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각은 1978년 2월21일 나라 안팎을 놀라게 한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사건’을 계기로 ‘공순이에서 노동자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왼쪽 사진은 78년 당시 노조 사무실에서 남성 어용노조원들이 뿌린 똥물을 뒤집어쓴 채 망연자실해 있는 양영자(왼쪽 뒷모습)씨 등 조합원들, 오른쪽 사진은 2012년 11월 인천 만석동 동일방직을 방문한 필자가 사건 현장인 노조 사무실에서 현 노조 지부장(오른쪽)과 함께한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
1978년 2월21일 새벽 5시50분, 동일방직 노동조합 간부들은 밤새워 투표 준비를 하며, 야근을 마치고 나오는 조합원들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노동조합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위원장을 뽑아 민주노조의 기틀을 확고히 해나가던 터라 회사는 물론 정부 당국의 탄압과 감시가 극에 이르러 있었다. 그동안 회사의 사주를 받은 반조직 남성노동자들의 행패를 지긋지긋하게 겪은 노조 집행부는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해 경찰에 보호 요청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섬유노동조합 본부(섬유본조)에서도 관계자들이 나와 상황을 점검하며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인천시 만석동에 자리한 동일방직은 원면을 수입해 실을 뽑거나 천을 짜는 회사였다. 입사와 동시에 노조에 가입한 1383명의 조합원 가운데 1214명이 여성이었으나 노조위원장은 항상 남성의 몫이었다. 72년 현재 전국섬유노조 조합원의 83.2%가 여성이었지만 그 어디에도 여성이 위원장인 곳은 없었다. 그런데 그해 5월 동일방직에서 주길자가 첫 여성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민주노조운동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있으나 마나 한 부서로 여겨지던 노동조합이 노조 기본권을 확보하고 조합원의 의식을 향상시키는 본연의 활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75년 주 위원장이 무사히 임기를 마친 데 이어 이영숙이 여성 위원장의 대를 이었다. 그러자 회사의 탄압은 극심해졌고, 이영숙은 돌연 결혼과 함께 퇴사하고 말았다. 노조는 총무가 그의 남은 임기를 대행으로 수행한 뒤 이제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새 위원장을 선출하기로 했다.
이총각이 바로 그 총무로 새 위원장 후보였다. 회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의 재선을 막으려 했다. 그는 밤새 뜬눈으로 지새워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노동조합만은 지켜내야 한다는 결의로 가득 찬 조합원들이 있어서 든든했다. 이제 선거를 무사히 마치면 정상적으로 노조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야근을 마친 조합원들은 서둘러 작업대를 정리하고 4열종대로 질서정연하게 공장 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작업복 차림에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움직이니 한층 투쟁의 열기가 고조되는 분위기였다. 얼핏 노조 사무실 옆 의무실 뒤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노조 사무실도 차츰 커져가는 조합원들의 노래와 행진 소리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투표함을 지키며 초조하게 앉아 있던 조합 간부들은 모두 일어나 조합원을 맞을 채비로 분주해졌다. 바로 그 순간 노랫소리가 끊기더니 비명이 들려왔다. 모두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역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천인공노할 만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반조직의 남자 행동대원들이 재래식 화장실에서 방화수 통에 똥을 담아와 마구 뿌려대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졸지에 똥물을 뒤집어쓴 조합 간부들은 그저 외마디 비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줄지어 투표장으로 오던 조합원들 상황은 더 아수라장이었다. 도망가던 조합원들을 끝까지 쫓아가 얼굴과 입과 젖가슴에 똥을 집어넣기도 하고 아예 통째로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그런데 경찰과 섬유본조 사람들은 조합원들의 애원에도 팔짱을 낀 채 히죽거리며 이 지옥 같은 상황을 구경만 했다. 급기야는 “야! 이 쌍년아! 가만있어. 이따가 말릴 거야”라며 덩달아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똥물이 바닥나자 행동대원들은 투표함이며 사무집기들을 마구 때려 부수며 “네년들, 어디 투표하나 보자”고 윽박지르더니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밖의 소란한 소리에 공장 작업 현장에서 뛰쳐나온 조합원들은 망연자실 주저앉았다. “아무리 없이 살았어도 똥을 먹고 살지는 않았다”며 울부짖는 여성들의 통곡소리 너머로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똥물투척 사건. 노동자로서 기본권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결국 이총각을 비롯한 124명의 조합원이 해고된 채 똥물과 함께 파괴됐다. 그날 이후부터 농성에 돌입한 동일방직 노조의 투쟁은 80년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로 모든 시민 활동이 정지될 때까지 이어졌다.
동일방직 민주노조의 마지막 위원장 이총각은 그날 지켜내지 못한 투표함이 평생 마음의 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과 명예를 잊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 35년의 세월 동안, 이총각의 삶 구석구석에는 그가 사랑하는 조합원 동지들이 있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한겨레 인기기사>
■ 돌아온 김구라 “세련된 독설 하려 더 많이 노력할 것”
■ 가정 평화 위한 우리 부부의 선언 “싸워도 각방은 안돼”
■ “도 넘은 일베의 일탈은 ‘증오범죄’ 수준…더이상 좌시 안돼”
■ 박원순 시장 “국정원 문건은 서울시민 모독”
■ [화보]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추모 문화제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한겨레 인기기사>
■ 돌아온 김구라 “세련된 독설 하려 더 많이 노력할 것”
■ 가정 평화 위한 우리 부부의 선언 “싸워도 각방은 안돼”
■ “도 넘은 일베의 일탈은 ‘증오범죄’ 수준…더이상 좌시 안돼”
■ 박원순 시장 “국정원 문건은 서울시민 모독”
■ [화보]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추모 문화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