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고려대는 현재 고1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2018학년도부터 논술을 폐지하고 특기자와 정시전형을 축소하는 내용의 입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을 선발했던 ‘학교장추천전형’은 2018학년도에는 ‘고교추천전형’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전체 신입생의 50% 안팎을 선발한다. 정시 비율은 15% 안팎으로 줄어든다. 정시 축소와 논술 폐지 그리고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는 서울대의 입시 방향과 일치한다.
기존의 고려대 ‘학교장추천’이 ‘고교추천’으로 바뀌면서 재수생들은 지원할 수 없다. 정시가 축소되고 수시 고교추천 인원이 확대된 측면에서 볼 때 일반고 재학생들이 유리하고 재수생이 불리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현재 학교장추천전형은 특목고 출신 학생이 지원할 수 없지만, 이 전형이 고교추천전형으로 바뀌면 특목고 학생들도 지원할 수 있다. 여기에 특목고생들이 선호하는 융합형인재전형도 확대됐다. 고교추천전형을 제외하고는 재수생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재수생들에게도 크게 불리한 게 아니다.
고려대는 “사교육을 유발하고 논술 전형 입학생의 학업성취가 낮다는 점을 고려해 논술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논술 전형으로 뽑는 인원이 성균관대와 더불어 가장 많은 고려대의 논술 폐지는 학생부의 영향력이 높은 일부 대학들의 논술 폐지나 축소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는 올해 논술전형인 일반전형에서 1110명을 선발한다. 성균관대 다음으로 많은 인원이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탐구 영역이 포함되어 경영대학, 정경대학,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4개 영역 중 3개 영역 등급 합이 5 이내(의과대학의 경우 4 이내)로 완화되었다. 경쟁률은 일반전형이 48.06:1, 학생부종합전형인 학교장추천이 7.27:1, 융합형인재가 17.77:1이었다. 올해도 학생부종합전형보다 일반전형이 월등히 높은 경쟁률을 보였음에도 고려대가 논술을 폐지한 이유는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고려대 입학처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논술전형으로 선발한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다른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에 비해서 학업능력이 우수하지 않다”는 것을 논술 폐지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2015학년도 논술 우선선발 폐지’가 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2014학년도 일반전형 인문계 우선선발(70%)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국어, 수학, 영어 등급 합이 4 이내로 매우 높았지만, 일반선발(30%)은 2개 2등급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올해는 교육부의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완화 방침에 따라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는 인문계는 3개 영역 2등급인데 고려대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완화 대학의 증가로 논술전형에 도전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수능 성적대는 넓어졌다. 또한 논술고사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선행학습 요소를 배제하고 고교과정 내에서 수능 형태로 출제해야 한다. 그리고 선행학습 영향평가 보고서를 누리집에 공개해야 한다. 즉, 이제는 논술고사가 교과서와 이비에스(EBS) 교재 등 고교 교육과정에서 출제되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학습 부담이 완화되었다. 아울러 대부분의 대학들이 모의논술을 실시하고 논술자료집을 공개해 학생과 지도교사 모두 논술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 점에서 2007학년도 ‘통합논술’의 초석을 닦는 등 논술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왔던 고려대였던지라 전격적인 논술 폐지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폐지보다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고려대의 논술전형 포기 선언은 우수학생 선점 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금처럼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면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고 일반고에 유리한 것은 맞지만, 고1~2 때 내신 관리에 실패한 학생은 대학 진학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임 입학사정관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을 늘리는 것은 평가의 객관성에도 문제가 된다. 지나친 내신경쟁과 심층면접 준비도 짚어 봐야 한다. 정시의 축소 역시 늦게 공부를 시작한 ‘대기만성형’ 학생들에게는 불리한 소식이다.
끝으로, 고려대가 2016학년도 모의논술 자료집에서 밝힌 출제의 기본방향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고려대학교 논술고사는 논술 본연의 모습에 충실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최승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