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1966년 상반기 조지 토드(장로교 도시선교사업부장)가 제안한 프로그램에 따라 3개월 동안 미국 전역의 주요 흑인폭동지역을 탐방했다. 사진은 55년 백인 우대 버스좌석제를 거부해 구속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왼쪽)와 이를 계기로 9년간 비폭력 투쟁을 이끌어 흑인민권법을 제정해낸 마틴 루서 킹 목사(오른쪽).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37
1966년 봄 예일대 신학대학원 도서관으로 찾아온 조지 토드는 오재식과 마주 앉자마자 질문을 해댔다.
“대학원 마치면 뭐 할 거냐?”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집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럼 이번 여름방학 때는 뭐 할 거야?” “방학 때는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 삯 벌어야 해.” “비행기표 값이 얼마나 드는데?” “1000달러쯤 들 거야.”
토드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어디서, 어떻게 그 돈을 벌 거야?” “알아봤는데, 뉴욕 근처에는 일자리가 없어서 디트로이트 공단으로 갈 거야. 거기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면 한달에 350달러 준다고 하더라. 석달 정도 벌면 1000달러는 모을 것 같아.”
재식은 이미 자동차회사 일자리를 소개받아 둔 터였다. 토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또다시 물었다.
“만약 말이야. 1000달러를 다른 방법으로 벌 수 있다면 디트로이트에 가지 않아도 되냐?” “그야 가능하겠지. 소개해준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면 되니까.” “그럼 내가 그만큼 벌게 해줄 테니까 취소해라.” “나야 좋지.”
토드는 자신이 짜주는 3개월짜리 프로그램대로 실행하면 된다며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뒤이어 그에게서 프로그램이 왔는데, 단순하게 보면, 3개월 동안 고속버스인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레이하운드는 99달러짜리 티켓만 있으면 99일 동안 어디든 이용할 수 있었다. 봉투에는 여비와 함께 방문해야 할 지역의 목록이 들어 있었다. 프로그램의 ‘미션’은 워싱턴 디시(D.C.)부터 애틀랜타, 텍사스, 댈러스,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주요 흑인폭동지역을 돌아보며 원인을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앞서 65년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참여 규모도 컸고 거의 폭동 수준에 가까워 일부 도시에서는 건물이 불타는 등 전례없이 격렬한 저항이었다.
그 발단은 55년 12월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시에 사는 흑인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주도 아래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비롯한 기나긴 비폭력 투쟁이 이어졌고, 64년 결국 앨라배마주의 흑백분리법이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젊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는 63년 6월 교육·취업 등에서 흑인들의 인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하는 흑인민권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케네디가 그해 11월 댈러스에서 암살당하면서 법안은 의회에 묶여 버렸고 흑인사회에서는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폭력을 고수하는 킹 목사와 흑인 권력을 확산시키려는 맬컴 엑스가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64~65년 도시 빈민지역을 중심으로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폭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재식은 우선 코네티컷에서 2시간 거리인 뉴욕으로 가서 버스를 탔다. 첫 목적지는 워싱턴 디시였다. 2시간30분을 달려 워싱턴 터미널에 내린 그는 무작정 택시부터 잡았다. 그런데 운전기사에게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자, 그는 재식을 힐끔 쳐다보더니 갈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외국인이시죠? 왜 그곳에 가려 합니까?” “아는 사람이 있어서 꼭 가야 해요.” “거긴 외국인은 못 가요. 여긴 택시도 못 가요. 아니 안 갑니다.” “내가 꼭 가야 할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부탁 좀 합시다. 거기서 하룻밤을 꼭 자야 하거든요.” “거긴 흑인들 분쟁지역이에요. 외국인이 갔다가는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죽으면 데려다 준 내가 책임을 져야 해요.” “나는 여기가 처음이고, 내가 아는 주소는 이곳밖에 없어요.”
재식의 간곡한 설득에 기사는 결국 차를 몰았다. 차창 밖으로 보니 완전히 흑인들만 사는 동네였다. 마침내 한 건물 앞에 선 택시는 재식을 내려주고는 쏜살같이 되돌아 나갔다. 그 순간 건물 안에서 한 백인 청년이 나오더니 짐만 안에 들여놓고는 곧
장 재식을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자기 소개조차 생략한 그는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재식에게 주민들에 대해 쉴새없이 설명을 했다. 이 집은 누가 살고 있는데, 작년에 다리를 다쳐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저 집의 아들은 언제 죽었다, 그 앞집은 언제 이혼을 했고, 또 그 옆집 아저씨는 술에 절어 산다는 등등 그 많은 사람들과 그 집들의 사정을 훤하게 꿰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쯤 온 동네를 돌고 난 뒤에야 그는 점심을 먹자며 재식을 식당으로 이끌었다. 그는 토드가 전국적으로 조직해놓은 도시산업선교부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나서야 재식은 기막힌 프로그램을 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고 오재식 선생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