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의 시절이다. 세액공제와 소득공제의 차이를 비롯해 각종 규정을 알아야 하고,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공제한도 등 변경사항도 많다.
규정이 복잡하고 해마다 달라진다고 해도, 연말정산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간단해졌다. 국세청이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는 직장 초년생이나 세무 지식이 얕은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연말정산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간소화 서비스’가 없던 연말정산 기간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개인마다 주민등록 등본을 비롯해 예금 및 보험료 납입 증명서, 의료비, 기부금, 학자금, 신용카드 사용액 등 각종 영수증과 확인서를 직접 떼어서 제출해야 했다. 각 회사의 회계담당 부서와 직원들은 이를 처리하느라 한달 넘게 지옥 같은 업무강도에 시달려야 했다.
회계담당 직원들과 세무서 담당자들이 눈이 뚫어지게 서류를 정리하고 검토했지만, 당시 연말정산 업무에는 구멍도 컸다. 납세자가 종교시설 등으로부터 부풀린 기부금 영수증을 제출하거나 맞벌이 부부가 동일한 항목과 서류로 이중으로 공제를 신청해도 그만인 시절이 한동안 있었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덕분에 복잡한 절차가 간편해진 것뿐만 아니라, 이중공제나 허위서류를 통해 세금을 부당하게 공제받던 도덕적 해이도 줄어들었다. 사람 대신 컴퓨터와 인터넷이 처리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매년 연말정산을 하다 보면 정보화 세상을 실감한다. 지난 1년간 어디에 지출을 하고 다녔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계와 세무당국은 1원 한푼 빠뜨리지 않은 채 고스란히 기록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섬뜩해질 때가 있다. 교통카드 이용내역을 인터넷으로 조회해볼 때도 비슷하다. 내가 교통카드를 이용해 이동한 시각과 위치가 1초, 1m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유사시 강력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 악의를 품고 내 교통카드를 이용한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해질 수 있다.
연말정산은 정보화의 편리함과 위력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돈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지 않지만,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을 통해서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데이터로 만들고 있다는 걸 보게 된다. 현금 대신 휴대전화나 직불카드의 쓰임이 늘어나는 만큼, 미래에는 더 상세한 데이터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더 많은 데이터가 만들어지지만,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라 회계와 세무처리가 자동으로 이뤄지므로, 관련된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디지털 세상의 변화를 사회와 개인이 어떻게 수용할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