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 비서관회의 발언 논란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과 관련해 교부금 관련 법 개정, 예비비 불이익 등 강경카드를 꺼내들며 교육감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사실상 누리과정 예산 추가 국고 지원 등 교육청과 ‘타협’은 없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누리과정 지원용인 3000억원 예비비를 차등지급하겠다는 부분은 ‘교육청 길들이기 논란’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이하 교육교부금법) 개정 언급은 ‘교육자치 훼손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박 “교부금, 누리예산 쓰게”…목적교부금 신설 추진
교육감 “교육자치 훼손…의무교육 포기하란 건가”
박 “예산편성 교육청에 예비비 3000억 우선 지원”
여야 합의한 예산을 정부 맘대로…지역차별 논란
■ 목적교부금 신설 추진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법을 고쳐서라도 중앙정부가 누리과정과 같은 특정한 용도에 교부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라”고 법 개정 검토를 지시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을 교육청에 줘도 항목이 특정돼 있지 않아서 누리과정이 아닌 다른 데 쓰고 나서 ‘돈 없다’고 하는 문제가 되풀이된다”며 “기획재정부·교육부와 당정협의를 거쳐 교육자치 침해 논란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해 ‘보통교부금 96% 특별교부금 4%’로 규정돼 있는 교부금법 제3조를 개정해, 누리과정용 ‘목적교부금’을 신설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누리과정 예산 4조원을 목적교부금으로 지원하려면 보통교부금 85% 목적교부금 11% 특별교부금 4% 정도로 조정해야 할 텐데,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부연했다.
새누리당은 이와 별개로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중앙정부가 대신 집행한 뒤 추후 해당 교육청과 정산하도록 하는 교육교부금법 개정안을 이르면 26일 발의할 예정이다.
교육청 쪽은 이에 대해 “교육자치 훼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교부금법 개정 추진은 교육감들의 예산 편성권을 무시하고 교육자치를 훼손하겠다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교부금법을 고쳐서 누리과정에 쓰겠다고 한 것은 헌법상 (의무) 교육에 (예산을) 쓰게 돼 있는 법을 고쳐서 (대통령 공약사업인 누리과정에) 쓰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말씀은 의무교육까지도 포기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 예비비도 차등 지원 박 대통령은 목적예비비 3000억원도 차등 지원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당초 국민과 했던 약속,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도교육청에 대해서는 3000억원의 예비비를 우선 배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교육부 기자간담회에서 “12개월치 어린이집·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다 편성한 교육청(대구·울산 등 5곳)에 예비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며, 집행 시기는 기재부와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2일 국회에서 17개 시·도교육청에 나눠주라고 통과시킨 목적예비비를 정부 임의대로 일부 교육청에만 지급해도 되는지는 논란거리다. 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우선 배정에서 제외되는 교육청에 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학부모·교사가 피해를 입게 될 텐데, 대통령이 지역 차별을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 이미 지원했다? 박 대통령이 “이미 지난해 10월 누리과정 지원금을 포함한 2016년도 교육교부금 41조원을 시도교육청에 전액 지원했다. 시·도교육청이 받을 돈은 다 받고 써야 할 돈은 안 쓰는 상황”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부가 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 4조원을 모두 내려보냈는데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현행 교육교부금법에 따라 내국세의 20.27%(올해는 41조원)를 교육교부금으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야 한다. 이는 누리과정 사업이 시행되기 이전인 2010년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비율이다. 정부는 누리과정이라는 막대한 예산규모의 새 사업을 교육청에 맡기면서 교육교부금률을 높이지 않았다.
정부가 누리과정을 위해 추가로 지원한 돈은 올해 3000억원(지난해 5064억원)으로, 4조원에 한참 못 미친다. 정부가 국고로 추가 지원을 안 하면 교육청들은 초·중·고 교육비 등 다른 항목의 예산을 빼내 누리과정에 투입해야 하고, 교육감들은 현재 그럴 예산이 없다고 버티는 중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지난해보다 교육교부금이 1조8000억원 증가했다”고 말한 내용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재정 교육감은 “올해 교부금 41조는 2013년 교부금 규모와 같은데, 그때에 비해 물가, 인건비 등이 모두 올랐다. 더구나 그때는 누리과정을 교육청 30%, 지자체 70%로 나눠 부담했다”고 반박했다.
전정윤 홍용덕 황준범 엄지원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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