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한겨레가 만난 사람
‘경기도의 학교혁명’ 이끈 김상곤 교육감
‘경기도의 학교혁명’ 이끈 김상곤 교육감
3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나 다름없던 한 사립대 경영학 교수가 문제투성이 한국 교육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2009년 경기도교육감 보궐선거에 예상을 깨고 당선되더니 1년 뒤에는 “잠시 머물다 갈 좌파”라는 비아냥이 무색하게 40%가 넘는 높은 지지율로 재신임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취임 3년째를 맞이했다. 그동안 경기도 초중등교육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혁명적”이라고까지 말한다.
교사들은 ‘잡무 제로’ 시대를 맞고 있는가 하면, 자발적인 교과연수가 붐을 이루고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칙을 만들고 자치법정을 여는가 하면,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아 이사를 하고, 그에 따라 집값이 오르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다. 2012년 현재 세계 최대의 교육자치조직이라는 경기도에서 어쩌면 세계가 놀랄 만한 교육혁신이 이미 가속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교육문제만큼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편가르기를 떠나 마음을 열고 ‘김상곤의 교육혁신’을 바라봤으면 한다.
-경기도교육감에 취임한 지 만 3년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이 엄청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교육감이 됐는데, 경기 교육 가족은 물론 국민들까지 높은 관심을 보여줘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이 이제는 구체적으로 정착되고 있다. 감사와 감동을 느낀다.”
-거의 혈혈단신으로 경기도교육청에 들어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따로 비결이라도 있나?
“경기도교육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조직이다. 교사 수만 유치원을 빼고도 8만7천여명이다. 이분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면서 존중과 배려로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9년 선거에서 3대 공약 20대 주요과제를 제기했는데, 이슈 하나하나를 모두 현장 교사, 전문가들과 개방적으로 토론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저와 전문가들의 경험과 경륜이 결합하면서 상호신뢰로 나아간 게 아닌가 싶다.”
교육이 고통 아닌 행복을 생산해야
혁신학교는 특목고 같은게 아니다
경쟁 대신 협동·협력교육 중시할것 -와서 보니 경기 교육의 모토가 ‘행복한 교육공화국’이다. 그 의미를 풀어달라. “국민이 바라는 것은 행복이다. 지금까지 교육이 고통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교육이 행복을 재생산하고 극대화하는 역할을 회복할 때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어렵게 키워온 민주주의의 가치, 연대와 통합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교육을 통해 훈련하고 성숙시켜야 한다. 그 길로 가는 데 경기 교육이 앞장서자고 만든 슬로건이 ‘행복한 교육공화국’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교육과학기술부와 갈등을 빚었다. 교과부는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켜 학교 현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정부가 취해온 조처나 언급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 정부의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의식수준은 거의 시대착오적이다. 교권과 더불어 학생인권도 함께 존중받아야 한다는 건 시대의 요구이자 민주주의가 진전해가는 과정이다. 중앙정부가 앞장서서 아동인권법이라든가 학생인권기본법을 만들어 지방교육기관을 독려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발목을 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는 초기 단계에서 어려움이나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대처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이 함께 보호받고 존중되는 학교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교육이 아닌가?” -가장 먼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경기도의 실제 상황은 ? “어떤 분들은 중앙정부의 초중등교육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각 지방교육자치기관의 학생인권조례가 상치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오해이자 왜곡이다. 경기도의 경우 이미 학생인권조례에 교사, 학생, 학부모 3자 협의로 학칙을 제·개정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고, 각급 학교의 학칙에는 두발, 복장, 소지품 검사 등 학생인권과 관례된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해 놓았다. 법과 조례, 학칙 간에 논리적 모순이 없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교과부의 조처로 인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점이 우려된다.” -학교폭력 문제가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왜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구조화되고 있다고 보는가? “학교폭력의 구조화는 학교가 극심한 경쟁사회가 된 데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속에 ‘친구가 낙제하면 눈물, 친구가 1등 하면 피눈물’이란 가사가 나온다. 이게 요즘 학생들의 감성을 대변한다. 삭막한 생존경쟁, 약육강식의 학교문화를 바꿔내지 않는 한, 학생들이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도록 학교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구조적인 폭력을 해소하기 어렵다.” -학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2009년부터 우리가 해온 일들을 소개하겠다. 우선은 교권이 바로 서야 한다. 그다음은 학생인권이다. 학생인권이 존중되면 학생들이 교사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세번째는 이를 토대로 평화로운 학교 분위기를 정착시킨다. 이런 구상 아래 2010년 4월 전국 최초로 ‘교권보호헌장’을 제정하고 교권보호지원단을 꾸렸다. 지원센터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2010년 10월에는 학생인권조례를 공표하고 지난해 3월 시행에 들어갔다. 현장에서는 생활인권센터를 만들어 학생인권, 학교폭력뿐 아니라 가정폭력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지난해에는 ‘평화교육헌장’을 제정하고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평화를 체험하고 생활화하는 교육을 폭넓게 실시하고 있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다 함께 존중되는 평화로운 학교 분위기가 자리잡으면 적어도 구조적인 학교폭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교육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최근 경기도가 일으키고 있는 ‘혁신학교’ 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저의 기본 철학은 4가지이다. 가장 기본은 보편적 교육복지이다. 무상급식이 그 시작이다. 두번째는 학교문화를 교사, 학생, 학부모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체적 문화로 만드는 것이고, 세번째는 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청렴성이다. 이 세 가지를 토대로 공교육을 정상적으로 실행하는 교육모형을 만든 뒤 이를 전체 학교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그 교육모형 만들기가 바로 혁신학교 운동이다.” -특목고 형태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해야 하나? “전혀 아니다. 혁신학교는 자사고나 특목고 같은 특정 학교 유형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일반 학교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교육주체들이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 가치를 교육에 담아보자는 게 혁신학교이다. 혁신의 핵심은 교육방식을 경쟁 중심에서 협동과 협력 중심으로 바꿔 학생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제대로 키워내고자 하는 것이다.” -경기도의 혁신학교는 얼마나 되나? “3차까지 지정된 지금은 123개 본지정 학교와 49개 예비지정 학교가 있다. 총 172개 학교이다.” -혁신학교를 신청하고 지정하는 과정은? “예를 들어 도내 A학교가 혁신학교 참여를 원하면, 우선 교장, 교사, 학부모 3자가 모두 동의한 가운데 그 학교가 하고자 하는 교육 계획서 초안을 제출하고, 과반수가 외부 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서류심사와 현장면접을 한다. 이렇게 지정된 학교에는 혁신학교 운영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학교당 평균 1억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한다. 이 돈은 시설비에 쓰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모형 만들기에 필요한 교육재료 개발과 연수 활동에 쓰이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 교육 관계자들에 따르면, 혁신학교 운동은 학교 현장에서 많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업이나 생활지도 면에서 ‘문제학교’로 낙인찍혔던 학교들이 혁신학교 운동을 통해 완전히 다른 학교로 재탄생하는 극적인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ㅇ시의 한 고등학교는 한마디로 갈 데 없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였다. 그런데 혁신학교가 된 뒤 학생들이 스스로 학칙을 만들고, 수업방식을 결정했으며, 자치법정을 설치했다. 이 학교는 지금 학생들이 가장 진학하고 싶은 학교 중 하나가 되었다.”(이홍동 경기도교육청 대변인) “처음에는 일부 도의원과 교육위원들이 혁신이란 말을 트집잡아 예산을 깎아버렸다. 그럼에도 많은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혁신학교 운동에 참여했다. 제대로 된 공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갈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첫 학기에 초등 7개, 중학 6개로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몇 달 만에 이 학교에 가기 위해 이사를 오는 주민들이 생겨났다. 학교 주변 집값이 오르는 현상도 벌어져, 나중에는 부당전입자를 가려내야 하는 정도까지 갔다. 혁신학교 지정 경쟁률도 덩달아 높아져 2번째 신청 때는 4 대 1, 세번째 학기 때는 8 대 1이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쉽게 말해 학생이나 교사나 모두 학교가 가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제가 25개 교육청별로 학부모 간담회를 갖는데, 처음에는 학교에 대한 불만 토로가 먼저였는데 지금은 감사 인사가 먼저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아이가 진심으로 학교를 가고 싶어한다, 아이가 몰라보게 말이 많아졌다는 거다. 어느 학부모님은 아이에게 가장 심한 말이 ‘학교 가지 마’가 되었다며 좋아하셨다. 말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소통거리가 많아졌다는 것 아닌가? 그걸 부모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경기도에서는 적어도 교문 앞 지도 단속과 같은 교육방식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아직은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지만 혁신학교 지정 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되는 학교들이 나오고 있다.” -교사들의 자부심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자질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높다. “혁신의 핵심은 교사에게 있다. 혁신이 성공하려면 교사가 시대변화에 맞는 전문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학생 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는 교사들의 잡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학교당 행정전문요원을 1명씩 배치하고 있다. 올해는 교사 잡무 제로화가 목표이다. 교사들은 10년 재직 이후 5년마다 의무적으로 연간 60시간의 교과연수를 받도록 했다. 이천 장호원에 제2연수원이 금년 6월에 완공돼 시설도 갖췄다.” -이명박 정부가 끝나가고 있다. 교육정책을 평가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철학의 부재였다. 과도한 경쟁주의, 줄세우기 식의 승자독식주의를 부추겼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조사로 한 게 대표적이다. 특권적인 교육방식을 강화한 것도 문제였다. 특목고만도 문제가 많은데 자립형사립고까지 도입해 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 낡은 중앙집권적 교육관을 버리지 못한 채 교육자치에 역행하는 조치들을 남발했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은 물론 사실상 모든 교육감들의 손발을 묶으려고만 했다. 지방교육자치는 시대의 요청이고, 그 구체적인 모습이 경기도 교육에서 나타났는데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아이가 달라졌다며 부모가 감사인사
교사잡무 싹 없애주니 학생지도 전념
현정부 교육은 ‘승자 독식주의’ 부추겨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건에 이어 전남의 장만채 교육감이 구속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교육감 직선제가 문제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분들의 도덕성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으나, 법적인 판단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 문제를 직선제 탓으로 돌리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수단이 선거인데, 선거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선거를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본말의 전도다. 비리와 부정은 선거제도 이전에도 있었고 어쩌면 더 심했을지 모른다. 부정과 비리는 그것대로 엄격하게 다루는 한편 교육자치는 그것대로 뿌리내리고 확산시키도록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교육감 선거가 없었다면 혁신학교 같은 운동이 가능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김 교육감은 직선제의 긍정적 사례인 것 같다. 남은 임기 동안 중점을 둘 사안들은? “행복한 교육이 곧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주제넘은 소리가 아니다. 교육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내면 우리 사회가 미래지향적으로 바뀔 수 있다. 남은 2년 임기 동안 경기 교육의 변화를 통해 그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12월 대선 과정에 교육전문가로서 참여할 계획은 있나? “교육은 나라 발전의 토대다. 정파를 떠나 교육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대선 과정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길 바란다. 저도 논의를 일으키자는 측면에서 지난 2월 대학교육 혁신 7대 방안을 제시했고, 3월에는 초중등교육 혁신안을 내놓았다. 대통령선거에서 교육문제를 이슈화하는 데 내 역할을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나설 생각이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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