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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통일백서’ 발간 위한 백서기초위원회 꾸려 / 오재식

등록 2013-04-24 19:43수정 2013-04-25 15:43

1986년 스위스에서 열린 첫 글리온 회의의 성공과 감동에 힘입어 남북 기독교계는 이후 국외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 89년 4월 미국 워싱턴디시 근교 체비체이스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남-북-미 통일협의회의 합동예배 때로, 앞줄 왼쪽부터 필자 오재식, 김운봉(조선그리스도교연맹), 박경서(세계협의회), 고기준(조선그리스도교연맹).
1986년 스위스에서 열린 첫 글리온 회의의 성공과 감동에 힘입어 남북 기독교계는 이후 국외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 89년 4월 미국 워싱턴디시 근교 체비체이스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남-북-미 통일협의회의 합동예배 때로, 앞줄 왼쪽부터 필자 오재식, 김운봉(조선그리스도교연맹), 박경서(세계협의회), 고기준(조선그리스도교연맹).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78
1986년 9월 초순 스위스에서 남북 기독교계가 제1차 글리온 회의를 한 직후인 9월29일 하와이에서 한-북미 교회협의회가 열렸다. 당시 한국교회협의회(NCCK)는 한-미, 한-독, 한-일 등 외국 교회와 협의회를 조직해 국제적인 협력과 교류를 넓혀가고 있었다.

84년 10월 도잔소 회의를 계기로 국외에서 남북문제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 논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활발하게 진행됐다. 한-북미 협의회에는 미국만이 아니라 캐나다 교회 대표들도 많이 참가했다. 미국 쪽 주제 강연은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 총장인 도널드 슈라이버가, 한국 쪽 주제 강연은 민중신학자인 서광선 이화여대 교수가 맡았다.

서 교수의 강연에는 ‘죄책 고백’에 관한 내용이 흐르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켜 서로 증오하고 미워한 죄를 미리 고백한 뒤 그 바탕 위에서 화해의 기틀을 마련해야 평화를 이룩하고 결국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요지였다. 또 지리적·군사적 분단과 대립만이 아니라 마음의 분단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그는 ‘분단의 신학’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분단을 극복하는 신학이야말로 부활 신앙이며 한국민의 부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때 발의된 ‘죄책 고백’은 88년 한국협의회가 채택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하 88선언)의 틀을 제공했다. 한-북미 협의회의 기초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참가한 오재식은 그때 결의한 문서를 꼼꼼히 정리해 자료로 만들어 두었다.

앞서 1차 글리온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국협의회 교단 대표들은 남북이 함께 참여한 성찬식과 기독교 대표들의 만남에 크게 감동했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되어 국외 한인 기독자나 북한 교회와의 교류를 내키지 않아했던 일부 회원과 교회들도 남북 교류에 적극 호응하기 시작했다.

이 기운을 살리고자 재식은 통일위원회를 통해 크고 작은 ‘통일’ 논의 모임을 자주 열었다. 각 교단의 목사를 포함해 15~20명의 통일위원들은 모임이 열릴 때마다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전두환 정권에서는 모임 자체를 방해하거나 참석하지 못하도록 회원들에게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소규모로 비공개 진행해야 했다. 그런 중에도 재식은 통일위원회에서 한국협의회 차원의 <통일백서>를 만들자고 건의했다. 통일위원회에서는 한국 기독교의 평화통일 의지를 담아낼 백서 편찬을 하기로 결의했다. 재식은 곧바로 백서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선정된 9명의 기초위원은 강문규·김용복·김창락·노정선·민영진·서광선·이삼열·오재식·홍근수였다.

그런데 선정을 하고 보니 모두 남성이었다. 그 때문에 재식은 여성단체나 대표들로부터 자주 지적받곤 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지만, 재식은 늘 마음에 걸렸다.

통일위윈회에서 젊은 청년들, 즉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등의 회원과 통일문제에 관심 있는 교수, 통일문제 전문가 등으로 모임을 열었다. 그때마다 백서 기초위원들은 회의록을 잘 기록한 뒤 따로 모여 토론을 했다. 기초위원들은 좀더 정교한 작업을 위해 분야에 따라 세 팀으로 나누었다. 신학적인 토대나 기반을 기술할 신학팀, 남북 정부를 향한 통일정책을 제안할 정치사회팀, 통일 희년 선포 등을 포함한 한국 교회의 임무를 위한 교회갱신팀이었다. 이들은 전체 또는 팀별로, 비공개 모임에 적당한 장소가 없어 서울 외곽의 낡은 여관을 빌려 하루나 이틀 꼬박 밤을 새우며 토론에 열을 올리곤 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그런 노력 끝에 86년 12월 통일위원회는 인천 송도의 비치호텔에서 ‘평화통일에 관한 협의회’를 열었다. 이즈음에는 민주화운동이 열기를 더하며 반독재 여론이 비등하던 때라 정권 쪽에서도 직접적으로 노골적인 간섭은 하지 않았다.

재식은 이날 협의회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었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어 일본으로, 스위스로, 미국으로 떠돌며 국제 여론을 조성한 지 4년 만에 드디어 국내에서도 공공 장소에서 공식 토론회를 열게 됐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평화통일 협의회에서는 각계각층의 대표와 회원들이 참가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의를 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9명의 백서 기초위원들은 나서지 않고 경청하고 기록하는 데 몰두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는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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