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고 한민희군의 독서전략
[커버스토리] 하나고 한민희군의 독서전략
초등학생 때 주말마다 시립도서관 찾아…중학생 땐 매주 2권씩, 1년에 100권 읽어
자기수준 맞는 책부터…최대한 다양하게…다 읽은 뒤엔 독후감 등 ‘정리습관’도 중요
초등학생 때 주말마다 시립도서관 찾아…중학생 땐 매주 2권씩, 1년에 100권 읽어
자기수준 맞는 책부터…최대한 다양하게…다 읽은 뒤엔 독후감 등 ‘정리습관’도 중요
올해 도입된 고입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중학교 학교생활기록부엔 ‘독서활동 사항’이 신설된다. 또 자기주도학습 전형 ‘학습계획서’에선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 책 2권에 대해 600자 이내로 서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교 입시에서 독서의 양뿐 아니라 독서의 질까지도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 초기라 중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중학교 교사들 또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에서 한민희(16·사진)군을 만났다. 하나고는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로 신입생 전원을 선발했다. 당시 입학사정관으로 참여했던 전경원 하나고 교수학습실장은 “한군은 진로를 향해 집약된 자기주도적인 독서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또래에 비해 철학적 사고능력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한군한테서 책을 즐기게 된 계기와 책을 즐기는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저는과학과 사회 두 분야를 모두 좋아해 이공계 진로와 경제 분야의 진로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앨빈 토플러의 책 <제3의 물결>을 읽은 후 경제학이 생각했던 것처럼 좁은 분야가 아닌 사회 전체를 통틀어 보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좁은 영역을 파는 공학보다 넓게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 경제 분야가 제 적성에 맞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 경제학을 깊이 공부해 경제를 잘 몰라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보통의 시민들에게 경제 관련 무료 강의도 하며, 신문·잡지 등에 기고도 하고, 책도 쓰겠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이익만 우선하는 일부 부도덕한 경제인들로부터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하나고 입학사정관제 ‘자기소개서’의 4번째 질문 “본교를 선택하게 된 동기를 간단하게 기술하고, 입학 후 학업계획과 장래 진로 계획을 기술하십시오”에 대한 한군 답변의 일부다. 그의 진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부모도, 교사도, 친구도 아니었다. 책이었다. 그는 앨빈 토플러의 책 <제3의 물결>을 읽고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과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군은 언제부터 책을 가까이하게 된 걸까.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생 시절 내내 강원도 원주에서 살았어요.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매주 일요일이면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갔어요. 점심 먹기 전에 가서 도서관 문 닫을 때쯤 집으로 돌아왔죠.” 한군을 책세상으로 이끈 건 어머니였다. 그런데 한창 뛰어놀고 싶은 나이에 매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솔직히 싫었어요. 그래도 도서관 가면 읽을 책 고를 자유가 있었던 게 좋았어요. 처음엔 만화책이나 그림 많은 과학책을 많이 봤어요. 그러다 5학년이 되니 자연스럽게 성인 열람실에서 책을 고르게 됐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이사오면서부터는 매주 도서관 갈 일은 없어졌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어머니께서 매주 6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오셨다. 어머니께서 읽을 책 3권과 한군이 읽었으면 하는 책 3권이었다. “어머니께선 책을 강제로 읽으라고 하진 않으셨어요. 다행히 제 흥미나 눈높이에 맞춰 잘 골라오셔서 보통 3권 가운데 2권은 읽었어요. 1주일에 2권씩이니 1년에 100권쯤은 읽은 셈이죠.”
오랜 독서 경험을 지닌 한군의, 독서를 즐기고 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기 수준에 맞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주변 친구들이 책을 싫어하는 이유를 보면 대개 부모님들이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이나 자기 흥미에 맞지 않는 책을 권하기 때문이더라구요. 저는 중2 때 사춘기가 찾아와 한창 게임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죠. 그래도 책은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그때는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었어요. <해리포터> 시리즈는 물론이고,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등을 읽었어요. 어떤 책이든 책 읽을 때면 어머니께서 잔소리를 하지 않아 좋았죠.”
또 한군은 “가능한 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중학교 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겨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무작정 읽었죠. 고등학교에서 와서 다시 읽어보니 내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란 소설도 흥미가 생겨 읽어봤어요. 문학적 가치는 잘 못 느꼈지만, 이런 민감한 소재를 책을 통해서 풀어낸 것만으로도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라 생각했죠. 중3 때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읽었어요.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충격적이었죠. 예전엔 ‘이기심=악’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국부론>은 제가 진로를 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죠.”
마지막으로 한군은 “책 읽은 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이건 제가 뒤늦게 깨달은 거예요. 중학교 때까지는 책을 읽은 후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하는 등 독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거든요. 책 읽는 것만 즐겼지, 책 읽은 후 느낌이나 생각을 정리하는 건 게을리했죠. 그랬더니 읽은 책 내용을 누구에게 설명할 때 어려움이 생기더라구요. 지난해 하나고 면접 볼 때도 책 내용은 생각나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고생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책에 밑줄도 치고, 단락별로 읽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칠 때쯤 최근 읽은 책 가운데 기억나는 한 권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한군에게 부탁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가 있어요. 가난하면서도 서로 행복하게 사는 삶의 비결을 배울 수 있었죠. 경제적으로 평등할수록 행복지수는 높고, 그 사회는 지속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경제학자가 꿈인 그가 1시간 남짓 인터뷰하는 동안 언급한 책은 10권이 넘었다. 앞으로 그는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될까. 그 책들은 그를 어떤 삶으로 안내할까. 책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은 그의 미래가 사뭇 궁금하다.
글·사진 조동영 기자 dycho197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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