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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스스로 조절’이 ‘스스로 공부’를 이끈다

등록 2011-04-25 10:11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시간부족 등으로 자기조절에 실패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폭식으로 힘들어하는 학생이 상담을 받는 모습과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 모습.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시간부족 등으로 자기조절에 실패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폭식으로 힘들어하는 학생이 상담을 받는 모습과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 모습.
폭식·게임 등으로 자기조절력 잃은 청소년들
‘자기주도학습’에 여전히 관심들이 많다. 부모들은 자녀의 자기주도학습력을 위해 학습 목표 설정, 시간표 관리 등에 힘쓴다. 하지만 자기주도성을 기르기 전 ‘자기관리’, 즉 ‘자기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못한다. 당장에 ‘학습효과’를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활 면에서 자기조절에 실패한 학생들은 높았던 성적도 떨어뜨린다. 자기주도적으로 몸과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식, 인터넷검색과 게임 등으로 공부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푸는 학생들을 만나봤다.

수학 서술형이 찌운 은정이의 살

“지금요? 164㎝에 54㎏이요.”

올해 서울의 한 여고에 입학한 은정(가명)양의 목소리는 밝았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은정양의 몸무게는 76㎏이었다. 은정양은 “중학교 1학년 때 살이 찐 원인은 다름 아닌 ‘공부’”라고 못을 박았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굉장히 잘했거든요. 활동도 많이 하고…. 리더십 있는 스타일이라 전교회장도 하고 그랬죠. 근데 중1 올라와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부모님 걱정과 압박이 심해졌죠. 학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집에 틀어박혀서 공부했는데 그게 참 힘들더라구요. 그때부터 먹는 걸 낙으로 삼고 공부했어요.” 그래도 집에 엄마가 계실 때는 상황이 나았다. 문제는 “그만 먹어라” 하고 제지할 사람이 없어지면서 날로 심각해졌다. 중1 여름방학. 어머니가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되면서 은정양은 방과후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용돈을 주고 가시니까 자장면, 탕수육, 빵이며 과자류 등을 엄청 사 먹고 공부를 시작했죠. 특히 수학 서술형 문제가 스트레스의 주범이었죠. 잘 풀리지 않으면 정말 미친 사람처럼 먹어대고 잠들었어요.”

비만은 공부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은 은정양의 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창 공부하고 자랄 나이니까 찌는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여대생 때 빼면 되고 지금은 공부에 전념하자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중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수학점수는 바닥을 쳤다. 살도 찔 대로 찐 상태였다. 은정양은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했다. 풀어도 풀리지 않는 수학 서술형 문제는 화를 불렀다. 화를 푼다고 먹은 음식들은 잠을 불렀다. 배부르게 먹은 뒤 자고 일어나면 새벽 2시. 포만감을 느끼며 일어나면 기분은 늘 우울했다. 시험기간에도 이런 일상이 반복됐다.

여학생들은 공부에 집중하면서 흔히 식생활 조절력을 잃는다. 미소의원 오동재 원장(<청소년 비만탈출 프로젝트> 저자)은 “음식조절의 경우, 생각을 전환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학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스트레스호르몬이 폭식을 부르는데 폭식은 죄의식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왜 먹었을까?’ 싶죠. 하지만 이 죄의식 때문에 다시 스트레스호르몬이 나옵니다. 그러면 다시 우울해지고, 결국 먹는 걸로 해결하게 됩니다. 악순환의 반복인 겁니다.” 서울특별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한정연씨는 “매번 폭식을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는 아예 음식 섭취를 안 하다가 시험 때 폭식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스키니진이 유행이잖아요. 평소에는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다가 시험기간에 먹고 싶었던 걸 엄청나게 먹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게임의 유혹, 뿌리치지 못한 지훈이

올해 중3 지훈(가명)군은 피곤해 보였다. 지난밤에도 11시쯤 학원에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새벽까지 게임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훈군은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새벽 1시까지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했다. 게임을 많이 하지만 지훈군의 성적은 전교 상위 4% 안에 든다. 진학설계도 해놨다. 외고나 자사고 등을 목표로 공부한다.

지훈군이 게임에 빠진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계기는 원만하지 않은 교우관계였다. 특별히 사이가 나쁜 친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특별히 친한 친구도 없었다. 지훈군은 “중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는 ‘왕따’도 아닌 ‘은따’가 됐다”고 했다. “‘은근히 따돌림 당한다’는 뜻이죠. 제가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 아이들이 대놓고 왕따를 시키진 않고, 은근히 따돌림을 시키더라구요. 그래서 친해지려고 애쓰다가 하게 된 게 게임이었어요.” 남중생들의 공통 관심사인 ‘게임’을 알게 된 지훈군은 한동안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보다 게임이 편해지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제가 조용하고 내성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게임 속에서는 좀 다르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됐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나 농구 좋아하고 활동적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게임 속에서만 그때 성격이 다시 드러나는 것도 같구요. 내가 이중인격자인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무섭기도 해요.”

문제는 오히려 지훈군이 게임을 하면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부모님은 지훈군한테 “성적을 이 정도로 유지한다면 게임은 네 취미니까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했다. 사실상 ‘게임’은 ‘여가’나 ‘취미’가 아니라 ‘억지로 공부’를 한 대가로 얻는 일종의 ‘보상’이었다. “공부할 것 다 하고 게임을 하니까 제 마음이잖아요. 새벽 2, 3시까지 붙들고 있어도 당당하더라구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합니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졸게 되니까요. 특히 요즘 내신이 중요하잖아요. 수업 시간에 잘 들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갈지 불안합니다.” 지훈군은 “최근에는 여자아이들이 잘 가는 ‘쭉빵닷컴’이라는 온라인 카페에 재미도 붙였다”며 “컴퓨터 중독인가 싶어서 한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에 직접 상담신청도 해봤다”고 했다.

‘자기조절’, 외로우면 더 힘들어져

은정양이 20여㎏의 몸무게를 빼고, 식탐을 조절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은정양은 “우선 학교 끝나고 곧장 집에 가는 생활 패턴을 버렸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됐다”고 했다. “곧장 집에 가더라도 중간에 한 번 정도는 집 밖에 나옵니다. 혼자 공부를 하다 보니까 지금 이 시간에 다른 애들은 학원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할 거라는 상상을 엄청 했거든요. 근데 우연히 동네 청소년수련관에 갔다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사귀게 됐어요. 수련관이나 도서관 활동을 많이 하는 친구였는데 이 친구를 알게 되면서 취미생활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록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평소 다이어리 쓰기 등을 잘 하지 않던 은정양은 “‘식단일기’ 방식으로 그날그날 먹은 것과 기분에 대해 적기 시작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훈군은 요즘도 밤 11시 귀가 뒤 게임을 한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고 공부한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진로목표가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이다. 지훈군이 올린 상담 요청에 한 누리꾼이 댓글을 달아준 게 계기를 마련했다. “‘게임이 그렇게 좋다면 ‘컴퓨터게임 스토리작가’를 해보라’고 올려주셨더라구요. 목표까지는 아니지만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게임 자체보다는 게임 스토리에 관심이 생겼죠.”

‘자기조절’이 잘 안되는 성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관련 상담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의, 보건교사 등은 “충동적인 학생들이 자기조절을 어려워하긴 하지만 반드시 성격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자기조절을 잘 못하는 데는 환경적인 요인이 강하다. 폭식이든, 컴퓨터와 게임 중독이든 자기조절을 못하고 이른바 ‘무너지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곁에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한정연씨는 “모든 사례들이 ‘부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실제로 한 시간 안에 밥, 과자, 빵, 아이스크림 등을 강박적으로 먹는 아이 옆에서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주면 잠깐 환기라도 할 수 있다.

부모의 물리적인 부재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부재도 자기조절을 어렵게 만드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한다. 특히, 부모가 지지자로서의 구실보다는 공부 압박과 부담을 주는 존재일 때 아이들은 자기조절력을 잃어버린다. 학습법전문가 이지은씨는 “평소 면박당하는 아이들의 경우 자존감이 낮은데 이런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는 이 자존감을 어디서든 찾고 싶어 하고, 자존감을 느낄 만한 곳에 매달린다”고 했다. “특히 게임의 경우에는 어딘가에 들어가 있어야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이 빠집니다. 어딘가 들어갈 곳을 찾는다는 건 현실에서 해소하지 못한 허전함이 있다는 거겠죠.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더라도 대화가 없거나 자기 의견을 무시당했던 친구들이 잘 그러더라구요.”

사춘기 내 아이, ‘스스로 조절’이 어렵다면?

자기조절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무조건 “너는 잘할 거야” 소리로 스트레스와 부담을 주기보다는 적절한 격려를 해주세요.

좋은 뜻은 말로 알리기보다는 글로 적어 알리는 게 좋습니다.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등에 자기관리와 관련한 짧은 명언이 담긴 쪽지를 붙여주세요.

목표가 생기면 스스로 왜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에서 진로탐색을 도와주세요.

자기조절이 어려운 아이들은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키우기 쉽습니다. 아이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만한 경험의 기회를 많이 주세요.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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