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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어머니의 노래’ 공연 하루 앞두고 강경대 사망 / 박정기

등록 2012-04-01 19:47

유가협 회원들은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시위 도중 치사당한 다음날인 1991년 4월27일 서울 연세대에서 <어머니의 노래> 발표회를 했다. 사진은 박정기(맨 오른쪽)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열사들의 영정을 모신 한울삶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모습이다.   유가협 제공
유가협 회원들은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시위 도중 치사당한 다음날인 1991년 4월27일 서울 연세대에서 <어머니의 노래> 발표회를 했다. 사진은 박정기(맨 오른쪽)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열사들의 영정을 모신 한울삶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모습이다. 유가협 제공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83
1991년 1월 문을 연 가족교실에 박정기는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아들이 배운 것들을 자신도 익히고 싶었던 바람이 가족교실을 통해 이루어졌다. 수업 내용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박정기는 문익환 목사 방북 비디오 관람 수업에서 깨달은 것을 이렇게 전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소상히 이해하게 됐지. 우리 현대사에서 좌익 세력을 왜 학살했는지, 지배자들이 왜 간첩을 필요로 했는지 깨닫고 실감하게 됐어.”

이오순(송광영 어머니)은 가족교실 후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선생님들로부터 자세한 가르침을 듣고 보니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팔십 노인이 손주한테 배운다는 속담이 맞다. 광영이를 잃고 나서야 민주화가 무엇인지, 독재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그것도 광영이가 남기고 간 유서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 나는 65살이 되면서 귀 눈이 일부 떠진 셈이다.”

가족교실은 유가협이 “자식 뜻을 이어받아 독재정권 타도하자!”고 외치던 구호 그대로 ‘자식 뜻을 이어받는’ 자리였다. 박정기에게 가족교실은 민주화운동가로서 자신과 유가협, 유가족 운동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가 유가협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행복한 한때였다. 가족교실을 마치던 날, 시험을 치르고 수료증을 수여했다. 2월25일 열린 제1기 가족교실 동지반 졸업식에서 허두측(김종태의 어머니)이 우등상을 받았다.

유가협은 91년 4월27일 연세대에서 <어머니의 노래> 공연을 열기로 했다. 90년 겨울부터 기획을 하고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이 공연은 유가협 후원회에서 제안하고 전진상 노래모임의 김제섭이 기획했다. 유가족들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열사들의 뜻을 전하자는 취지의 공연이었다. 노래 실력은 서툴지라도 유가족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어머니 아버지들이 직접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기획이었다. 공연 소식이 언론에 실리면서 예상치 못한 큰 관심이 쏟아졌다. 소박하게 시작한 공연은 점점 규모가 커졌다. 한울삶에서 노래연습을 하는 유가족들의 표정이 남달리 진지했다. <어머니의 노래> 공연은 백창우·박문옥·정세현·김제섭 등 민중가요 작곡가 모임인 ‘우리의 노래를 일구는 작곡가모임’ 회원들이 공동 연출했다.

박문옥·김제섭 등은 공연에서 부를 노래를 작곡했다. 작곡가들과 가까운 ‘노찾사’의 강일철과 박미선, 한돌, 노래마을 등의 가수들도 동참했다. 김제섭은 평소 뒤풀이 자리에서 유가족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눈여겨본 뒤 곡목을 선정했다. 주로 어머니 아버지들의 ‘십팔번’ 노래로 민중가요와 대중가요를 두루 선정했다.

4월26일 박정기와 유가족들은 연세대 대강당에서 노래공연 리허설을 했다. 공연 장소를 연세대로 정한 것은 일반 공연장을 섭외하기 어려운데다 박래군·정미경의 모교여서 총학생회와 소통이 원활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외에도 유가협 후원회원들 중엔 연세대 출신 청년이 많았다.

그런데 공연을 하루 앞둔 이날 한창 연습중에 명지대생 강경대의 타살 소식이 전해졌다. 곧이어 강경대의 주검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했다. 리허설 장소 바로 옆이었다.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속속 세브란스병원으로 모여들면서 연세대 교정에 전운이 감돌았다. 박정기는 리허설을 중단하고 회의를 열었다. 문익환, 문성근, 전진상 노래모임 회원, 사무국 활동가들과 유가족들이 모여 내일 공연을 취소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사건이 발생한 마당에 공연을 접어야 한다는 이도 있었고, 공연 날짜를 연기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일정 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무국 활동가들과 후원회원들은 공연을 예정대로 열자고 주장했다. 이번 공연을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여러 차례 논의를 거듭한 끝에 공연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회의를 마친 뒤 박래군과 정미경은 연세대 교정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공연 참여를 요청했다.

“투쟁도 중요하지만 오래 준비한 공연이니 어머니 아버지들이 실망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4월27일, 강경대의 죽음에 격앙된 학생들이 ‘살인정권 퇴진 결의대회’를 열 예정인 연세대 정문 앞은 전경들이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유가족들은 정문이 닫히기 직전 교내에 들어갔다. 그 후 학교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한 관객이 많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박정기가 객석을 바라보니 500명 남짓한 관객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최쪽에서 예상한 1500명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였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희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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