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박종철추모사업회를 비롯한 15개 추모단체가 마련한 ‘유가족 어버이 한마당 잔치’에서 한 여성 노동자 회원이 박정기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75
1989년 5월8일,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 열린 ‘유가족 어버이 한마당 잔치’에서 박정기는 한 노동자에게 카네이션을 받았다. 어버이날을 맞아 ‘전진상 노래모임’과 박종철추모사업회 등 15개 추모단체가 함께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효도의 뜻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서울대 동아리 ‘메아리’에서 출발한 전진상 노래모임은 88년 12월17일에도 ‘민가협 기금 마련을 위한 노래공연’을 열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노래모임 회원들은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 때 기독교회관으로 찾아와 노래로 연대했고, 만남의 집 기금마련 서화전 때도 작품을 나르는 등 일을 도왔다.
노래모임의 청년들은 이듬해 11월 유가협 후원회가 공식 출범할 때 초대 후원회원이 되었다. 청년들 중 일부는 유가협과 함께 노래로 연대하는 활동을 벌였고, 일부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창단 회원으로 합류했다.
박정기를 도와 서화전을 준비한 길벗화랑의 김재선도 노래모임 회원이었다. 이외에도 전태일문학상 출신 이행자 시인과 작곡가 김제섭, 이승혁, 박미선 등의 회원이 유가협 후원회를 이끌었다.
그때는 유가협과 관련된 행사는 정부의 방해로 여의치 않던 시절이었지만 ‘유가족 어버이 한마당 잔치’는 전진상교육관 관장인 콜레트 수녀가 나서서 무사히 열 수 있었다.
교육관 공연장엔 200명가량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유가협 유가족들을 위해 김제섭이 만든 노래 ‘눈 감으면’이 선보였다. 노래 제목은 문익환의 시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유가족들과 가장 가까운 재야인사였던 문익환은 이오순(경원대 송광영의 어머니)의 얘길 듣고 한 편의 시를 썼다.
“이상히여 눈만 감으면 광영이 뛰여다니는 게/ 여기도 저기도 보이니/ 저게 다 내 아들 광영이 아닌개비여!/ 뜨거운 불길이 여기저기 치솟는 것이 보이는구먼!/ 저 아우성이 모두 광영이 아닌개비여!”
박정기는 이오순이 입만 열면 되뇌던 말을 그대로 옮긴 시라고 알려주었다.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담은, 열사가 아닌 유가족을 소재로 한 최초의 노래였다. 이날 공연에서는 박미선이 노래를 불렀다.
“눈 감으면 보이는 내 아들딸의 얼굴/ 지금도 떠나지 않고 가슴속에서 웁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메아리도 아지랑이도/ 눈 감으면 보이는 사랑스런 모습”
공연 내내 즐거웠던 분위기는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돌연 숙연해졌다. 이오순의 노래이면서 유가족들 모두의 노래였다. 공연을 마친 뒤 박정기는 김제섭에게 말했다.
“우리 유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맹글어줘서 고맙데이.”
그 후 이 곡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연에서 불리었다.
사연의 주인공 이오순은 유가협 창립회원으로 박정기, 이소선과 함께 유가협의 전성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자신을 낮추고 묵묵히 헌신하는 그의 면모를 재야의 많은 이들이 존경했다. 이소선·박정기·배은심이 전태일·박종철·이한열의 유가족으로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이오순은 유명한 분은 아니었지만 초창기부터 거의 모든 투쟁에서 앞장서 싸워온 유가협의 맏언니였다. 이소선은 이오순을 ‘언니’라고 불렀다. 이오순과 이소선. 이름까지 비슷한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함께한 단짝이었다.
유가족들은 89년 4월30일, 세계 노동자의 날 100돌 기념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유가협 노래단을 꾸렸다. 김제섭의 제안으로 유가족이 주를 이루고, 전진상 노래모임 회원, 유가협 후원회원이 함께 만든 합창단이었다. 화음은 노래모임 회원들이 맡고 멜로디는 유가족들이 맡았다. 김제섭은 무대에서 부를 노래로 유가족들이 평소 즐겨 부르는 ‘동지여 내가 있다’ 등 두 곡을 선정했다. 노래단은 매주 한울삶 작은 방에서 김제섭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연습을 했다. 장례 투쟁과 집회 현장에서 늘 앞장서 싸우는 노릇을 맡아오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려니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4월29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전야제 문화행사의 하나로 열린 가요제에서, 박정기와 유가족들은 단체로 맞춘 티셔츠를 입고 ‘동지여 내가 있다’를 열창했다.
“외로워 마, 서러워 마, 우리가 있다. 그대 남긴 깃발 들고 나 여기 서 있다.”
‘유가협 노래단’의 합창은 전야제의 절정이었고, 노동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유가족들의 노래가 시작되자 5000여명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단의 소리가 묻힐 정도로 거의 모든 관중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유가족들의 노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의 소리가 모여 이루는 화음은 조화로웠다. 곡이 끝났지만 객석의 환호와 박수 소리는 끝날 줄을 몰랐다. 이때 노래단 경험에서 자신감을 얻은 덕분에 유가협은 91년 ‘어머니의 노래’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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