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최근 만난 한 통신사 임원은 중학교 3학년 딸이 인터넷 사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팝스타들의 공연 티켓 초대권을 유료로 파는 인터넷 글을 보고 카카오톡으로 상대와 연락을 주고받은 뒤 10만원을 송금했으나, 티켓이라며 보내온 것은 빈 봉투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허락 없이 낯선 사람을 인터넷으로 접촉하다가 사기당한 딸은 벌칙으로 스마트폰을 압수당했다.
딸은 압수 초기 스마트폰 없이 방학을 보내는 것에 못내 지루해하더니, 일주일이 지나면서는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이후로는 거들떠보지 않던 피아노를 만지기 시작했다. 딸은 지루함에 못 이겨 눌러본 피아노를 사나흘이 지나면서 갈수록 집중해서 치고, 오랫동안 잊었던 즐거움을 되찾은 것 같다는 게 아버지의 전언이다. 스마트폰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잊었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는 한가로움이나 여유로움을 누리기 한층 어려워졌다. 늘 휴대하고 다니는 소통수단이라는 점도 있지만, 스마트폰은 사용자에게 끊임없이 ‘알림’을 밀어넣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정보로 사용자의 관심을 끌려고 경쟁하는 통에, 사용자가 그 유혹을 벗어나 무위의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을 보면 한 가지 일만 하거나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게 왠지 불안할 정도다. 16세기 유럽 청교도운동은 쉼을 죄악시하고 근면한 노동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한국 사회만큼 무위도식을 추방해야 할 사회악으로 여기는 곳도 없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의 연구 결과는 휴식과 무위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아성찰, 사회성, 창조성 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두뇌 활동은 뇌에 아무런 인지 부하를 주지 않을 때, 즉 멍하게 쉴 때 비로소 작동한다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도, 뉴턴도 연구실이 아닌 곳에서 멍하게 지내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뇌 속에 얽히고설켜 있는 신경섬유.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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