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민주사회건설세계협의회’로 출범한 한국민주화기독자동지회(민주동지회)는 80년대 이후까지 한국과 세계 교회를 연결짓는 고리로 기여했다. 사진은 도쿄에서 오재식과 함께 민주동지회의 실무를 맡았던 김용복 교수(오른쪽 셋째)와 패리스 하비 목사(오른쪽 넷째)가 74년 무렵 일본 기독인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71
1975년 가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5차 총회가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렸다. 세계협의회에서는 총회에 앞서 11월6~7일 세계 교회 대표들을 스위스 제네바에 먼저 모이도록 주선했다. 제네바 시내의 가톨릭영성센터에서 열린 한국 문제에 관한 긴급 비공식 모임에는 미국·독일·캐나다·영국·싱가포르·스위스·네덜란드·일본 등 각국 교회 지도자들과 박상증(스위스)·이상철(캐나다)·장성환(캐나다)·이삼열(독일)·오재식과 강문규(일본)·이승만과 손명걸(미국) 등 국외 한국 기독자 6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 오기로 한 김관석·안병무·문동환은 출국금지로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이 회의에서 한국의 상황을 보고받은 외국 교회 지도자들은 세계 교회가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국 기독교인들이 조직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미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기에 따로 남아서 회의를 한 끝에 11월8일 ‘한국민주사회건설세계협의회’(WCDK)를 결성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의장에는 김재준, 사무총장 지명관, 사무차장 겸 대변인 박상증, 회계 손명걸이 맡았으며, 중앙위원회 위원은 북미의 이상철·이승만·손명걸·김인식·홍동근, 일본의 오재식·지명관·김용복·최경식, 유럽의 박상증·장성환·이삼열·신필균, 한국의 이태영·강문규 등으로 구성했다.
이 협의회의 명칭은 77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국민주화기독자동지회’(약칭 민주동지회·ICNDK)로 바뀌었다. 78년 이후에는 김관석 목사가 의장을 맡고, 사무국장은 76년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박상증 목사가 맡는 등 임원진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 구성원은 지속적으로 연대 활동을 해 나갔다.
민주동지회의 헌신적 활동에 감명받아 이들을 돕는 외국 그룹도 속속 생겨났다. 스웨덴에는 ‘한국위원회’가 있어 칼 악셀, 카린 아커란 등이 활동했고, 미국에서는 75년 11월19일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위원회’(약칭 북미연대)를 결성했다. 북미연대의 총책임자는 감리교 선교부 총무인 페기 빌링스였다. 빌링스는 북미연대의 초대 총무인 김상호 목사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자, 2대 총무이자 ‘다가’(아시아교회협의회 도시농촌선교회 산하 정보센터)의 연구원인 패리스 하비에게 북미연대의 실무를 맡기고, 감리교 아시아 담당 팻 패터슨과 함께 민주동지회를 지원하도록 했다. 75년 미국으로 이민 간 구춘회가 북미연대에서 빌링스를 도와 일하면서 민주동지회의 회계를 맡기도 했다. 빌링스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국 민주화 지지 여론을 끌어내 미국 정부를 움직일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미 감리교 선교부의 예산으로 한국 단체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한국을 방문해 재식을 만난 적도 있었는데, 눈이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였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민주동지회는 결성 이후 해마다 한번씩 모여 활동 방향을 토론했다. 이들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반지하조직으로 국외에서 국내 운동을 지원한다는 기본 방향을 정해두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는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를 연계하는 일이 중요했다. 민주동지회는 직접적인 투쟁에 나서기보다 국내의 민주화운동을 세계 교회에 알리면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켜 그들이 한국의 교회와 민주화운동을 돕도록 길목을 열어주는 데 주력했다.
민주동지회는 78년부터 기관지 <민주동지>를 한글·영어·일어로 발간했고,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집필을 위한 정보 수집과 제공에도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81년 독일의 바트볼회의에서는 그동안 캐나다에 두었던 조직의 본부를 도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의 보관 및 배포를 위해 정보센터인 다가 안에 ‘도쿄 도큐멘트 센터’를 설치해 한국에서 알려오는 소식
을 전세계에 알리도록 했다. 자연히 도쿄에 있던 재식과 지명관·김용복이 그 정보를 정리해서 알리고 국외 단체나 세계 교회로부터 모금한 기금을 배급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민주동지회는 물밑 활약을 통해 76~77년 미 하원의원 존 프레이저가 주도한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의 ‘한국문제 청문회’, 80년 일본노동조합의 ‘김대중 구명운동’과 ‘한국행 물자 선적 거부 운동’, 국제노동기구(ILO)의 ‘한국 노동자문제 공식 논의’ 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 80년대 중반부터는 남북 종교인의 통일 대화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등 한국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큰 몫을 해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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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재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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