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제 아래에서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다. 학교나 학생의 처지에 맞는 교과서를 고르는 안목을 교사가 지닐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은 2010년 새 국어 교과서. 원주 반곡중 연영흠 교사 제공
[커버스토리] 교과별 교사단체 토론 ‘제재 말고 지원을’
‘소나기’는 세대 차이가 없는 국민 소설이다. 1960년에 중1 국어 교과서에 처음 실린 뒤 2009년 현재 전국의 모든 중1 학생들이 배우는 국어 교과서에도 ‘소나기’는 실려 있다. ‘소나기’는 1947년생 할아버지와 1996년생 손녀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국정’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국어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면서 더이상 국민 소설은 없다. 검정 교과서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다.
검정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에 견줘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교사들의 불만이 크지만 그래도 변화는 분명히 있다. 지난 8월 최종 검정을 통과한 2010학년도 국어 교과서 23종에는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소설가이면서 동화작가인 현덕의 작품이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한비야의 수필도 실렸다. 이번에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한 교수는 “지금까지 국정 교과서는 동화를 아이들이나 읽는 것으로 생각해 바탕글로 많이 활용하지 않았다”며 “그동안 우리나라에 좋은 동화 작품들이 많이 나왔고 이번 검정 교과서에 현덕의 작품을 비롯해 동화로 분류되는 작품을 여럿 실었다”고 말했다.
결국 교과서 선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이런 변화를 얼마만큼 간파할 수 있느냐다. 다양한 출판사에서 낸 여러 종의 차이를 발견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러 교과서의 차이를 파악하고 비교·분석하기 위해서는 교과 교사들의 협력이 필수다. 김경숙 포항 동해중 교사는 “신규로 임용된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달달 외우고 있는 덕에 교과서를 교육과정의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어 좋고, 교직 경력이 오랜 교사들은 학생들한테 맞는 교과서를 선별하는 경험적 지식이 있다”며 “여러 사람이 모여 논의를 하면 교사들은 충분히 학교 사정에 맞는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교사들의 활발한 토론이나 협의가 특정 교과서 채택을 위한 ‘담합’이 될 위험성은 충분히 있다. 시·도 교육청은 ‘동일 교과 교사의 담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교과서 선택을 위한 교과 교사들 사이의 토론이 필수적인 만큼 토론과 담합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과별 교사 모임에서 교과서의 내용을 분석하는 일을 교과서에 대한 간접 홍보로 간주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는 방침 역시 교사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허용할 수 있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나 시·도 교육청이 채택 비리 근절에만 관심을 쏟을 게 아니라 교사가 좋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지현 서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교과서에 대한 정보를 출판사에서 제공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가장 공정한 정보와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교과부”라며 “특정 교과서에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교과서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몇몇 시·도 교육청에서 교사들한테 20개 항목을 포함한 검정기준표를 제공하고 있지만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최지현 교수는 “예닐곱 항목은 검정 위원의 검정 기준을 그대로 교사들의 선정 기준으로 옮겨 쓴 것 같은데 이는 이미 검정을 통과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며 “나머지 항목들도 학교나 학생의 처지나 특성을 감안할 수 있는 기준들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좋은 교과서를 고르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창비·해냄이 교과서 만든다고? 단행본 출판사 의미있는 도전
고은 <만인보>,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황석영 <객지>…. 창작과비평사(창비)의 책들이다. 대중의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아 나중에 이 작가들은 저마다 한 편씩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자신의 작품을 바탕글로 올렸다.
교과서에 오르는 수준 높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온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든다면? 답은 창비가 만든 교과서에 있다. 2010학년도 중학교 신입생부터 쓰는 국어 교과서 검정을 창비의 교과서가 통과했다. 음악, 미술 등의 교과는 전문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통과하는 일이 있었지만 단행본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 교과서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비 관계자는 “앞으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까지 펴내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교과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기왕의 교과서만 만드는 출판사가 아니라 단행본 출판사에서 교과서를 만든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해냄 출판사가 만든 교과서 역시 검정을 통과했다. 이로써 단행본 출판사가 낸 교과서는 모두 2종이다. 해냄의 관계자는 “단행본 편집자들이 교과서 집필진들과 토론을 계속하면서 교육과정에 맞으면서도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작품을 여럿 제안했다”며 “교수나 교사 말고 소설가가 직접 집필에 참여한 덕에 ‘육촌형’과 같은 참신한 작품이 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창비·해냄이 교과서 만든다고? 단행본 출판사 의미있는 도전
‘한국교과서 100년사 특별기획전시회’의 옛날 교과서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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