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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고심 끝에 결정한 지부장 출마 / 이총각

등록 2013-07-04 19:22

1977년 3월30일 동일방직 노동조합 수습 대의원대회에서 회사 쪽의 지원을 받는 반대파의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지부장으로 단독출마했으나 반대표가 많아 부결되면서 재선거의 진통을 겪었다. 사진은 당시 김인태 부지부장을 비롯한 남자 조합원들이 대의원대회를 방해하는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1977년 3월30일 동일방직 노동조합 수습 대의원대회에서 회사 쪽의 지원을 받는 반대파의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지부장으로 단독출마했으나 반대표가 많아 부결되면서 재선거의 진통을 겪었다. 사진은 당시 김인태 부지부장을 비롯한 남자 조합원들이 대의원대회를 방해하는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6
1977년 2월28일 남자 조합원들의 끈질긴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동일방직 민주노조의 대의원 선거는 집행부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영숙 지부장의 퇴사로 잔여 임기를 수행할 지부장을 뽑기 위해 3월30일 수습 대의원대회를 열기로 했다.

등록 마감일인 3월23일 지부장에 입후보한 사람은 이총각과 문명순이었다. 남자 조합원들은 노동청 노정국장의 충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척하며 대회 하루 전날 미뤄둔 자체 대의원선거를 해서는 6명을 새로 선출했다. 그들의 목표가 민주노조 반대파인 문명순을 지부장에 당선시키는 것이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이총각에게 노동조합은 삶의 전환점 같은 것이었다. 노조 안에서 행복했고 그것 이상의 선한 가치는 없었기에 그 무엇과도 맞서 싸워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노동자가 노조를 지키는 것은 감옥에 갈 일은 아니었지만, 설사 그래서 감옥을 가야 한다면 기꺼이 갈 각오가 돼 있었다. 그러나 위원장을 맡아 1000명이 넘는 조합원을 이끄는 데는 자신이 없었다.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데다 무대공포증도 있어서 지부장이라는 위치는 자신과 맞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부장 추천에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총무 일에 만족하고 열심히 뒷받침을 해주겠다며 대신 정의숙을 추천했다.

“여러분의 마음은 알지만 반대파들이 이총각이 지부장이 되려고 미쳤다는 둥,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날뛴다는 식의 소리들을 하는데, 내가 지부장 자리에 앉으면 역시 그들 말이 옳았다며 더 악선전을 해댈 겁니다. 그리고 문명순 같은 야심가에게 우리의 목적은 감투를 쓰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요.”

당연히 총각이 지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조합원들은 펄쩍 뛰었다. 만약 그가 나서지 않는다면 모두 집단 퇴사를 하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댔다.

사실 총각은 스스로 여성스럽고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반대세력들과 맞설 때는 어찌 그리 당당한지 대중공포증도 없어지고 스스로 생각해도 잘 싸우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려운 집안에서 움츠리고만 살아와서 자신을 잘 모르고 지낸 세월이 길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동일방직에 들어와 노조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을 총각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못 배웠지만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왔고 사리에 맞지 않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바른말 잘하는 어머니를 닮아 싸워야 할 자리에서 뒷걸음치지 않은 것이 동료들에게는 신뢰감을 주었던 것 같았다.

총각은 마음이 복잡했다.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조합원들과 투쟁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을 더 이상 걱정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무엇보다 회사 쪽의 지지를 받으며 입후보한 문명순이 지부장이 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는 어떤 식으로든 이총각이 지부장이 되는 걸 막으려고 문명순과 박복례에게 온갖 특혜를 베풀며 보호했다. 다른 조합원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탈의실도 사무실 2층을 따로 사용하도록 했고, 언제든지 결근·조퇴·지각 등이 묵인되었다. 그래서 총각이 등록을 미루며 다른 사람을 추천하자 더할 수 없이 기뻤을 것이다.

총각은 더 이상 미적거리며 고민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입후보 서류를 접수시켰다. 그런데 마감시간에서 10분을 초과한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마침내 3월30일 공장 내 기숙사 강당에서 수습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남자 조합원들의 반조직 행위로 노조 활동이 정지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수습 책임위원인 이광환의 사회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대회는 지부장 선출을 앞두고 문명순이 일어나 문제를 제기하면서 분란이 일기 시작했다. 총각이 지부장 후보 등록 마감시간을 10분이나 넘겨서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순간 소란이 일어났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고 문명순 단독 후보에 대한 가부 투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찬성 12명, 반대 31명으로 지부장 선출은 일단 부결되었다. 대회를 지속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가까스로 열렸던 수습 대의원대회는 휴회되었고 다시 지부장 후보 등록 공고를 한 뒤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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