정보 획득 등 대북 억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찬성 주장도 있으나, 한-미-일 미사일방어망에 편입될 우려가 크며 중국을 자극해 오히려 한반도 안보 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가 많았다.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역사수정주의를 용인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국방부가 이런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구축을 동북아 안보의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미국의 압력이고, 하나는 최순실 스캔들로 죽음 직전에 있는 ‘박근혜 구하기’다. 둘 다 한국의 국익보다는 미국과 일본의 이익, 박 대통령의 사익을 우선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처럼 주변국보다 국력이 약한 나라는 평소에도 협상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국민의 불신과 외국의 조롱을 받는 정권이 무슨 힘을 쓰겠는가. 이 시점에 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촛불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될 뿐이다.
[중앙일보 사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이뤄져야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강행한다는 이유로 야 3당이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키로 합의한 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4일 정부가 협정에 가서명한 것이 민심을 거스르는 일방통행이라는 야당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상황이라고는 하나 국민 생명이 걸린 안보 현안까지 올스톱시키는 게 어찌 민심이란 말인가. 오히려 정국이 혼란스러울수록 확고한 국방태세가 갖춰져야 하는데 국방 책임자까지 뒤흔드는 건 만일의 사태에 우려되는 리더십 공백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다.
졸속이라는 주장도 옳지 않다. 이미 1989년부터 우리의 제안으로 논의돼 온 것이기 때문이다. ‘제2의 을사늑약’ 운운은 논할 가치도 없다. 한국은 이미 러시아 등 32개국과 협정을 체결했으며, 중국 등 11개국과 체결을 제안한 상태다. 그런데도 일본과의 협정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반일감정에 따른 논리 비약일 뿐이다.
협정은 반대로 우리에게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현실적 위험이 되고 있는데 우리는 북 잠수함을 탐지할 능력이 부족한 까닭이다. 반면 일본은 우리에게 16대밖에 없는 해상초계기를 77대나 가지고 있으며, 정보수집위성 5기, 조기경보기 17대에다 탐지거리 1000㎞ 이상의 지상레이더 4기를 보유하고 있다. 휴민트(인적 정보) 역시 과거 정부에서 네트워크가 붕괴돼 현재는 오히려 일본의 휴민트가 더욱 정확하다는 분석마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정보를 활용하지 않겠다면 점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험에 어찌 대처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도 우리는 많은 부분을 일본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을 거쳐 오기 때문에 시간적 효율성이 떨어질 때가 많다. 유사시를 대비할 때 한·일 간 협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더 이상 정부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잘못된 사실로 국민을 선동해선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초래되는 무장해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국민이다.
[추천 도서]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한-일 간의 군사비밀 정보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교환할 군사비밀은 2급과 3급 수준의 비밀에 해당하며, 일급비밀은 누설되면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므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미 한국은 유럽연합 및 32개 국가와 33건의 군사정보보호 협정 또는 약정을 맺고 있는데 국가 간 관계에 따른 필요량만큼 주고받기 때문에 실제적인 비밀 교환은 미미한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한-일 간의 정보교환은 동북아 안보상황를 고려할 때 서로의 필요가 크다. 이 협정을 통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대잠수함 초계정보와 정보수집 위성 등 일본의 선진적 감시 및 탐지 자산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일본은 한국 이지스함 등이 서해에서 포착한 북한 등의 탄도미사일 정보를 동해에서 잡을 때보다 빠르게 확보하고, 탈북자 등이 제공하는 휴민트 정보와 북한 내부 정보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예상되는 단점도 경계해야 한다. 일본은 정보전력과 군수산업 면에서 한국보다 우수하므로 대일 군사 종속이 우려된다. 또한 아베 정권과 일본 우익들은 ‘무력 공격 사태 및 존립 위기 사태 대처법’이나 ‘중요영향사태법’ 등 해외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는 국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왔다. 여기에 국제적 군사동맹이 강화된다면 일본 군대는 합법적 해외 진출 자격도 갖게 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따르는 이유다.
연재사설 속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