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중정, ‘티케이생’ 못찾자 ‘미CIA가 배후’ 보고 / 오재식

등록 2013-04-08 20:54

오재식은 1973~88년 일본 이와나미출판사의 월간지 <세카이>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 연재되는 동안 ‘개미떼’ 같은 무수한 협조자들을 엮어 정보를 모았다. 사진 왼쪽부터 연재를 제안한 야스에 료스케 편집장, 익명의 필자 ‘티케이생’이었던 지명관 교수와 두 사람을 이어준 선우휘 당시 <조선일보> 주필.
오재식은 1973~88년 일본 이와나미출판사의 월간지 <세카이>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 연재되는 동안 ‘개미떼’ 같은 무수한 협조자들을 엮어 정보를 모았다. 사진 왼쪽부터 연재를 제안한 야스에 료스케 편집장, 익명의 필자 ‘티케이생’이었던 지명관 교수와 두 사람을 이어준 선우휘 당시 <조선일보> 주필.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66
오재식은 평소 ‘개미떼’라는 말을 즐겨 썼다. 이를테면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개미떼는 그들만의 활동으로 역사를 움직이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주역이라는 뜻이다. 1970년대 그가 도쿄를 중심으로 전개한 한국 민주화운동 지원 활동에는 ‘개미’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심과 헌신을 보여준 용기 있는 이들이 무수히 많았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하 한국 통신)은 바로 그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역사의 무대에서 조명을 받은 것은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내는 시사잡지 <세카이>(세계)에 발표된 ‘티케이생’(T·K生)의 글이지만, 그 글이 한편 한편 쓰이기까지 수많은 개미떼의 활약이 숨어 있었다.

‘한국 통신’을 쓴 익명의 필자 ‘티케이생’은 바로 지명관 교수였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존재는 유신과 신군부의 독재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가 된 뒤에도 오랫동안 ‘비밀’이었다.

72년 재식의 권유로 일본에 남게 된 지 교수는 73년 어느날 버스정류장에서 <세카이> 편집장인 야스에 료스케를 우연히 만났다. 두 사람은 앞서 68년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와 같은 고향(평북 정주) 출신이자 평양중학과 경성사범 선배로 절친했던 선우휘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 주선해준 자리였다.

그날 이후 지 교수와 재식은 야스에와 자주 만나 한국의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히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언론 상황을 심각하게 여겼다. 유신 이후 계엄령으로 한국의 모든 언론은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했고, 그것은 외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국 특파원들은 한국 정부에서 불러주는 내용만 써야 했고, 취재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불만이 아주 많았다. 이런 얘기 끝에 야스에는 지 교수에게 한국 상황을 제대로 알리는 기사를 써서 <세카이>에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지 교수나 재식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재식이 한국 내 정보와 소식을 수집해 제공하면 지 교수가 이를 정리해 원고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한국 통신’은 <세카이> 73년 5월호부터 88년 3월호까지 15년간 매달 연재되었다. 매회 원고지 70~100장에 이르는 글을 꼬박꼬박 써낸 지 교수도, 그토록 오랜 기간 연재를 밀어붙인 야스에도 예사 인물은 아니었다. 야스에는 ‘티케이생’을 보호하고 ‘한국 통신’을 계속 연재하고자 승진도 마다하며 끝날 때까지 편집장 자리를 지켰다.

야스에는 특히 티케이생을 보호하기 위해 매회 치밀하고 세심한 작전을 폈다. 지 교수가 보내준 원고를 부인이나 비서에게 필사하게 한 다음 원문은 밤마다 자신의 집 마당에서 불살라버림으로써 아예 증거를 없앤 것이다. 야스에의 예상대로 ‘한국 통신’이 주목을 받자, 한국 정부는 일본 공안에 협조를 요청해 몇차례나 출판사를 압수수색했다. 그때마다 그는 필적이 다른 원고를 제시함으로써 한국의 중앙정보부나 일본 경찰에서 필자를 찾아낼 수가 없게 만들었다.

이와나미 출판사 사장도 유독 ‘한국 통신’ 연재를 고집하는 야스에에게 화를 내곤 했으나, 정작 외부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앞장서 그를 방어해주었다. 훗날 사회당 당수를 지낸 도이 다카코 의원은 야스에의 부탁에 따라 지 교수와 재식의 비자 갱신을 도와주는 등 보이지 않게 보호해준 ‘개미’였다.

국내 상황을 손바닥 보듯 정확하게 담고 있는 ‘한국 통신’을 통해 군사정권의 치부가 계속 드러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당장 티케이생을 밝혀서 잡아오라고 명령해 중정에서 특수부까지 만들어 찾아나섰지만 그는 끝내 누군지 모른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채 유신의 종말을 맞았다. 그는 ‘개미떼’의 위력을 몰랐던 셈이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선우휘였다. 지 교수와 야스에를 맺어준 당사자이고 자주 일본도 방문했던 그는 분명 ‘티케이생’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불러 자주 함께하는 술친구였던 그는 ‘한국 통신’ 때문에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 함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티케이생은 여러 명인 것 같다’고 거짓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훗날 재식은 ‘티케이생’을 잡으려고 도쿄에 파견됐던 중정 특수부에서 빈손으로 귀국한 뒤 이렇게 보고했다는 뒷얘기도 전해들었다. “아무래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일본 공안도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그 뒤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한겨레 인기기사>

진주의료원 노조 “귀족노조로 매도한 홍준표 고소”
아침식사 들쑥날쑥 복부지방 차곡차곡
고기의 ○○이 심장병 부른다?
서울 토박이, 올레 걷다 제주도에 눌러살다
MS “1년뒤 윈도XP 지원 전면 중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주말 ‘윤석열 탄핵’ 10만 깃발…“소중한 이들 지키려 나왔어요” 1.

주말 ‘윤석열 탄핵’ 10만 깃발…“소중한 이들 지키려 나왔어요”

“박근혜보다 죄 큰데 윤석열 탄핵될지 더 불안…그러나” [영상] 2.

“박근혜보다 죄 큰데 윤석열 탄핵될지 더 불안…그러나” [영상]

윤석열 쪽, 헌법재판관 3명 회피 촉구 의견서 냈다 3.

윤석열 쪽, 헌법재판관 3명 회피 촉구 의견서 냈다

응원봉 불빛 8차선 350m 가득…“윤석열을 파면하라” [포토] 4.

응원봉 불빛 8차선 350m 가득…“윤석열을 파면하라” [포토]

검찰, ‘윤 체포 저지’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또 반려 5.

검찰, ‘윤 체포 저지’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또 반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