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1990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주최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전(JPIC) 세계대회’에 참석하고자 2년 만에 귀국했다. 사진은 한국교회협의회 권호경 총무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대회 한국준비위원회의 89년 11월 회의 장면.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82
1988년 5월 오재식이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개발국장으로 부임할 무렵 스위스 제네바의 본부에서는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전’(JPIC) 프로그램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생겨난 배경에는 앞서 83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협의회 6차 총회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을 주제로 한 밴쿠버 총회를 계기로 세계 교회는 ‘생명’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식도 한국교회협의회(NCCK) 대표단의 일원으로 밴쿠버 총회에 참석했다. 그 무렵 유럽 회원들은 ‘안보’(security)라는 주제에 강박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독일 통일 7년 전이었지만 그때 이미 독일을 중심으로 동-서유럽 사이에는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특히 동서 통합을 통해 모든 나라가 잘살자는 ‘공동의 안보’라는 개념까지 거론되고 있었다.
재식은 밴쿠버 총회 때 국제문제 분과에 참여했는데, 유럽 회원들 중심으로 ‘공동의 안보’(common security)에 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재식은 손을 들어 발언을 자청하고는 앞으로 나가 15분가량 발표를 했다. 요지는 ‘공동의 안보도 좋지만, 내가 아시아에서 일해본 경험으로는 민중의 안보(people security)가 더 중요하다. 국가에 속한 국민의 안보보다는 일반 민중의 안보를 생각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가 세계협의회 총회에서 정의와 평화를 논의하는데 자꾸 국가 중심의 안보를 이야기하는 것은 좀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독일 대표들로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반론이 들어왔다. 하지만 인도 출신인 사회자 파울로스 마르 그레고리오스는 ‘유럽의 경험과 달리 아시아 역사에서는 민중에 대한 관점이 특별하다’고 반박하고 재식의 발언을 정식 의제로 받아들였다. 재식의 이 발언은 나이난 코시가 정리한 세계협의회 국제위원회(CCIA)의 회의록에 ‘피플 시큐리티라는 개념이 처음 국제무대에 제안되었다’는 내용으로 기록됐다. 이는 훗날 세계협의회의 논고에 ‘민간안보’라는 개념이 등록되는 계기가 됨으로써 큰 의미를 인정받았다.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전’ 프로그램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62년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맞닿아 있다. 이때 교황 요한 23세는 사회정의 교서를 발표해 전세계 가톨릭은 물론 국제사회 전반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66년부터 바티칸과 세계협의회에서는 서로 로마와 제네바를 오가며 사회정의 문제에 관한 토론을 함께 했다.
63년 4월에는 국제적 분쟁지대인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1차 소데팍스(SODEPAX) 대회’가 열렸는데, 소데팍스란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와 세계협의회가 교회일치운동 차원에서 구성한 ‘사회·개발·평화위원회’의 준말이다. 소데팍스는 지구상에서 빈곤과 전쟁을 없애기 위해 전세계 그리스도교회가 일치단결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인간 세계를 건설하는 데 중심이 되자는 목표를 내걸고 출범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69년 세계협의회에서는 정의와 평화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74년 베를린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JPSS)를 추구하자는 인식이 에큐메니컬 운동사에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세계협의회는 87년 프레만 나일스의 제안에 따라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전 세계회의’를 서울에서 열기로 했다. 이는 한반도 문제가 에큐메니컬의 중요 회의 의제로 떠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침내 90년 3월5~11일 서울에서 세계회의가 열렸다. 재식도 당연히 회의 참석을 위해 2년 만에 서울을 방문했다.
세계 100여개 나라 교회 지도자 100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서울에서는 한국교회협의회 권호경 총무를 중심으로 준비위원회를 꾸려 만반의 대비를 했다. 그런데 대회 전날 밤까지 통역기계가 확보되지 않아 비상이 걸렸다. 제네바에서 보낸 통역 설비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천세관에서 통관시켜주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교회협 총무인 김영주 목사가 당시 인권위 사무국장으로서 교섭에 나서 한밤중에야 간신히 설비를 찾아올 수 있었다.
그해 세계회의는 80년대 후반 들어 심각해지고 있던 환경파괴·기후온난화 같은 지구적 차원의 생태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함께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지키고 보살펴야 한다’는 새로운 기독교인의 과제를 제시했다. 중요한 점은 그 생명이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임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위협은 생태적인 위협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을 공유한 이 회의는 이후 ‘생명신학’을 탄생시키는 씨앗을 품고 있기도 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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