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2002년까지 6년간 한국월드비전 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친선대사 등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과 인연을 맺어 큰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 사진은 그의 권유로 긴급구호팀장을 맡아 9년간 활약해준 오지여행 탐험가 한비야(왼쪽)씨가 2004년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모습.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88
오재식은 2002년 12월로 한국월드비전 회장 6년 임기를 마쳤다. 그러자 국제월드비전에서는 북한 관련 사업이 시작 단계이니 조금 더 일을 해줬으면 한다며 그를 국제본부의 북한사업부 담당자로 임명했다. 재식은 2005년 말까지 꼬박 3년간 북한 외무성을 파트너로 대북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그는 다른 사람, 다른 나라를 돕는 바른 지혜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됐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유럽연합의 엔지오(NGO) 소속으로 함경도 지역으로 의료지원을 갔던 한 의사는 다리가 썩어 들어가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피부이식을 해줄 지원자가 없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내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북한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런데 훗날 그 의사는 서울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사실을 소개했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가톨릭의 국제구호기구인 카리타스 홍콩지부장 첼베거는 북한을 지원할 때 아주 신중하게 처신했다. 자신이 한 일을 알리기보다 도움을 받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 그런 까닭에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그에게 전국 어디든 다녀도 좋다는 절대신뢰를 보냈고, 첼베거는 늘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를 다녔다. 그곳 주민들은 첼베거를 보면 ‘마더’라고 부르며 반겨주었다.
재식도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남대문시장 등에서 속옷이나 양말을 가득 사서는 밤새 집에서 상표를 일일이 잘라냈다. 지원을 받는 북한 사람들의 처지와 그들의 자존감을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월드비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모금이었다. 전임 이윤구 회장 때부터 시행한 ‘동전 모으기’를 재식도 계승했다. 가게마다 학교마다 저금통을 나눠줘 동전을 모아 오면 후원금으로 접수해주는 방식이었다. 동전 모으기는 방송사에서도 캠페인을 많이 해주어 성과가 좋았다. 특히 연예인 친선대사나 재식의 권유로 합류한 한비야씨가 학교 강연을 가서 저금통을 나눠주고 다니면 모금액이 부쩍 늘기도 했다.
동전 모으기는 말 그대로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1년이면 20억원을 모을 정도였는데, 특히 아이들에게 작은 정성으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교육 효과도 있어 좋은 모금 방식이었다.
기아체험 프로그램도 효과가 좋았다. 해마다 한차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장충체육관이나 잠실 역도경기장 같은 곳에서 야영을 하며 24시간 동안 물만 제공하고 금식하게 함으로써 지구촌에는 밥을 굶는 또래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에스비에스>(SBS)의 윤세영 회장은 건설회사 사장 시절 한국월드비전의 여의도 건물을 지어준 인연도 있어 많은 도움을 줬다. 월드비전의 이사이기도 했던 유재권 국회의원을 통해 재식은 윤 회장을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 그 덕분에 에스비에스에서 기아체험 프로그램을 생중계하면서 자동응답시스템(ARS) 전화모금 방식을 국내 처음으로 시도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을 친선대사로 참여시키는 홍보 방식도 월드비전에서 앞서서 시도했는데, ‘국민 어머니’ 탤런트 김혜자씨를 비롯해 정애리·박상원씨 등이 수고를 해주었다. 김혜자 친선대사는 방송에 한번씩 출연할 때마다 전화모금액이 부쩍 증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재식은 친선대사들과 외국 봉사활동도 많이 다녔다. 한번은 캄보디아로 지뢰제거운동을 갔는데, 김 친선대사가 재식의 작업복이 해져서 찢어진 틈으로 속옷이 보인다고 일러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그는 ‘월드비전 회장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일할 정도로 검소하더라’고 소문을 내주기도 했다. 평양에 함께 간 적도 여러번이었는데, 북한 당국에서 재식과 상의도 하지 않고 그를 김일성 묘소가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데려가려 한 적이 있었다. 남쪽의 인기 배우라니까 선전용 사진을 찍으려고 한 것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재식은 북쪽 안내원을 말다툼하다시피 설득한 끝에 겨우 중단시켰다. 안내원이 상부로부터 문책을 당할 수도 있어서 우리 일행은 게이트 통과만 하고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은 채 다시 나오는 ‘꾀’를 쓴 것이다.
재식이 월드비전을 통해 맺은 또 하나의 좋은 인연은 오지여행 탐험가로 이름난 한비야씨였다. 재식은 그가 써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읽어보고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와 처제가 아는 사이였다. 재식은 처음 만난 그에게 월드비전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권했고, 그도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려 긴급구호팀을 9년간이나 맡아주었다. 그는 긴급구호 활동 5년간의 체험을 담아 펴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베스트셀러로 성공을 거두자 그 인세 수익금을 모두 월드비전에 기부하기도 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고 오재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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