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보충은 절반의 성공만을 약속한다. 모두를 살리는 방학 보충수업의 모습은 분명 강제 보충은 아니다. <한겨레> 자료사진
동의서 받지만 반강제적 학생들 “불만이다” 36%
‘대출’에 졸음수업 ‘부작용’ 일부 교사는 자습 강요도
“자기계발 위한 시간 놓쳐 획일적인 방식 지양해야”
‘대출’에 졸음수업 ‘부작용’ 일부 교사는 자습 강요도
“자기계발 위한 시간 놓쳐 획일적인 방식 지양해야”
“나, 다시 돌아갈래!” 개학날, 여름방학을 덧없이 보낸 학생들은 방학식을 하던 그 날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방학이 된다면 계획표를 짜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알찬 방학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경기도 ㄱ고 3학년 신아무개양의 생각은 다르다. 방학식 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좀더 부지런해진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신양의 방학을 빼앗아간 것은 그의 게으름과 불성실함이 아니다. 바로 보충수업이다.
“방학 때는 오전에 장애아동이나 공부방 아이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려고 했어요. 봉사활동은 저한테 수능 공부만큼이나 중요해요. 특수교육학과로 진학할 계획이고 특수교사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결국 보충수업 때문에 못 했어요.” 이처럼 자기주도적인 방학 생활을 훼방하는 학교의 방학 보충수업을 학생들은 ‘강제 보충’이라 한다.
물론 자기 관리를 위해 강제 보충이 필요한 학생들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강제 보충 때문에 방학을 낭비하는 학생들도 그만큼 많다. <함께하는 교육>이 방학에 ‘강제 보충’을 한 고등학생 3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보충수업에 대체로 불만족하거나 매우 불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이 36.3%(121명)로 대체로 만족하거나 매우 만족한다고 답한 학생 38.2%(127명)에 맞먹었다.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의 시간은 살지만 누군가의 시간은 죽는 것이다.
사실 학교에 강제 보충은 없다. 보충수업은 ‘동의서’를 제출한 학생들만 한다. 겉으로는 학생의 자율에 맡긴 모양새다. 문제는 모든 학생들이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강요받는다는 데 있다.
부산 ㅂ고의 한 교사는 보충수업 동의서를 나눠준 뒤 곧바로 거둬들였다. 학생들은 학부모 확인란에도 서명을 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 학교 김아무개(17)양은 “집에 가서 부모와 상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을 거면서 보충수업 동의서는 왜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의 권한을 이용해 학생한테 보충수업을 강요하는 일도 있다. 서울 ㅂ고 김아무개(17)군은 “방학 보충수업을 안 하겠다고 했더니 장학금이나 교내상을 못 받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며 “수시 원서 쓸 때도 힘들어질 거라고 하시는데 보충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의 결과는 뻔하다. 과목·교사 선택권이 있는 학생들은 ‘만만한’ 수업이나 교사를 고른다. 서울 ㅈ고 한아무개(18)군은 “잘 수 있고 자습할 수 있는 수업을 골라 들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출석 확인을 대신 해주는 ‘대출’(대리출석)도 흔하다.
강제 보충으로 학생들은 시간뿐만 아니라 돈도 허비한다. 경기 ㄱ고 3학년 임아무개양은 마지막 방학을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며 담임교사를 설득했지만 담임교사는 “너 하나 빠지도록 허락하면 다른 아이들도 줄줄이 빠지게 되고 그럼 나머지 아이들이 빠진 학생 수만큼 보충수업비를 더 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웠다. 임양은 “보충수업을 빼줄 테니 차라리 자습을 하라고 하시면서 그래도 보충수업비는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는 결국 보충수업비 8만원을 내고 보충수업 시간에 ‘자습’을 했다.
실제로 교사들한테 보충수업비는 꽤 쏠쏠한 수입이 된다. 경기도의 한 고교에 근무하는 김아무개 교사는 “시간당 3만원씩 받으면 방학 때 300만원 정도를 벌게 되는데 월급보다 많은 돈이라 교사들한테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반기는 교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김교사는 설명한다. “모든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들으니까 수업이 엄청 많아요. 저는 이번 여름방학에 쉬지 않고 내리 5시간 수업을 했습니다. 정규 학기보다 수업이 많죠. 성대 결절로 병원에 가는 교사도 있어요. 300만원 안 받고 보충수업 안 하고 싶습니다.” 더구나 교사들한테 강제 보충의 수업은 여느 수업보다 배로 힘이 든다. 학생들의 잠과 잡담과 결석과 싸우느라 먼저 지친다. 경기도의 지아무개(38) 교사는 “언젠가 한번은 겨울방학 보충을 하는데 20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안 나온 적이 있었다”며 “내가 선생인데 애들은 내 수업을 듣기 싫어서 도망간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고 교육자로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이 못마땅해서 도망가는 것은 아니다. 보충수업을 강요당한 것이 싫을 뿐이다. 올 해 여름방학부터 강제 보충에서 자율 보충으로 바뀐 서울 ㅂ고의 윤아무개(17)양은 “사실 지난 겨울방학에도 똑같은 선생님 수업을 들었는데 자거나 떠들었다”며 “수업의 질과 상관없이 내가 자발적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수업에 참여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교감은 “과도기로 2학년만 자율 보충을 했는데 수업 분위기나 학생들 만족도가 훨씬 좋아졌다”며 “학생들 스스로 보충수업 참여 여부를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제와 자율의 만족도 차이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강제 보충을 하는 학생들은 38.2%(127명)만이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자율 보충을 하는 학생들은 조사 대상 학생 114명 가운데 79.8%(91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만족도의 차이를 떠나 무엇보다 강제 보충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낡은 교육이다. 학생들의 꿈은 날로 다양해지고 대학도 점점 다양한 자질을 요구하는 추세인데 학교는 ‘공부’만 강요하는 것이다. 사학자가 꿈인 전북 ㅇ고의 구아무개(17)양은 “역사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평소 못 가는 유적지, 교과서에 나오는 사찰, 박물관 등을 답사하고 싶었는데 보충수업 때문에 못했다”며 “입학사정관제를 고려하는 학생들을 위해 자기 계발이나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방학 때만이라도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교시, 강제 야자, 강제 보충 등을 하는 학교를 무조건 ‘명문고’로 치는 학부모의 태도도 문제다. 학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학교는 학생의 흥미와 능력에 맞춤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는 대신 강제 보충 등의 낡은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서울 ㅁ고의 교감은 “고교선택제에서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명문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교가 공부를 많이 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승훈 경기 광동고 교사는 “성적순으로 한 줄을 세워 뽑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대학은 다양한 능력에 따라 여러 줄을 세워 뽑기 때문에 방학의 의미도 옛날과는 달라져야 한다”며 “학생들한테 무조건 획일적인 교과 보충수업을 강요할 게 아니라 진로·진학 계획에 따른 각자의 방학 생활을 교사가 함께 상의하고 설계하는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선주 이유진 임유진 장세영 한인섭 한정민 한주형 아하!한겨레 학생기자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실제로 교사들한테 보충수업비는 꽤 쏠쏠한 수입이 된다. 경기도의 한 고교에 근무하는 김아무개 교사는 “시간당 3만원씩 받으면 방학 때 300만원 정도를 벌게 되는데 월급보다 많은 돈이라 교사들한테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반기는 교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김교사는 설명한다. “모든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들으니까 수업이 엄청 많아요. 저는 이번 여름방학에 쉬지 않고 내리 5시간 수업을 했습니다. 정규 학기보다 수업이 많죠. 성대 결절로 병원에 가는 교사도 있어요. 300만원 안 받고 보충수업 안 하고 싶습니다.” 더구나 교사들한테 강제 보충의 수업은 여느 수업보다 배로 힘이 든다. 학생들의 잠과 잡담과 결석과 싸우느라 먼저 지친다. 경기도의 지아무개(38) 교사는 “언젠가 한번은 겨울방학 보충을 하는데 20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안 나온 적이 있었다”며 “내가 선생인데 애들은 내 수업을 듣기 싫어서 도망간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고 교육자로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이 못마땅해서 도망가는 것은 아니다. 보충수업을 강요당한 것이 싫을 뿐이다. 올 해 여름방학부터 강제 보충에서 자율 보충으로 바뀐 서울 ㅂ고의 윤아무개(17)양은 “사실 지난 겨울방학에도 똑같은 선생님 수업을 들었는데 자거나 떠들었다”며 “수업의 질과 상관없이 내가 자발적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수업에 참여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교감은 “과도기로 2학년만 자율 보충을 했는데 수업 분위기나 학생들 만족도가 훨씬 좋아졌다”며 “학생들 스스로 보충수업 참여 여부를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제와 자율의 만족도 차이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강제 보충을 하는 학생들은 38.2%(127명)만이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자율 보충을 하는 학생들은 조사 대상 학생 114명 가운데 79.8%(91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만족도의 차이를 떠나 무엇보다 강제 보충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낡은 교육이다. 학생들의 꿈은 날로 다양해지고 대학도 점점 다양한 자질을 요구하는 추세인데 학교는 ‘공부’만 강요하는 것이다. 사학자가 꿈인 전북 ㅇ고의 구아무개(17)양은 “역사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평소 못 가는 유적지, 교과서에 나오는 사찰, 박물관 등을 답사하고 싶었는데 보충수업 때문에 못했다”며 “입학사정관제를 고려하는 학생들을 위해 자기 계발이나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방학 때만이라도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교시, 강제 야자, 강제 보충 등을 하는 학교를 무조건 ‘명문고’로 치는 학부모의 태도도 문제다. 학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학교는 학생의 흥미와 능력에 맞춤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는 대신 강제 보충 등의 낡은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서울 ㅁ고의 교감은 “고교선택제에서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명문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교가 공부를 많이 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승훈 경기 광동고 교사는 “성적순으로 한 줄을 세워 뽑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대학은 다양한 능력에 따라 여러 줄을 세워 뽑기 때문에 방학의 의미도 옛날과는 달라져야 한다”며 “학생들한테 무조건 획일적인 교과 보충수업을 강요할 게 아니라 진로·진학 계획에 따른 각자의 방학 생활을 교사가 함께 상의하고 설계하는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선주 이유진 임유진 장세영 한인섭 한정민 한주형 아하!한겨레 학생기자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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