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1988년 5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개발국장을 맡아 귀국 6년 만에 스위스 제네바의 본부로 나갔다. 사진은 개발국을 만든 미국 출신 신학자 딕 디킨슨으로 87년 11월 서울까지 찾아와 재식에게 개발국을 맡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81
1988년 5월 오재식은 또다시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개발국(CCPD) 국장을 맡기로 했다.
그가 제네바 본부로 가게 된 것은 87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딕 디킨슨의 간곡한 설득 때문이었다. 김용복 박사의 주선으로 재식을 찾아온 디킨슨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신학대 총장이었는데, 그는 아시아교회협의회(CCA)를 만들 때도 큰 공헌을 한데다 세계협의회에서 개발국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재식도 평소 그를 존경했다. 그는 재식에게 개발국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아시아 도시농촌선교회(URM) 경험도 풍부한 재식이 누구보다 적임자여서 세계협의회 위원들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며 자신은 그 뜻을 전하고자 대표로 파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개발국의 부위원장이었던 김 박사도 디킨슨의 전임자였던 훌리어 산타나와 잭 랑커에 대해 알려주며 거들었다.
하지만 재식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 자신 오랜 외국 생활에 지쳐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아내 노옥신은 제네바 얘기를 꺼내자마자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재식에게는 도농선교회 시절 추진했던 사업들을 본부 차원에서 마무리해보고 싶은 의욕도 있었다. 그래서 아내를 설득하기로 했다. “내 꼭 약속할게. 환갑이 되면 꼭 한국으로 돌아오리다.” 평생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만 해온 아내에게 그는 이렇게 손가락까지 걸며 맹세하고 또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88선언’의 국제화를 위해 4월 인천 송도에서 ‘세계기독교 한반도평화협의회’를 여는 와중에 인수인계를 해야 했기에 재식은 정신없이 분주한 봄을 보냈다. 당장 제네바에서 지낼 집을 구해야 했는데, 지금까지는 늘 아내가 알아서 했던 터라, 직접 해보니 간단치가 않았다. 그나마 처음 계약한 집은 2층짜리였는데 퇴행성 관절염으로 불편한 아내에게 맞지 않아 다시 옮겨야 했다.
세계협의회에 개발국이 생긴 배경에는 70년대 아시아 전역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이 있었다. 국제기금이나 다국적기업들이 아시아 저개발국 곳곳에 진출해 막무가내로 개발사업을 벌였고, 대부분 독재체제였던 저개발국에서는 강압적으로 국민을 착취해 개발업자들의 이익을 보장하며 상생을 도모해 갈등과 몸살을 빚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시아협의회에서도 개발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고, 재식은 도농선교회 시절부터 개발 문제 담당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하비 퍼킨스와 자주 의견을 나누었다.
이때 퍼킨스가 했던 “개발은 개방하는 것”이란 정의는 아주 탁월한 명언이었다. 개발(development)은 ‘봉투를 여는 것’(de-envelopment)이니 개방하라는 뜻이다. 퍼킨스는 ‘개발하려면 정부도, 사람도 개인주의에서 개방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렇게 공동체(community)를 만들고 연대(solidarity)를 이루는 것이 개발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재식은 제네바에서 개발국 업무를 시작할 때 바로 이 ‘개발의 정의’를 여러모로 적절하게 활용했다. 그때 세계협의회 총무는 에밀리오 카스트로, 국제부장은 나이난 코시였으며, 국제부에는 빅터 슈와 드웨인 엡슨이 있었다. 나이난 코시, 빅터 슈, 에릭 와인가트너는 ‘도잔소 회의’를 진행했던 사람들이라 이미 친분이 있어 재식이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계협의회에서는 그해부터 선교부를 중심으로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전’(JPIC)에 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시아협의회 시절 함께 일했던 프레만 나일스가 그 토론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한국 해직교수들의 사회 밑바닥 체험기를 모아 <민중신학> 책을 펴냄으로써 ‘민중’(MinJung)을 한국 신학의 특징을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자리잡게 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재식은 나일스의 일에 자연스럽게 참여했고, 개발국도 그 프로그램에 차츰 깊게 빨려들어갔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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