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텔레비전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퀴즈챔피언을 꺾고 우승한,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 작아지는가.”
컴퓨터 기술에 기반한 로봇과 알고리즘의 시대가 열리면서, 인간이 스마트폰에 압도당하는 현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선보인 기계문명은 인간의 노동력을 일찍이 능가했고 계산기와 컴퓨터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여겨져온 연산능력을 추월한 지 오래다. 컴퓨터가 발달하더라고 수식화된 연산이나 구조화된 요청에만 응답할 수 있을 따름이고, 인간 고유의 영역은 침범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오래 전에 깨졌다.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와 아이비엠(IBM)의 컴퓨터 ‘딥 블루’가 벌인 체스 대결에서, 마침내 딥 블루가 승리했다. 2011년 2월 미국 방송의 퀴즈쇼 ‘제퍼디’에서 아이비엠의 컴퓨터 ‘왓슨’은 인간 퀴즈챔피언을 꺾고 우승했다. 체스나 퀴즈처럼 사고와 판단력이 중요한 영역에서 사람은 컴퓨터에 대해 우위를 상당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왔지만, 허망한 기대였다.
인간의 지식 체계와 지적 능력은 검색의 시대를 맞아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더 이상 전화번호나 지도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 억지로 외우느라 골머리를 앓던 지식 대부분이 이제, 손끝에서 즉시 찾아진다. 상식이 풍부해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상식을 뽐내던 이들도 스마트폰 앞에서 왜소해졌다. 고성능 컴퓨터이자 전세계 정보망과 상시 연결된 상태인 스마트폰을 휴대하는 세상에서 인간 고유의 능력은 과연 무엇일까?
최근 로봇과 알고리즘이 현재의 직업 상당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는 걸 보면, 편리하고 강력한 컴퓨터 기술의 발달을 반기기만도 어렵다. 현재의 직업 절반은 20년 안에 사라지고, 2030년까지 일자리 20억개가 없어진다는 게 미래학자들의 예측이다.
특히 검색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그동안 인간이 주요하게 간주해온 지적 능력의 재구성을 통한 인간의 새로운 차별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스마트폰 환경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물을 수 있다. 문자 입력이 아니라 음성인식으로도 충분하다.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활용하면 혼자서 물을 때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까지 전문가들의 식견높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
뭐든지 검색엔진에 물어보면, 즉시 답이 나오는 세상이다. 왓슨이 퀴즈왕을 꺾은 것처럼, 답변하기에서 사람이 검색엔진을 앞설 수 없다. 컴퓨터와 검색엔진이 할 수 없는 기능을 찾아야 로봇시대에 사람 고유의 능력과 존엄함을 지킬 수 있다. 직업적·사회적 성공은 말할 것도 없다. 컴퓨터가 할 수 없고 사람만 할 수 있는 기능은 질문하기다. 사람은 다른 어떠한 생명체도 갖지 못한 호기심과 인지적 불만족을 지닌 존재다. “왜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데?” 즉시 답변해주는 기계를 거느리고 사는 환경에서는 ‘똑똑하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교육과 인간개발의 새로운 목표가 되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IBM의 체스용 컴퓨터 딥 블루.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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