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의문사 농성 끝낸 날 ‘박종철기념사업회’ 문열어 / 박정기

등록 2012-03-12 20:07

1989년 2월27일 출범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그해 5월16일 서울 종로1가 사무실에서 첫 운영위원회를 열고 현판식을 했다. 맨 오른쪽이 박정기씨, 두 사람 건너가 백기완 초대 운영위원회 회장.
1989년 2월27일 출범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그해 5월16일 서울 종로1가 사무실에서 첫 운영위원회를 열고 현판식을 했다. 맨 오른쪽이 박정기씨, 두 사람 건너가 백기완 초대 운영위원회 회장.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69
1988년 10월부터 89년 2월에 걸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기독교회관 135일의 농성’은 흩어져 있던 유가족들을 모이게 했다.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찾아와 손을 잡았다. 투쟁의 공동체였고, 외로움과 한을 나누는 해원의 공동체였다. 어떤 위로도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서로 나누는 것에 비할 수 없었다.

그네들의 바람은 한결같았다. 죽은 자식의 눈이나마 편히 감겨주는 것이었다. 그 희망이 거리에 나서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먹고, 민주화운동 사상 최장기 농성을 벌이게 했다. 그러나 그 바람은 기대와 달리 135일의 농성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무려 십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룰 수 있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로도 어떤 사건들은 미제로 남게 된 지난한 도정이었다. 135일은 그 첫걸음이었다.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는 이 시기를 거치며 ‘노투사’ 박정기로 거듭났다. 그는 농성 후반기엔 박래군·정미경이 우려할 정도로 현장에서 적극적이었다. 다른 어머니 아버지 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현대사 최초의 과거청산 활동이 된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을 통해 유가협은 민주화운동의 주축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민가협으로만 알려진 유가족들은 유가협으로 재등장했다. 그리고 이 농성을 계기로 유가협 안에 사무국과 후원회, 의문사지회가 만들어졌다.

89년 2월27일, 유가협 농성을 끝낸 바로 그날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문을 열었다. 박종철이 활동한 서울대 동아리인 대학문화연구회의 선후배들이 87년 이후 석방·사면되면서 설립을 주도했다. 서울대 동창회관에서 열린 창립총회엔 백기완·계훈제·김영삼·이소선 등이 참석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창립선언문에서 “독재정권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숨져간 박 열사의 못다 이룬 뜻을 이어받아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겨레의 통일과 민주화·자주화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기는 사업회가 고문과 인권 문제에 전념하는 단체로 성장하길 바랐다. 훗날 박종철인권상을 제정한 것은 이런 그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설립 직후 사업회는 박정기의 제안에 따라 초혼장을 준비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지난 2년 박정기의 숙원이었다. ‘박종철 초혼장’은 화장된 뒤 임진강에 뿌려진 아들의 혼을 불러 장례를 치르고 묘를 만드는 의식이었다.

몇달 전 유가협 회원들은 함께 마석의 모란공원에서 열린 한 추도식에 참석했다. 추도식 도중 박정기가 혼자 자리를 빠져나갔다.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자 의아하게 생각한 박래군이 찾아나섰다. 박래군은 등을 보인 채 서 있는 박정기를 발견했다.

“아버님, 여기서 뭐 하세요?”

뒤돌아선 박정기의 눈자위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공원에 즐비한 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가족들은 이렇게 묘가 있는데 철이의 넋은 지금도 세상을 떠돌지 않나. 애비가 되어 묘조차 만들어주지도 못한 기 한이구나. 가묘라도 해서 철이를 안장하면 어떻겠노?”

박래군이 대답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래전(동생)이도 여기 있으니 모란공원이 좋을 것 같아요.”

그도 모란공원에 아들을 묻고 싶었다. 모란공원엔 전태일·박영진·김진수·박래전 등이 잠들어 있었다. 그만큼 찾아오는 발길이 많을 터이니 아들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자주 찾아올 수 있는 곳이었다. 문제는 모란공원에 묫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은 점이었다.

박정기는 직접 모란공원의 홍아무개 사장을 찾아가 부탁했다. 그가 흔쾌히 나서주었다. 마땅한 자리를 찾기가 어렵자 홍 사장은 산자락 일부를 깎아 박종철의 묫자리를 마련했다. 전태일의 묘 뒤편 산자락이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위치였다.

2월25일 묘지를 개토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박정기는 개토를 마친 뒤 토신을 향해 기도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내는 애비로서 막내의 기구한 사랑의 운명으로 이 자리를 택했심니더. 굽어 이 인과를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 후 박정기는 모란공원을 숱하게 드나들며 홍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홍 사장은 해마다 박종철 추도식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압력을 받았지만 여러 열사들의 묘소를 마련해주고, 각별하게 열사 묘역을 관리해주었다.

박정기는 사회적 관심이 큰 장례식을 치를 때면 주로 장례위원회에서 치산을 맡았다. 현재는 박정기에 이어 맏이 박종부가 유가협 청년회장이자 치산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한겨레 인기기사>

밤마다 성폭행 당하다 도망나온 티베트 비구니
“현대차, 정몽구회장 구명 로비 친노 386의원 8명에 1000만원씩 건네”
삼성가 소송싸움 ‘계열사 이해관계’ 따라 갈리나
박세일 “전여옥 비례대표 1번은 오보”
‘배꼽’ 달린 물고기를 아십니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속보] 공수처 “대통령실·관저 압수수색 진행 중” 1.

[속보] 공수처 “대통령실·관저 압수수색 진행 중”

권성동 “문형배, 이재명 모친상 조문”…헌재 “명백히 거짓” 2.

권성동 “문형배, 이재명 모친상 조문”…헌재 “명백히 거짓”

“윤 탄핵 인용하면 헌법재판관들 단죄” 조선일보 게재 광고 섬뜩 3.

“윤 탄핵 인용하면 헌법재판관들 단죄” 조선일보 게재 광고 섬뜩

명태균 변호사 “다리 피고름 차도 ‘특혜’ 투서…윤석열 병원행에 분개” 4.

명태균 변호사 “다리 피고름 차도 ‘특혜’ 투서…윤석열 병원행에 분개”

‘서부지법 난동’ 58명 중 56명 구속…“도주 우려” 5.

‘서부지법 난동’ 58명 중 56명 구속…“도주 우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