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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실을 바꾼 ‘신문의 힘’

등록 2011-04-04 11:45

가온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한겨레신문이 발행하는 NIE 논술 주간지 <아하! 한겨레>를 보고 있다.
가온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한겨레신문이 발행하는 NIE 논술 주간지 <아하! 한겨레>를 보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커버스토리/
신문 읽는 학교, 안성 ‘가온고’에 가다

“제 생각을 바꾼 신문기사요? 처음엔 저도 무상급식에 반대했어요. ‘충분히 급식비를 낼 수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지원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신문을 읽으며 생각을 바꾸게 됐죠.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도 그렇고 마음에 큰 상처가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재정적인 문제로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건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죠.” 경기도 안성 가온고등학교에 다니는 진솔희(17)양은 신문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있다. 진양은 한겨레신문을 즐겨보지만 다른 신문도 본다. 균형있는 시각을 갖추기 위해선 다양한 신문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양뿐만이 아니다. 가온고에 다니는 모든 학생은 의무적으로 신문을 봐야 한다. 오전 7시40분부터 정규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50분간 신문을 읽는다. 신문은 미리 신청을 받아 구독하고 있다. 매일 신문을 읽는 가온고의 전통은 벌써 10년째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신문읽기 활동은 논술과 토론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토론대회에 나가 상도 여러번 받았고 논술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도 부쩍 늘었다.

“생활 속의 교육을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신문을 읽는 것에서 시작해 엔아이이(NIE: 신문활용교육) 교재도 만들게 됐죠. 교과서 보고 문제집을 푸는 건 성적 향상에 한계가 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신문을 통해 배경지식을 쌓고 엔아이이 노트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있어요. 도시에 견줘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를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합니다.” 윤치영 교무부장은 ‘신문활용교육’을 가온고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많은 학교들이 국영수 위주의 수업을 강화하면서 대학 진학만을 좇는 것과는 비교된다. 덕분에 교사들도 바빠졌다. 이번 겨울방학 때는 학생들을 위해 ‘세상읽기, 신문읽기’라고 이름붙인 엔아이이 교재도 수준별로 만들었다. 학생들의 엔아이이 노트를 확인하고 논술첨삭까지 하면 일주일이 금세 지나간다.

가온고 교실에는 어딜 가나 신문을 볼 수 있다. 매일 400부 정도가 배달되어 오기 때문에 쌓이는 신문도 만만치 않다. 종이신문을 잘 읽지 않는 요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학생들이 신문을 늘 갖고 다니면서 읽는 습관이 생겼죠. 배경지식이 워낙 폭넓다 보니 특정 사안에 대해 교사들보다 더 잘 아는 경우도 있어요. 교과서 지식으로는 답하지 못하는 문제를 신문을 보며 분석적으로 답하는 겁니다.” 윤치영 교무부장은 학생들이 성인이 돼서도 신문을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생활속 교육 내세운 가온고

신문 읽는 전통 벌써 10년째

배경지식 쌓이니 말도 술술

논술 준비도 따로 필요없어

신문읽기는 수업시간에도 계속된다. 가온고는 블록타임제(수업을 2~3교시씩 묶어서 진행하는 방식)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100분 수업을 한다. 수업시간이 길기 때문에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학생들의 참여가 필수다. 일주일에 한번은 신문을 함께 읽은 뒤 이슈가 되는 기사를 놓고 얘기를 나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 정책’, ‘리비아 공습’에 대해서도 뜨거운 토론이 오갔다. 관심 있는 신문기사를 오려서 엔아이이 노트에 붙이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그 기사에 대한 의견을 쓴다. 하루에 10개 이상의 기사를 읽을 수 있고 친구들의 다양한 생각도 들어볼 수 있다.

“학교에 다니면 뉴스를 접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신문읽기 시간이 따로 있어서 그 주에 있던 중요 뉴스를 살펴볼 수 있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어요.” 2학년인 김상희(17)양은 신문을 보며 생각의 폭을 넓히고 글도 잘 다듬게 됐다. 다른 나라 언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국제면을 주의깊게 보다 보니 미국의 <뉴욕 타임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언론도 알게 됐다. “‘슈피겔, ‘선동언론’ 빌트에 주먹 날리다’라는 기사를 인상깊게 봤어요. 기사를 정리하다 보니 독일에도 다양한 색깔의 언론이 있더라고요. 선정적인 내용과 폭로 위주의 기사를 싣는 신문의 문제점을 잘 짚어줬죠. 우리 언론도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

박동혁(17)군은 신문을 읽으며 논술에 큰 도움을 얻었다. 처음엔 기사를 정리하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선생님이 칭찬할 정도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신문을 거의 보지 않았거든요. 혼자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친구들과 의견도 나누고 선생님께서 첨삭도 해줘서 도움이 많이 돼요. 엔아이이 노트를 보면 기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부분이 있어요.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눠서 내용을 요약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덧붙여야 하죠. 이젠 어떤 글을 읽어도 핵심 내용을 빨리 파악하게 됐어요.”

엔아이이 노트엔 ‘신문읽기’ 이외에 ‘만평, 그래프 분석하기’, ‘내가 쓰는 칼럼’, ‘의견을 나눠봅시다’ 등 다양한 꼭지가 마련되어 있다. ‘만평·그래프’를 보며 관련 내용을 분석하기도 하고 특정 사안에 대한 칼럼을 쓰기도 한다. 오수정(17)양은 일본 대지진에 대한 칼럼을 썼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게 쉽지는 않죠. 처음엔 일상적인 일을 주제로 삼다가 요즘엔 신문을 보면서 의문점이 생기거나 비판하고 싶은 주제로 쓰고 있어요. ‘일본 대지진, 우리나라였다면…?’을 주제로 칼럼을 썼는데, 한국도 지진 발생 대응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바쁜 학교생활이지만 쉬는 시간 등을 틈틈이 활용해 엔아이이 노트를 채워가고 있다.

꾸준한 신문읽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있는 가온고 학생들. 왼쪽부터 진솔희양, 박동혁군, 오수정양, 김상희양.
꾸준한 신문읽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있는 가온고 학생들. 왼쪽부터 진솔희양, 박동혁군, 오수정양, 김상희양.

김애림 국어교사는 이렇게 학생들이 지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가장 기본적인 용어조차 모르던 학생들이 뉴스를 보며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배경지식이 늘었다. “중요한 기사는 1면부터 사설·칼럼면까지 계속 언급되는데, 학생들이 모르는 용어는 질문도 하고 다른 주제와 연결해서 관심을 넓혀갑니다. 1학년 때와 2학년 때 쓴 엔아이이 노트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드러나죠. 1학년 때는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이라면 2학년 때는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을 쓰기 시작하거든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을 하기도 하고요.”

김 교사는 신문읽기를 낯설어하는 1학년들에게 손석춘씨의 <신문읽기의 혁명>을 추천한다. 엔아이이 수업을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학생들에게 신문의 역사나 성향 등을 설명하기도 한다. 신문을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중요하다. 진보에서 보수까지 다양한 논조의 신문을 보며 비판적 읽기도 시도하고 있다.

황신애 국어교사는 작문 수업시간에 한겨레신문의 엔아이이 논술 주간지인 <아하! 한겨레>를 활용한다. <아하! 한겨레>의 ‘글 써보기’ 꼭지가 대입 논술 출제 경향과도 비슷해 따로 논술 준비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제가 읽기 자료를 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아하! 한겨레>는 이슈, 배경, 관점, 심화 등에 실린 읽기 자료를 활용해 배경지식도 쌓고 글도 써볼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설명하고 그 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 뒤 숙제로 써온 글은 첨삭해주고 있어요.” 황 교사는 토론 주제를 정할 때도 신문읽기가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시사적인 주제들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원전 르네상스’와 같은 어려운 주제들을 토론거리로 제안합니다. 보통의 학생들은 생각하기 힘든 주제예요. 엔아이이 수업 시간이 없었다면 그런 제안을 하기가 쉽지 않았겠죠.”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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