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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4·19시위대 헤치고 천신만고끝 첫아이 / 오재식

등록 2013-02-14 19:36수정 2013-02-14 20:48

오재식은 폐결핵 치료중이던 1960년 봄 서울 안암동 고려대 부근에 살 때 4·19혁명을 겪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한 4월26일 거리를 메운 시위대의 저지를 뚫고 아내 노옥신을 병원까지 데리고 가 무사히 첫딸을 얻었다. 사진은 당시 고대생을 비롯한 시민들이 안암동에서 동대문으로 진출해 시위하는 광경.  <한겨레> 자료사진
오재식은 폐결핵 치료중이던 1960년 봄 서울 안암동 고려대 부근에 살 때 4·19혁명을 겪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한 4월26일 거리를 메운 시위대의 저지를 뚫고 아내 노옥신을 병원까지 데리고 가 무사히 첫딸을 얻었다. 사진은 당시 고대생을 비롯한 시민들이 안암동에서 동대문으로 진출해 시위하는 광경. <한겨레> 자료사진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29
1960년 오재식이 폐결핵을 치료하느라 세상과 격리돼 있는 동안 시국 상황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2년 동안 3번에 걸쳐 대통령을 연임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거듭된 실정과 독재로 민심을 잃은 지 이미 오래였다.

그해 5월 제4대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인한 이승만 정권은 집권 연장을 위해 3월15일로 선거일을 앞당기고는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당선 공고는 났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4월초 남해의 항구도시 마산에서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나섰다가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에 버려진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주검이 떠올랐다. 이에 분노한 시민과 학생들이 더 많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민심에 귀를 닫고 있던 이승만 정권은 이를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고무되고 조종된 행위’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해 기름을 부었다. 마침내 4월19일 서울은 물론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수천명의 고교생·대학생들이 들고일어났고 경찰은 이들에게 발포를 했다. 이 만행으로 서울에서만 약 130명이 죽고 1000명 넘게 다쳤다. 그날로 이승만 정권은 전국의 주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잠시 주춤했던 시위는 4월25일 대학교수들이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하는 제자들을 지지하며 서울시내를 행진하면서 다시 불붙었다. 그다음날 서울시내의 모든 차가 멈추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날, 첫아이를 가진 노옥신이 산통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집은 고려대 근처 안암동이었고, 그간 다니던 병원은 청량리 위생병원이었는데 교통수단이 전혀 없으니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옥신은 큰오빠 집으로 전화해 올케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차하면 집에서 낳을 생각이었다. ‘산파’라 불리던 조산원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출산을 많이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올케는 신문로에서 안암동까지 걸어서 와주었다.

그렇게 침착하게 첫 출산 채비를 하는 옥신과 달리 재식은 집에서 아기를 받는다는 사실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평소 고혈압 증세도 있는 옥신이기에 자칫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까 걱정이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친구 김환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사관 직원들도 모두 밖에 나가 있는 비상상황이었을 텐데 다행히도 그와 연결되었다. 그런 와중에 산고를 느낀 옥신이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비 아빠’ 재식의 마음은 더욱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다급한 상황 설명에 친구는 집 주소를 묻더니 한참 뒤 미국인 직원과 함께 차를 타고 찾아왔다. 부랴부랴 옥신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거리를 메운 학생 시위대가 차를 막아섰다. 차에 그려진 미국 성조기를 보고 도피하려는 사람들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결국 재식은 차에서 내려 급한 산모가 있음을 밝히고, 차 안에서 신음하는 옥신을 보여줬다. 그러자 학생들은 두 갈래로 흩어져 길을 내줬다. 그때부터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몇시간에 걸쳐 그는 막아서는 시위대에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해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옥신은 4월27일 새벽 순산을 했고, 재식은 첫째딸 경원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재식은 그날 열 일 제쳐두고 달려와준 친구는 물론이고 직접 차를 몰고 와준 미국인 직원의 용기가 참으로 고맙고 놀라웠다. 미국인이기 때문에 성난 시위대에 봉변을 당할 가능성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고 직접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을 무조건 도와준 것 아닌가.

그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내내 잊지 못한 재식은 훗날 경원이가 결혼해 미국에 머물 때 그 미국인을 찾아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도록 일렀다. 경원은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그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척 반갑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으면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니 굳이 찾아올 필요까지 없다’며 방문을 끝내 사양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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