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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박원순씨 요청에 참여연대 공동대표 수락 / 오재식

등록 2013-05-02 19:41수정 2020-07-12 21:16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84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 창립 공동대표도 맡아 국내 활동에 나섰다. 사진은 95년 3월 서울 서초동 변협회관에서 열린 참여연대 제1회 정기 총회.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 창립 공동대표도 맡아 국내 활동에 나섰다. 사진은 95년 3월 서울 서초동 변협회관에서 열린 참여연대 제1회 정기 총회.

1993년 5월 환갑을 앞두고 아내와 약속한 대로 한국으로 돌아온 오재식은 모처럼 휴식을 즐겼다.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 새로운 활동 계획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와의 만남은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조영래 변호사가 후배이니 잘 좀 지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소개했다.

조 변호사는 70년 전태일 열사 장례식 때 처음 만나, 서로 참 좋아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그가 수배를 당해 숨어 다닐 때 일본에 있던 재식은 선교사를 통해 도피자금을 보내기도 했다. 90년 제네바 본부에 있을 때 그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울 출장길에 병문안을 했는데, 그 만남이 지상에서 마지막이었다. 조 변호사는 그 한달 뒤인 12월12일 4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안타까운 인연 때문에 조 변호사의 후배인 박 변호사하고도 자주 만나 친해졌다.

하루는 박 변호사가 조희연 교수와 함께 찾아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같은 엔지오(NGO·비정부기구) 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구상을 한참 설명하더니 공동대표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재식은 난감해하며 거절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귀국하기 전 제네바로 경실련 사무총장인 서경석 목사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재식이 서울대 기독학생회 간사를 할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 ‘편지를 하지 굳이 비행기 값까지 들여 찾아왔느냐’고 하자 그는 진지한 자세로 재식에게 경실련의 두번째 대표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때는 먼곳까지 부러 찾아온 그에게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내가 너무 지쳐서 쉬고 싶으니, 귀국한 뒤 상황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얘기했다. 그러니 다른 단체 대표를 맡는다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 변호사의 고집도 보통이 아니었다. 여러 곡절 끝에 재식은 수락을 하고야 말았다. 바로 참여연대였다. 애초 명칭은 ‘법정의실천연합’(법실련)이 될 뻔했는데, 변호사들이 많이 참여해서 법을 앞세우려 했던 것이다. 마침내 95년 3월 참여연대 제1회 정기총회에서 재식은 홍성우 변호사, 김중배 전 <한겨레> 대표와 함께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서 목사로서는 서운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무렵 재식은 다른 일도 추진중이었다. 93년 귀국 직후 인사차 강원용 목사를 찾아간 자리에서 크리스찬아카데미로 들어오라는 말씀에 그도 생각해둔 일이 있어 흔쾌히 승낙했다. 바로 사회교육원이었다. 그런데 강 목사는 예산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번에도 김정문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 선생은 귀국한 그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뭐든 돕겠으니 얘기만 하라고 했고 덕분에 사회교육원은 수월하게 출범할 수 있었다.

재식은 사회교육원을 함께 끌어갈 사람들을 섭외했다. 평화 부문은 한국교회협의회(NCCK)에서 일하고 있던 정지석 목사(현 국경선평화학교 교장), 지역·국제 부문은 두밀분교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던 장호순 박사, 환경 부문은 스웨덴에서 복지를 공부하고 돌아온 신필균 연구원이 맡았다. 여기에 자료를 담당할 이은희 간사와 회계까지 모두 6명의 팀으로 구성되었다.

사회교육원에서 가장 중점을 둔 사업은 새로운 사회지도자를 키우는 일이었다. 재식이 세계교회협의회 일을 하느라 외국을 돌아다닌 5년 사이 한반도는 안팎으로 격변기를 지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군사독재정권에서 시민민주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중이었고, 밖으로는 독일 통일, 소연방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권 몰락 등으로 세계사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재식은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지도력이 필요하고, 그런 인재를 키울 대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맨 가운데부터 오른쪽으로 필자·홍성우·박원순 변호사 등이다.
맨 가운데부터 오른쪽으로 필자·홍성우·박원순 변호사 등이다.

정지석 목사는 처음 재식에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생소했지만 훗날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보니 ‘예언자적인 탁견’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재식이 사회교육원을 만든 또다른 목적은 기존의 정치권력만 다투는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력을 수용할 새 정당의 출현을 지원하는 데 있었다. 더불어 이제 막 싹튼 시민사회단체들을 키우고자 했다.

그가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사회교육원 원장을 맡은 것은 얼핏 우연처럼 보이지만, 일찍이 기독학생운동 때부터 사람 키우기와 조직하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온 그로서는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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