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2006년 10월 아시아교육연구원을 열고 아시아 지역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차세대 젊은 지도자들에게 전수하는 데 매진하다 2009년 과로로 쓰러진 끝에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사진은 아시아교육원장 취임 직후인 2006년 11년 화해상생마당 창립모임 때 축하 건배를 제안하는 필자.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89
2005년 말까지 월드비전 국제본부 북한국장 활동을 마친 오재식은 2006년 10월 아시아교육연구원을 열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 박상증 목사를 이사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초대 원장을 맡았다.
고희를 훌쩍 넘은 나이였지만 그는 아시아교회협의회 도시농촌선교회 간사 시절 12년을 비롯해 반평생을 아시아의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우리의 아시아 인식에 대해 깨달은 점이 많았다. 우리는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시아인이 아닌 척 착각하는 것 같았고, 아시아의 역사·문화·종교에 무지하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듯했다.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을 미국이나 유럽인들에 비해 차별하거나 멸시하고, 여행을 가서도 아시아 현지인을 내려다보며 돈으로 위세를 떠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모욕을 당한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아시아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미국 중심의 가치관도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인의 한 사람인 우리는 아시아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식은 여생의 마지막 과제로 삼아 아시아교육연구원을 시작했다. 분야별로 아시아를 깊이 이해하는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고자 했다. 나날이 늘어나는 일감 덕분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현장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서 피곤한 줄 몰랐다. 2003년부터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초빙교수도 맡아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 즐거웠다.
그런데 2009년 4월말 몸에 이상이 나타났다. 폐렴 증세로 열이 38도를 넘더니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몸에 오한이 들면서도 땀이 났다. 하지만 강연 약속 등으로 바빠 병원에 갈 생각은 못하고 신인회 후배인 백병원의 내과 전문의 최두걸에게 전화로 상담을 했다. 우선 약을 지어 먹고 견디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증상을 들은 최두걸은 당장 병원으로 와 입원하라고 다그쳤다. 재식의 폐렴은 상당히 진행되어 담당 의사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재식은 입원한 김에 얼마 전부터 눈 밑에 생겨나 신경이 쓰이던 종기도 치료하기로 했다. 여러 검사를 해본 끝에 뜻밖에도 피부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서둘러 수술을 받았다. 나중에 들으니 수술 후유증으로 침샘이 마르거나 앞을 못 볼 수도 있다고 해서 아내 노옥신은 혼자서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었다.
재식은 어쩔 수 없이 아시아연구원 원장에서 물러났다. 걱정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해서 병원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피부암 치료가 다 끝난 뒤에도 암은 전이가 될 수 있기에 3개월마다 정기적인 검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던 2010년 5월, 몸 전체를 찍는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을 했더니 췌장에 이상이 발견됐다. 조직검사에서 결국 췌장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6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췌장암 3기로 최종 판명됐다.
하지만 재식은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한 병원 치료와 아내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에 식이요법을 하며 편안한 일상을 지내다보니, 다행히 체력이 많이 회복됐다. 주치의는 재식의 고령을 고려해 치료기간을 길게 잡고 약물과 주사 치료를 병행하자고 했다. 항암치료 때면 1시간 동안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그때마다 옥신은 늘 함께 고통을 나눴다.
팔순에 이르러서야 은퇴를 한 재식은 늘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마음을 전하고자 이메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 국외 활동으로 떨어져 있을 때도 자주 손편지를 보내고 생일 선물은 꼬박꼬박 챙기던 그였다. 그런데 이제는 큰딸 경원은 미국, 둘째딸 지원은 서울, 아들 승현은 일본에 흩어져 있어서 한꺼번에 소식을 전하기에는 이메일이 편리했다. 아내 옥신은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둘째 지원에게 재식의 건강 문제를 자주 의논했고, 그러면 지원은 미국의 언니와 상의하는 일이 많았기에 막내 승현은 늘 답답해하기도 했다.
이메일의 제목은 사는 동네 이름을 따서 ‘수유리 통신’으로 정했다. 재식은 편지에 자신의 몸 상태나 주변의 안부는 물론이고, 삶과 종교·철학·정치·문화·환경 등에 관한 소신을 친근한 어투로 담아 전했다. 수유리 통신은 2010년 6월29일 시작해 2012년 8월까지 모두 62통을 썼다.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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