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오른쪽 둘째)은 1960년부터 4년 동안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에서 연구간사로 함께 일한 선교사 제임스 레이니(왼쪽 둘째)와 평생토록 가족 같은 친분을 나눴다. 사진은 60년대 초반 한 모임에서 나란히 참석한 두 사람으로, 은퇴한 뒤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가 최근 보내온 것이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34
1964년 여름 오재식은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협의회) 간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 발단은 제임스 레이니 선교사의 제안 때문이었다.
어느날 레이니는 재식에게 물었다. “이제 곧 안식년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미국에서 1년을 보낸 뒤 다시 한국으로 와야 할까?”
그가 속한 미국 감리교에서는 국외 파송 선교사에게 5년째 되는 해에 1년씩 안식년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60년부터 협의회의 연구간사를 맡아온 그도 이듬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감리교 교단에서는 그가 당연히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서너차례 맞으며 한 지역에서 10년 이상 활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식은 “노!”라고 딱 잘라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많이 컸다. 네가 할 일은 이제 미국에 가서 한국을 위한 ‘베이스’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독학생운동이 언제까지나 국내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 당신이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과도 관계가 있으니 우리가 국제화할 수 있도록 ‘베이스 앵커’가 되어주면 좋겠다.”
사실 레이니는 그때 기독학생운동을 돕기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호흡을 잘 맞춰온 파트너 재식을 계속 도와주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재식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하니 그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생각을 좀 해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재식 역시 그때 진심으로 얘기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건방진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 파견된 일부 선교사들은 좋지 못한 행실로 사람들로부터 비판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니는 그들과 전혀 달랐다.
앞서 얘기한 대로, 레이니는 해방 직후 47년 미군 첩보대(CIC) 요원으로 한국에 처음 왔다. 그는 종종 재식에게 요인 암살 사건 등 그 시절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2년 뒤 군복무를 마치고 귀국했던 그는 한국전쟁이 터져 수많은 양민이 죽어간다는 소식에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예일대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연민을 잊지 못했던 그는 선교사로서 두번째 한국 근무를 자원했던 것이다. 그는 부임 초기 잠깐 동안 재식의 아내 노옥신에게 한국말을 배우기도 했지만 곧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 익혔고 나중에는 우리말로 설교를 할 정도로 유창해졌다.
당시 재식의 집은 정동제일교회 옆에 있던 옛 러시아공사관 근처에 있었다. 협의회 사무실은 교회에 부속된 젠센센터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걸어다녀도 10분이 안 걸릴 정도로 가까웠다. 그래서 레이니는 부인 버타와 함께 자주 집으로 놀러 와 옥신과도 친해졌다. 그렇게 4년을 마치 한가족처럼 지냈다. 레이니는 2012년 미국에서 보낸 이메일에서 재식을 한국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재식의 의견에 고민해 보겠다고 한 레이니는 1주일 뒤 결정을 내렸다. 그는 먼저 버타와 오랫동안 상의한 끝에 재식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막상 그런 얘기를 들으니 재식은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재식에게 그는 이미 예일대 신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지원해 놓았다고 덧붙였다. 재식이 잘된 일이라며 맞장구를 치자, 그제야 레이니도 예의 그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 레이니는 다시 재식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너도 나하고 같이 예일대학에 가자!” 그때까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유학이었기에 재식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니는 그냥 한번 해본 말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재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인생 물줄기를 바꾸어줄 수도 있는 고마운 제안을 받고도 재식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내심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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