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유가협 사무실 마련 위해…서화전 준비 ‘동분서주’ / 박정기

등록 2012-03-14 20:00수정 2012-03-15 08:25

유가협은 1989년 3월31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운동 아랍미술관에서 만남의 집 마련을 위한 기금모금 서화전을 열었다.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전시 기간을 나흘간 연장하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유가협은 1989년 3월31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운동 아랍미술관에서 만남의 집 마련을 위한 기금모금 서화전을 열었다.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전시 기간을 나흘간 연장하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71
1988년 8월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을 빌려 열린 유가협 운영위원회에서 간사장 김승균이 사무실 마련을 위한 구상을 밝혔다.

“제가 민주화운동을 하는 동안 구속자가 생길 때 여러 차례 모금 차원에서 서화전을 열었습니다. 우리 유가협이 전시회를 하면 반응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 종철 아버님하고 나하고 돌아다니며 글도 받고 그림도 받으면 되지 않겠어요?”

전시회 경험이 없는 운영위원들은 신중했다.

“좋은 생각이지만 우리가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 힘들지 않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박정기는 김승균이 직접 나서겠다는 말에 힘을 얻었다. 그도 사리암의 백우 스님이 전시회를 열 때 일을 거든 경험이 있었다.

“내는 대찬성입니더. 부산에서 비슷한 일을 했으이 내와 간사장이 뭉치면 몬들 못하겠심니까?”

김승균이 반색하며 말했다.

“아버님이 나서주시면 제가 따라다니며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일을 주도할 낌새를 보이자 이번엔 회장 이소선이 목소리를 보탰다.

“우리는 농성하느라 아무 일도 못하고 있으니 종철 아버님이 돌아댕기믄서 수고를 해주십시오. 차비는 내가 빚이라도 얻어갖고 해드릴게요.”

운영위원들은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서화전을 열기로 뜻을 모았다. 이소선이 거마비(교통비)와 작품 구입비 등의 경비를 마련하기로 하고, 박정기와 김승균이 작품 수집부터 서화전까지 실무를 맡기로 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수집할 궁리가 급했다. 당장 다음날 새벽 두 사람은 부산으로 내려갔다. 백우 스님을 찾아가 ‘만남의 집 마련을 위한 서화전’ 계획을 설명한 뒤 도움을 요청했다. 스님은 자신의 소장 작품부터 모두 박정기에게 기증하고 통도사의 수안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을 소개해줬다. 그리고 부산 지역 예술가들과 교분이 두터운 두 사람을 방문하라고 조언했다.

“청남 오재봉 선생과 요산 김정한 교수를 만나 의논하면 작품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리암을 나온 두 사람은 ‘금정산의 외곬수’ 소설가 김정한부터 찾아갔다. 요산은 흔쾌히 지역 화가와 서예가들에게 직접 연락해 작품 기부를 요청해줬다. 곧이어 만난 원로 서예가 청남은 그 자리에서 글을 써서 건네주었다. 몇 명의 작가도 소개했다. 그밖에도 몇 사람을 더 만난 뒤 김승균이 제안했다.

“종철 아버님. 부산에선 이쯤 하고 이제 광주로 갑시다. 광주에선 제가 친하게 지내는 문병란 교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광주로 이동했다. 도착했을 땐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들은 문병란에게 소개받아 민족생활의학자 장두석을 찾아갔다. 장두석은 이미 광주지역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배은심·박행순(박관현의 누나)·김재훈(김세진의 아버지) 등이 함께한 자리였다. 장두석이 박정기에게 말했다.

“얼마 전 김세진·이재호 추모사업회에서 서화전을 열겠다고 해서 제가 도와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유가협에서도 한다고 하니, 전체 유가족의 염원을 이루는 데 제가 힘을 보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미처 알지 못한 이야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두석이 유가협의 서화전을 돕겠다는 말에 고무된 박정기가 광주 지역 유가족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작품을 수집하는 데 드는 경비는 광주 유가족들이 떠맡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가협 광주지회 회원들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튿날 전주로 갈 때는 배은심·오영자·김재훈도 동행했다. 전주는 화가와 서예가가 많은 지역이었다. 전주에선 조찬배(조성만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지역의 여러 예술가들을 만났다. 일정을 마친 뒤 전주역에서 헤어질 때였다. 유가족들이 박정기에게 말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우리 자식들이 광주묘역에도 있고, 모란공원에도 있고,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묘도 없이 떠도는 자식도 있습니다. 영정만이라도 한곳에 모일 수 있는 집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정기는 코끝이 찡했다. 그 말 속에 떠난 자식의 빈자리가 다시금 느껴졌다. 오래전부터 유가족들은 자식들의 영정사진을 한곳에 모시고 싶어했다. 사진이라도 마음 편하게 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금세라도 집이 마련될 듯 유가족들의 표정이 들떠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박정기는 잘 알고 있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한겨레 인기기사>

니가 김삿갓이가, 이노마
[한-미 FTA 15일 발효] 소리·냄새도 재산권 인정…약값결정 사실상 민영화
고리원전 사고 보고 늦은 건…한수원 “원전대책 발표날 이어서…”
승부조작 늪 빠진 상무 왜?
‘층간소음’ 고민하지 말고 갈등해결사 부르세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속보] 공수처 “대통령실·관저 압수수색 진행 중” 1.

[속보] 공수처 “대통령실·관저 압수수색 진행 중”

권성동 “문형배, 이재명 모친상 조문”…헌재 “명백히 거짓” 2.

권성동 “문형배, 이재명 모친상 조문”…헌재 “명백히 거짓”

“윤 탄핵 인용하면 헌법재판관들 단죄” 조선일보 게재 광고 섬뜩 3.

“윤 탄핵 인용하면 헌법재판관들 단죄” 조선일보 게재 광고 섬뜩

명태균 변호사 “다리 피고름 차도 ‘특혜’ 투서…윤석열 병원행에 분개” 4.

명태균 변호사 “다리 피고름 차도 ‘특혜’ 투서…윤석열 병원행에 분개”

‘서부지법 난동’ 58명 중 56명 구속…“도주 우려” 5.

‘서부지법 난동’ 58명 중 56명 구속…“도주 우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