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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산정현교회서 장기려·함석헌 선생과도 인연 / 오재식

등록 2013-01-16 19:22

오재식은 광복 직후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인연을 맺은 장기려 박사와 함석헌 선생을 평생 동안 스승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1951년 부산 피난 시절엔 둘째 재길 형님이 장 박사의 복음병원에서 일한 까닭에 병원 숙사에서 모여 살기도 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형수 방남해, 누이동생 재섭, 어머니 김길성, 재식, 재길씨 그리고 조카들 모습이다.
오재식은 광복 직후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인연을 맺은 장기려 박사와 함석헌 선생을 평생 동안 스승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1951년 부산 피난 시절엔 둘째 재길 형님이 장 박사의 복음병원에서 일한 까닭에 병원 숙사에서 모여 살기도 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형수 방남해, 누이동생 재섭, 어머니 김길성, 재식, 재길씨 그리고 조카들 모습이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9
1945년 9월부터 2년 가까이 머문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오재식이 맺은 인연 중에는 성산 장기려 박사도 있었다. 그때 평양도립병원장이었던 장 박사는 교회 청년부에서 재식의 둘째형 재길과 함께 활동해 자주 볼 수가 있었다. 장 박사의 큰아들 택용은 재식과 주일학교 친구였다.

장 박사와 택용을 생각할 때마다 재식은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택용은 50년 한국전쟁 직전 인민군에서 영장을 받았다.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상황이어서 불안하고 두려웠던 택용은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내면 입대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병원장인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다.

“아버지, 제가 인민군대에서 영장을 받았는데, 병원 진단서가 있으면 군대에 안 가도 된답니다.” “너, 어디 아프냐?” “아픈 데는 없어요.” “이놈아, 아프지도 않은데, 내가 어떻게 진단서를 끊느냐!”

결국 택용은 열일곱 어린 나이에 인민군으로 징집되고 말았다. 그러다 6월25일 전쟁이 터졌고 장 박사는 몰려드는 환자들 치료에 몰두했다. 10월19일 유엔군과 국군이 평양을 탈환했을 때도 그는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느라 하루 수십건의 수술을 감당해내야 했다. 이어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1·4 후퇴’를 할 때 그는 유엔군과 국군을 따라 야전병원 환자 수송차에 올라탔다. 당시 짐을 가지고 먼저 도착한 둘째아들 가용도 차에 올랐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을 챙기느라 뒤늦게 출발한 부인(김봉숙)을 피난민 행렬 속에서 발견하고도 장 박사는 차마 차를 돌려 태우지 못했다. 더구나 그 길이 가족들과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들도 치료할 겸 잠시 내려가 있으면 곧 다시 가족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길로 평양에 남아 있던 노모와 부인, 그리고 다섯 남매 아이들과는 영영 생이별을 하게 됐다. 그나마 택용이 북한에서 약학 박사가 됐다는 소식을 86년 국제적십자회의에 다녀온 지인을 통해서 전해들었을 뿐이다.

장 박사는 피난 내려간 부산의 제3육군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다가 복음진료소(고신대 복음병원의 전신)를 열었다. 51년 6월 영도구에서 천막병원을 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본격적인 무료 진료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때 재길도 장 박사를 도왔다. 재길은 일제 때 딴 약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병원 약방을 맡으며, 관리 업무도 책임졌다. 비록 천막병원이었지만 외과는 장 박사, 내과는 전종휘 박사가 진료를 맡아 매일 20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부산에 무료 병원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자 인근 지역에서도 매일같이 환자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게 된 장 박사의 삶은 재식에게 늘 ‘마음의 사표’가 됐다.

재식이 함석헌 선생과의 인연을 만난 것도 산정현교회에서였다. 함 선생의 고향은 장 박사와 같은 평안북도 용천이다. 용천은 광복 이전 가장 기독교가 번성했던 곳으로 손꼽혔다. 40년 1월초 서울 정릉에 있던 ‘무교회주의 선각자’ 김교신 선생의 집에서 처음 만난 장 박사와 함 선생은 일생 동안 가까이 지내며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다.

장 박사는 산정현교회 시절 자주 함 선생을 초빙해서 청년들에게 강의를 해주도록 주선했다. 함 선생의 한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해석이 있는 강의는 교회 청년들에게 늘 인기가 있었다. 구한말 썩고 병든 사회를 기독교 신앙교육을 통해 새 세상으로 만들어보자는 건학 이념을 세웠던 오산학교와 일본 유학으로 쌓은 식견에 그를 흠모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청년 재길도 예외가 아니어서 함 선생의 첫 강의에 그만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이는 고스란히 재식에게 영향을 끼쳤다. 함 선생의 강의를 듣고 온 날이면 형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 동생을 앉혀 놓고 그 말씀을 전해주곤 했다. 어린 재식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새로운 역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왠지 모를 마음의 설렘이 일어나곤 했다.

함 선생과의 인연은 47년 봄 앞서거니 뒤서거니 월남을 한 이후 내내 이어졌다. 재식은 비록 형을 통해 알게 됐지만 함 선생의 사상과 면모를 흠모했고, 그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교회일치(에큐메니컬) 운동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이영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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