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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가톨릭노동청년회에 가입하다 / 이총각

등록 2013-05-29 19:18수정 2013-05-30 08:44

1968년 이총각(앞줄 왼쪽 셋째)은 동일방직 선배 신애자 젬마의 권유로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사회활동에 눈을 뜬다. 사진은 69년 봄 동일방직 지오세 회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갔을 때로 신젬마(뒷줄 가운데)와 지도투사 김요한(뒷줄 오른쪽)은 훗날 부부가 됐다.
1968년 이총각(앞줄 왼쪽 셋째)은 동일방직 선배 신애자 젬마의 권유로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사회활동에 눈을 뜬다. 사진은 69년 봄 동일방직 지오세 회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갔을 때로 신젬마(뒷줄 가운데)와 지도투사 김요한(뒷줄 오른쪽)은 훗날 부부가 됐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0
이총각 루시아가 노동조합에 대해 알게 된 건 1968년 지오세(JOC·가톨릭노동청년회)를 통해서였다. 어느날 공장에서 화장실을 가는데 ‘와인다과’의 반장과 조장 언니가 아는 척을 했다. 아마도 ‘이총각’이라는 신입이 고참들과 같은 하얀 모자를 쓰고 다니는 걸 눈여겨보았던 듯싶다. 워낙 수줍음이 많았던 총각은 늘 입사동기들하고만 가까이 지냈는데 그렇게 자기한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는 게 나쁘지 않았다. 일단 안면을 트고 나니 화장실 가는 길목에서 그 언니들이랑 자주 인사를 하게 됐고 잠깐이나마 얘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총각이 예비자 교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니 언니들도 성당에 다닌다며 더 반가워했다. 그즈음 교리 공부 재미에 푹 빠져 있던 까닭에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생겨서 좋았고 삭막했던 공장생활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루는 반장인 신애자 젬마 언니가 성당에 지오세라는 모임이 있는데 같이하자고 했다. 총각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조금씩 공장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기도 했고 지오세가 어떤 모임인지도 궁금했다. 동일방직에서 반장과 조장들은 관리자로부터 대우도 받고 인정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모임이라면 분명히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지오세 모임에 처음 간 날은 아마도 68년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벽 근무를 하는 내내 몹시 설레고 긴장되었다. 모임에 참가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또 무슨 의미인지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그날 저녁 화수동성당의 지오세 모임방에서 새 회원 환영회가 열렸다. 젬마 언니를 비롯한 지오세 선배들과 신입회원이 다섯명 정도 함께했다. 총각은 낯선 사람들 앞이라 도무지 쑥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두들 동일방직 직원이라는데도 낯이 설기만 했다. 과자 같은 먹을거리를 차려놓은 것도 생소했다. 젬마 언니의 환영인사에 이어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들어와 열심히 일만 해온 총각에게는 지오세의 환영식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관심이었고 인간적인 대우였다. 자기 얘기를 남들 앞에서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내놓고 떠들 만큼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사람씩 하는 얘길 들어보니 모두들 사정이 비슷했다. 왠지 그들이 하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고 다 이해가 되는 일들이었다.

지오세는 벨기에 출신인 요셉 카르댕(1882~1967) 추기경이 1925년 4월 브뤼셀에서 창설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통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1958년 11월16일 카르댕 추기경이 집전한 명동성당 미사에서 박성종(프란치스코) 신부를 지도신부로 박명자·송명숙 등 9명이 투사 선서를 하면서 발족했다.

총각이 속한 인천교구에서는 1964년 11월 화수동성당에서 첫번째 지오세 팀이 만들어진 뒤 조금씩 회원이 늘고 성장해가는 중이었다. 마침 대규모 여성노동자가 일하는 동일방직이 있어서 화수동성당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

환영회를 계기로, 총각을 포함한 여섯명이 한 팀이 되어 매주 한번씩 지오세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지도는 젬마 언니가 했다. 총각은 이 모임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되지만 처음부터 노동조합에 대해서 교육을 하거나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지는 않았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모임은 지극히 생활 중심의 나눔이었다. 먼저 <관찰·판단·실천>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받고 6~7개월간 훈련을 받았다. 지도는 투사 선서를 한 선배들이 맡았다. 내용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먼저 하느님의 자비하고 냉철한 눈으로 관찰하고, 다음은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판단하고, 그리고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늘 무심코 봤던 것들, 혹은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또 혼자가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해결해 나감으로써 그 과정에서 믿음이 쌓이고 더욱 친밀감이 높아졌다. 카르댕 추기경은 이런 훈련의 결과를 두고, 지오세 회원 개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 어떤 혁명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말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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