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증후군’은 비단 학생과 학부모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교사들도 새로 만나는 학생, 학부모, 관리자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1월27일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한 서울 반포동 계성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율동을 하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교사들의 새학기 스트레스
‘작년에 사고뭉치로 유명했던 그 녀석, 올해는 우리 반 피해 갔으면 좋겠다.’
‘애들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할 텐데….’
‘올해는 공문이 얼마나 쏟아질까?’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최아무개 영어교사는 요즘 불면증으로 고생이 많다. 자려고 누우면 새롭게 만날 아이들, 처리해야 할 새로운 업무들 등에 대한 부담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2007년 교사가 된 다음부터 매해 3월 새학기를 앞두고 통과의례처럼 겪어온 일이다.
새학기 학생들만 불안한 건 아냐
3월 새로운 학교생활 준비하며
교사들도 스트레스 받아 교사 8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부터
‘바뀐 교육정책 업무’ 등 부담 커
선생님도 교육공동체 일원
배려·존중하는 태도 보여주길 비단 최 교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교사들이 2월부터 4월까지 두통, 복통, 치통, 변비 등의 증상을 느끼는 탓에 ‘종합병원 두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매해 3월 학생들이 ‘새학기 스트레스’를 받듯 새로운 사람과 일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이 전국에 있는 교사 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3월 새학기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걸로 나타났다. 결과에 따르면 “새학기에 스트레스를 더 받느냐?”는 질문에 48.7%(390명)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는 대답이 33.4%(267명)로 그 뒤를 이었다. 설문에 응답한 교사들은 고등학교 교사 37.9%(303명), 중학교 교사 35.4%(283명) 순으로 많았고, “교직경력 10년 이상 됐다”는 교사가 56.2%(447명)나 됐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할 때 누구나 당연히 부담을 느끼지만 새학기를 코앞에 둔 교사들이 느끼는 부담은 다른 직종 종사자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과거보다는 관리할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교사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상대해야 하는 학생 수는 한 반에 적게는 20여명, 많으면 3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 학교 관리자 및 동료 교사, 학부모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또 교과서나 교육과정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그 부분까지 고려하면 3월에 교사들은 거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 교사들 사이에서 “이 직업에서는 달인이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학기 초 교실서 ‘은따’ 되는 교사도
설문조사에서 새학기에 교사들을 긴장하게 하는 첫 번째 요소로 손꼽힌 것은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44.7%, 358명)이었다. 요즘 교사들에게는 아이들이 이른바 ‘광속’으로 불리는 온라인 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이 큰 부담요소다. 인천 심곡초 김연민 교사는 “교직생활 8년차인데 아무리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해도 아이들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3월 초 관계맺음을 잘 못해 교사가 교실 속 ‘은따’(은근한 왕따) 대상이 되는 일도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김아무개 수학교사는 “지난 학기에도 아이들이 ‘핵노잼’(재미가 없다), ‘개취’(개인의 취향) 등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쓰길래 한소리 했더니 단체로 나 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상황이 됐다. 3월 오기 전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신조어가 뭔지 오픈국어사전부터 찾아보게 된다”고 했다.
광주광역시 신창초 서준호 교사는 “많은 교사들에게 3월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를 파악하고, 폭탄처럼 떨어지는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관리자나 동료와 소통해야 하는 때라 교사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를 잘 풀고 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교사가 받은 스트레스, 즉 ‘화’는 고스란히 아이들을 향하기 쉽다. 상담·심리치료 전문가로도 활동하는 서 교사는 “내가 상담·심리 치료를 공부하게 된 데도 학기 초 여러 일들이 폭주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다가 나와 아이들 사이에 불신이 싹텄고, 결국 아이들이 연합해서 내 안티카페를 만든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경기 고양시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송아무개 교사는 “지역이나 부모들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자녀 가정이 늘면서 내 아이만 귀하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마치 ‘서비스센터’로 여기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3월 초 교사를 첫 대면 하는 자리에서 ‘우리 귀한 아이를 저 선생이 제대로 돌봐줄 수 있으려나?’ 하는 눈빛이나 말투로 선생님을 훑어보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거 자체가 스트레스죠.”
교사를 믿고 기다려주지 못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한 중학교 교사는 설문조사 가운데 ‘새학기, 교육공동체에 하고 싶은 말’로 “이제 막 만나서 사귄 친구들끼리 서로 탐색전을 펼치다가 다툴 수도 있는데 학기 초부터 부모님이 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선생인데 그거 하나 못 막고, 뭐 했냐?’며 따지는 일도 있습니다.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홍수처럼 쏟아지는 업무로 숨막혀
교사들 처지에서는 3월 홍수처럼 쏟아지는 각종 업무도 큰 부담이다. 설문조사 결과 교사들을 긴장하게 하는 두 번째 요소로 손꼽힌 것은 ‘바뀐 교육정책과 관련한 업무들’(36.2%, 290명)이다. 교사들은 “교육정책이 워낙 자주 바뀌기도 하고, 사회·교육 이슈에 따라 추가되는 것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서준호 교사는 “지난해 3월 첫 주 학년부장일 때를 떠올려보면 어떤 걸 처리해달라는 업무 관련 팝업 메시지를 100개도 넘게 받았었다. 업무 요청 건을 처리하다 보면 혼이 다 빠진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사는 정작 중요한 아이들과의 소통을 못하게 된다”고 했다.
천호중 송형호 교사는 “교육과정이 있으니 그걸 통하면 충분한데 지난해에도 인성교육진흥법, 진로교육법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인성교육진흥법도 세월호 선장의 인성 문제가 언급되면서 급조해서 나온 건데 교육과정은 고려하지 않고 밖에서 법으로 강제해 만들려고만 하면 학교 현장에서는 제대로 구현되기가 어렵다”고 했다. 전주 풍남중 황종락 교사도 “안전, 창의, 인성 등은 새로 추가업무를 부여하지 않아도 이미 다 신경 써서 하고 있는 부분인데 더 덧붙여서 일을 주고, 기계적으로 실적을 강요하니 학기 초, 연말 등이 정말 바쁘다”고 했다.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업무나 보직 등이 늦게 결정되는 탓에 교사들이 새학기에 정작 수업에는 집중을 못하는 일도 일어난다. 서울의 한 고교에 다니는 김아무개 교사는 “22일이 신학기 회의인데 16일인 오늘까지도 담임이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학교들이 개학 2주 전에야 담임 배정을 하거나 보직을 알려준다. 2주 동안 허겁지겁 한 학기 또는 한 해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교는 대학입시가 있어서 학년별로 준비할 게 다릅니다. 고교 1학년 담임을 하게 되면 아이들 전환기이기 때문에 ‘적응’에 초점을 둬야 하고요. 2학년은 학생부전형 등을 위해 학생부를 채워줄 만한 활동을 계획해야 합니다. 3학년은 입시지도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고요.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은 것도 스트레스이고, 대체 어떤 업무를 더 받게 될지 모르니 더 힘들죠.”
서울 면목고 우선하 교사는 “한 예로 최근에는 ‘마을이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의 프로그램들이 학교 안에 들어오고 있는데 지역전문가 등이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면서 함께 해주면 좋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교사가 학기 초부터 프로그램 기획, 전문가 섭외, 강사료 정산까지 다 계획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번 설문조사 내용 가운데 주관식 항목이었던 ‘새학기, 교육공동체에 하고 싶은 말’에 교사들이 적은 답변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 고교 교사는 “선생님도 사람. 선생님 마음에도 ‘걱정 인형’이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교사는 “새학기를 생각하면 두근거리기도 하고, 울렁증도 생깁니다. 선생님도 학생이나 학부모만큼 긴장이 됩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에서 잘 시작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 carax3@hanedui.com
3월 새로운 학교생활 준비하며
교사들도 스트레스 받아 교사 8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부터
‘바뀐 교육정책 업무’ 등 부담 커
선생님도 교육공동체 일원
배려·존중하는 태도 보여주길 비단 최 교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교사들이 2월부터 4월까지 두통, 복통, 치통, 변비 등의 증상을 느끼는 탓에 ‘종합병원 두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매해 3월 학생들이 ‘새학기 스트레스’를 받듯 새로운 사람과 일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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