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후 교사의 진로·진학 마중물
2017학년도 수능 응시원서 접수 결과 5교시에 치르는 제2외국어 및 한문 영역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3607명(4.0%) 증가했다. 특히 이 영역 지원자 9만4359명 가운데 6만5153명(69.0%)이 ‘아랍어Ⅰ’을 압도적으로 많이 선택해 화제다.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울산외고, 수원 권선고 등에 불과한데도 지난해보다 17.4%포인트 증가했다. 한류 열풍으로 중동지역과 교류가 활발해서가 아니다. 조금만 공부해도 수능에서 점수 따기가 쉽기 때문이다.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없고 아랍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없으니 다른 제2외국어보다 등급과 점수를 얻기가 매우 유리하다. 게다가 아랍어 쏠림현상으로 응시 인원이 많다 보니 1등급 비율도 높다. 제2외국어를 탐구 1과목으로 교체해주는 수도권 주요 대학이 서울대, 성균관대 등 20곳이 넘다 보니 중상위권 학생들이 아랍어 시험에 마치 도박하듯 응시하고 있다.
2016학년도 수능에서는 아랍어Ⅰ 1등급 컷이 원점수 50점 만점에 23점, 평균은 12점 정도로 추정된다. 표준편차도 6.7에 불과해 실력이 엇비슷한 학생들이 아랍어를 응시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어(총 30문항) 한 문항 배점이 1, 2점이므로 지난해 수능에서 2점짜리 6문항을 맞히면 12점으로 4등급에 해당한다. 한 문항을 찍어서 5문항만 맞히면 10점으로 5등급을 받을 수 있다. 최고점 표준점수는 100점으로 다른 제2외국어 교과의 65~71점보다 매우 높다. 지난 9월 모의평가에서도 아랍어Ⅰ 최고점 표준점수는 100점이었다. 시험 점수 분포가 이렇다면 상위 등급의 학생들이 아랍어 실력을 갖췄다고 말하기 어렵다. 당연히 조금만 공부하면, 잘만 찍으면 상위 등급을 받을 수 있으니 학생들에게는 매력적인 교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외국어고 학생들마저 자기 전공 외국어보다는 아랍어를 치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수능 아랍어Ⅰ시험은 실력이 아니라 찍기 시험으로 변질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고득점 편법을 가르치는 셈이다. 외국어고 학생들이 자신이 전공한 외국어에 응시를 안 하고, 일부 제2외국어 교과는 배우는 학교가 거의 없으므로 수능에서 제2외국어 영역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2외국어는 필요한 이들만 공부해야 하는데 국가시험인 수능 응시영역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이 3년 예고제이므로 우선 절대평가로 바꾸고 이후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서울대처럼 2등급 이내는 감점이 없고, 3등급부터 1점씩 차등 감점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아랍어나 베트남어 등 가르치는 학교가 적은 제2외국어 교과만 수능에서 폐지하자는 방안도 있다.
아랍어를 배우지도 않은 수험생들이 수능에서 아랍어를 치르는 현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점수 따기에만 매몰된 우리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다. 제2외국어 교육의 정상화와 역량 있는 언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라도 현행 수능의 제2외국어 반영 방법은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 문산고 교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