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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자존심 강했던 ‘추자도’ 어부의 아들 / 오재식

등록 2013-01-06 19:44수정 2013-01-06 21:18

오재식 선생이 태어난 전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위치한 추자도는 귀양 가다 풍랑을 피해 정착한 이들이 많은 ‘유배의 섬’이었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로 추정되는 추자도의 전경. <제주100년 사진집> 중에서
오재식 선생이 태어난 전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위치한 추자도는 귀양 가다 풍랑을 피해 정착한 이들이 많은 ‘유배의 섬’이었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로 추정되는 추자도의 전경. <제주100년 사진집> 중에서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1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렸다. 제주도로 가기 위해 뭍을 떠난 배는 자주 세찬 바람과 높은 파도에 휘청거려야 했다. 추자도는 전라도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에 있다. 예로부터 정치적 유배를 당한 사람들이 귀양지인 제주도로 가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면 들렀다가 아예 주저앉아 살곤 했다.

오재식은 1932년 음력 12월15일 추자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전태씨와 어머니 김길성씨의 4남2녀 중 다섯째다. 당시 여염집에서 흔히 그러했듯 출생신고는 두어 달 늦게 해서 호적상으론 1933년 3월26일생이다.

그의 집안이 언제부터 추자도에 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의 부모들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어렸을 적 어머니는 먼 친척인 ‘국 주사’에게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주사’(主事)는 관리를 뜻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벼슬이다. 그런 점으로 봐서 외가 쪽 집안은 정배를 당해 이곳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컸다.

재식의 위로는 재완, 재길, 재규 형님과 재임 누이가 있었고 밑으로는 막내 여동생 재섭이 있다. 한학을 공부했던 재완 형님은 몸이 약해 일찍 돌아가셨고, 재규 형님도 이젠 안 계신다. 재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재길(정농회·제주생명농업 창립자) 형님은 현재 제주도에 계시고, 재임 누이는 여전히 추자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막내인 재섭은 가족을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추자도의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고기잡이배도 없는 어부였다. 남의 집 뱃일을 해주고 물고기 몇 마리 받아 오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식구들 배곯지 않게 하려고 무진장 일을 해야 했다. 농사를 많이 짓는 부잣집에서 밀을 수확하면 어머니는 밀을 갈아 가루를 내주는 일을 했다. 그러면 품삯으로 밀 찌꺼기를 받아 왔는데, 그걸로 식구들이 먹고 살았다. 조그마한 밭이 있어 콩이나 고구마 같은 먹을거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추자도는 섬치고는 잘사는 집이 많았다. 그런 집에서는 육지에서 쌀을 사다가 먹곤 했다. 재식의 집은 늘 보리 조금에 톳을 가득 넣은 시커먼 밥이 전부였다. 시커먼 밥은 어린 재식에게 배고픔에 앞서 슬픔의 대상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어린 재식은 슬그머니 교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것을 들키기 싫었다. 재식은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를 지켜준 ‘깡다구’는 추자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이 틀림없다. 가난뿐 아니라 학교 문제에서도 그러했다.

1941년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지만 재식은 입학하지 못했다. 그 사정은 여러 가지가 얽혀 있었다. 굳이 실마리를 찾자면 교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2개의 유인도와 수십개의 무인도로 둘러싸인 추자도는 그야말로 절해고도였다. 이런 곳까지 교회가 들어오게 된 것은 순전히 방계성 전도사의 힘이 컸다.

부산 초량교회 전도사였던 방계성 전도사는 어느날 초대교회 안수 목사 중 한 분인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를 가다가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서 며칠 머물렀다는 기사와 더불어 추자도를 점령한 일본인들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가뜩이나 가난한 섬사람들에게 갖은 명목을 붙여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는데다, 힘없는 양민들을 자주 괴롭힌다고 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일본인들의 행패는 날로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방 전도사는 추자도에 선교하러 들어가겠다며 자원을 했다. 그렇지만 추자도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먼저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줄 곳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을 무렵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추자도는 제주도 소관이면서 행정적으로는 전라도에 속해 있었다. 방 전도사가 추자도로 들어간다는 얘기가 퍼지자, 전북노회에까지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전북노회의 장로회 부인회에서 선교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영호남 사이 교통도 열악했던 그 시절에, 부산에서 난 소문이 전라도까지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방 전도사도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부산을 떠나온 방 전도사는 장소를 물색해 교회를 세웠다. 추자도 신양1리에 세워진 신양교회가 바로 그곳이다.

오재식 구술

구술 정리/이영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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