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보육비 지원 중단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와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21일 서울 시내의 한 사립유치원에 노란 가방을 등에 멘 어린이들이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라리 누리과정을 없애든가, 이미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유치원 원장들한테, 학부모들한테 비용을 떠안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회사원 김아무개(38)씨는 누리과정(만 3~5살 무상보육) 지원비가 끊길 경우 직격탄을 맞는다. 그는 만 3살, 5살 두 딸을 둔 아버지다. 태어날 때부터 대기자 명단에 올렸던 국공립어린이집에선 연락이 없고, 2년째 도전한 공립유치원 추첨에서도 연이어 떨어졌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큰딸과 민간어린이집에 다니는 작은딸의 누리과정 지원비(22만원+방과후지원비 7만원)를 자부담할 경우 김씨가 추가로 내야 할 돈은 60여만원에 이른다. “유치원에 학부모 부담으로 내는 돈도 연간 500만원 정도 돼요. 누리과정 이후에 원비가 더 올랐어요. 애들을 계속 보내도 되는 건지, 아내더러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애들을 돌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이젠 정말 분노가 치밀어요.”
지난 19일 사상 처음으로 서울 등 일부 교육청의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비 지급이 중단되며 보육현장이 2013년 누리과정이 본격 시행된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학부모들은 상황에 따라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가정양육수당을 받는 방법을 고민하거나 아예 사설 놀이학교를 수소문하는 등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대표되는 유아공교육 체계 자체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21일 영유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주로 모이는 인터넷카페 등에선 하루 종일 “학부모가 먼저 부담하고 환급해준다니, 우선 낼 돈이 없는데 환급이 무슨 말이냐” “어린이집 원장님은 기다리라고 하고, 나라에선 돈 안 준다고 하고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등 학부모들의 혼란과 우려가 쏟아졌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왜 정부가 키우겠다고 나서서 이 사달을 만드는 거냐”는 누리과정 자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상당수 전업주부들은 사실상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보면서 보건복지부가 예산 편성 책임을 맡고 있는 양육수당(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만 0~5살 자녀를 둔 가정에 월 10만~20만원 지급)을 받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 하지만 “엄마랑 하루 종일 있으면 무료해하고, 친구도 사귈 수가 없는데 걱정”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대표되는 유아공교육 체계를 벗어날 생각을 하는 건 워킹맘들도 마찬가지다. 6살 아이를 키우는 서울 마포의 명아무개(35)씨는 “지금까지는 놀이학교를 보내고 있었는데 너무 비싸 유치원으로 바꾸려고 했다”며 “하지만 누리과정 지원비 22만원이 안 나오면 큰 차이가 없어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진숙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지금처럼 계속 떠넘기기 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국민들은 과연 정부가 공보육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공보육 체계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누리과정 사태 해결을 위해 21일 부산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두번째로 만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들은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섰다. “교육감의 의지만 있다면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한 이 부총리는 인사말만 한 뒤 다른 일정이 있다며 30분 만에 자리를 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총회를 마치고 “유·초·중등 교육에 써야 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위법이고 공교육 포기”라며 사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 구성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17개 시·도 교육감 공동 명의로 발표했다.
진명선 양선아 기자, 부산/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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