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한국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추진한 통일협의회가 1982~84년 당국에 의해 번번이 무산되자 세계교회협의회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국제 행사로 열기로 했다. 사진은 당시 전두환 정권과 공안당국의 온갖 압력에도 재식을 믿고 지지해준 교회협의회 총무 김소영 목사.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75
1982년 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산하 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오재식은 전두환 정권과 경찰의 방해로 통일협의회 개최가 무산되자 실무자들과 함께 다시 전술을 짰다. 모든 준비와 장소까지 마련해놓은 뒤 비밀리에 소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83년 3월 애초 예약해놓은 장소에서 빌려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5월로 연기해 다른 곳을 빌렸는데 이번에는 난방 배관이 터져서 장소를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두차례나 석연찮은 이유로 예약을 취소하자 재식은 담당자들을 찾아가 따져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사실은 경찰 쪽에서 압력이 들어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와중에 재식은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기 시작했고, 교회협의회 총무인 김소영 목사에게도 ‘오재식을 퇴출시키라’는 전방위 압력이 들어왔다. 하지만 김 총무는 그런 얘기들을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재식에게 “내가 최선을 다해서 외부 압력을 막아낼 터이니, 자네는 일에만 열중하라”고 격려했다.
특유의 오기가 발동한 재식은 어느날 종로5가 기독교회관 관할인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담당 과장을 만났다. “자네들이 이렇게 방해를 하면 나는 이 회의를 외국에서 열어서 한국 통일 문제를 국제적 운동으로 만들겠다”고 압박했다.
84년 2월 교회협의회 3차 총회에서는 당국에서 두차례나 통일협의회를 방해공작으로 무산시킨 데 대해 규탄하며 ‘하나님이 이 역사와 이 민족의 하나되게 하시는 일이 우리의 선교적 사명’임을 확인했다. 그사이 재식은 김 총무와 의논 끝에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해 두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려는데, 한국 정부의 압력으로 할 수가 없으니, 국제위원회에서 국제회의를 소집해서 우리를 불러달라. 국제회의에는 남북이 다 같이 참가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4월 한-북미 3차 교회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세계협의회에 국제적 연대를 요청하는 발표문을 채택했다. 그러자 세계협의회에서도 수락한다는 연락이 왔고, 논의 끝에 그해 10월 일본에서 한반도 통일협의회를 열기로 실무적인 합의를 봤다. 국제위원회에서는 일본 협의회 준비를 진행하도록 직원 2명도 파견해줬다. 대만인 빅터 슈와 캐나다인 에릭 와인가트너였다.
그런데 한가지 풀어야 할 난제가 있었다. 국가보안법에 따라 제3국에서라도 북한 사람과 만나려면 사전에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열릴 통일협의회에 북한 대표도 초청하기로 했으니 접촉 승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침 서광선 목사의 주선으로 재식은 국가안전기획부 차장 현홍주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검사 출신인 그는 대북정책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훗날 국회의원을 거쳐 노태우 정권 말기 주미 대사로 나갔다. 재식은 그에게 세계협의회에서 파견된 활동가 2명과 함께 만날 것을 요청해 동의를 받았다. 현 차장은 위장 사무실을 두고 있던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의 22층 식당으로 재식 일행을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재식은 통일협의회의 취지와 함께 당국의 방해로 일본에서 국제회의 형식으로 열게 된 경위를 터놓고 이야기했다. “이번 협의회에 남쪽 대표단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해달라. 또 북한 대표단도 초청할 예정인데, 나라 밖에서 열리는 행사지만 우리 정부의 규칙은 따르겠다. 북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알려달라.”
그즈음 거리에서는 거의 날마다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고, 그 순간에도 밖에서 시위대의 구호 소리가 들려왔다. 현 차장은 “원
래 평화협상이라는 것이 전쟁 중에 하는 거 아닙니까? 한창 전투 중일 때 그만 끝내자고 협상하는 거지, 전투를 끝내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군인들은 총 쏘고 싸우지만 위에서는 몰래 협상하는 거죠.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밑에서 저렇게 데모를 하니, 우리 직원들은 나가서 막고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꼭대기층에 앉아 평화협상을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가령 내가 ‘오케이’하면 세계협의회나 한국교회협의회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줘야 합니다.”
재식은 외교적인 원칙은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책임지고 허락을 하겠다며 ‘하지 말아야 할 행위들’을 일러준 뒤 협의회에 참가할 10명의 이름과 신원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날 담판을 통해 남북한 기독인 대표들이 마주 앉아 함께 통일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역사적인 도잔소 회의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고 오재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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