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학원 ‘레벨테스트’가 뭐기에…

등록 2009-03-08 17:19수정 2009-03-08 17:20

학원 ‘레벨테스트’가 뭐기에…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학원 ‘레벨테스트’가 뭐기에…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커버스토리] 울고 웃는 학부모들 “외고 보내려면 목숨 걸어야죠”
특목고 성패 최대변수로 여기며
최상위 레벨 위해 ‘새끼과외’까지
“학교 영어성적은 별로 안 믿어요”

외고를 지망하는 중3 딸을 둔 이아무개(48·서울 강남구)씨한테 제일 시급한 과제는 학원의 반 수준, 곧 ‘레벨’을 올리는 것이다. 딸이 다니는 학원은 토플(IBT) 120점반과 100점반을 운영하는데, 원장이 직접 강의하는 120점반에 들면 외고 입학의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돈다. 딸은 아직 100점반이다. “중3인데 100점반에 있으면 외고는 좀 힘들다는 얘기가 있어요. 안심하려면 120점반에 들어가야죠. 토플 성적이 105점만 되면 120점반 대기자 명단에 올려 준다니까 3월에 105점은 반드시 받아야 해요.” 토플 성적이 나오는 날을 기다리는 이씨는 하루하루 노심초사다. 레벨은 수준별 분반 수업을 한다는 학원이 입학시험을 통해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서열화해 놓은 것을 말한다. ‘레벨테스트’는 학원의 입학시험을 일컫는다.

학원의 레벨테스트에 학생들이 지치고 학부모가 울고 웃는다. 새 학기를 맞아 학부모들은 옆집 딸보다, 친구 아들보다 더 높은 레벨에 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외고 등의 특목고를 지망하는 학부모들은 더욱 그렇다. 입시 열기가 뜨거운 일부 지역에서는 학원에서 어떤 레벨에 다니는가 하는 것이 곧 자녀의 실력으로 통하기도 한다. 서울 도봉구 ㅇ어학원의 교수부장은 “요즘 학부모들은 학교 영어 성적은 얘기도 안 한다”며 “자녀의 진짜 영어 실력을 말해주는 것은 어느 학원의 어느 레벨에 다닌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ㅈ어학원 관계자는 “같이 레벨테스트를 보고 돌아간 뒤 학원으로 전화를 걸어 같이 본 친구의 레벨은 어떻게 되냐고 묻는 일이 많다”며 “어떤 학부모는 실제 나온 레벨보다 한 레벨 더 올려달라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원의 레벨테스트는 정말 믿을 수 있을까? 학원의 레벨테스트는 대개 선행학습의 정도를 파악한다. 그래서 아이의 학력과 학습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학원마다 나오는 결과가 다르기 일쑤다. 학원 관계자 스스로 ‘상술’이라고 실토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레벨테스트는 위력을 발휘한다. 더 높은 레벨을 받기 위해 또는 높은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 또다른 사교육을 찾기도 한다. 학원 레벨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을 받는 일이 생겨난다. 홍아무개(45·서울 양천구)씨는 “딸이 높은 레벨에 들어간 뒤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더라”며 “낮은 레벨로 떨어지는 건 못 참겠고 학원 수업 따라가라고 과외를 반년 정도 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새끼 과외’다. 학원비에 과외비까지 한달 소득의 5분의 1일을 영어 한 과목에 투자했지만 딸은 쫓아갈 수 없어 결국 딸은 반년 만에 학원을 그만뒀다.

학원이 최상위부터 최하위까지 촘촘하게 서열화된 레벨로 학부모를 끌어들이는 사이 불똥은 학교에 튀었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영어 성적을 믿지 않기도 한다. 서울 도봉구 ㅇ어학원에서 만난 김아무개(46·도봉구)씨는 “달랑 점수만 나오는데 그걸로 어떻게 듣기, 독해, 어휘 등 영어 실력을 알 수 있냐”며 “학원의 레벨테스트는 다양한 영역별로 구체적으로 강약점을 일러 주기 때문에 속시원히 영어 실력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자녀를 외고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은 특히 그렇다. 학교 영어 성적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탓이다. 외고 입시는 학교 내신 시험을 잘 봐서 대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김씨는 “외고에서는 토플형 문제가 나오고 듣기 평가도 어렵다는데 학교 영어 시험으로 외고 갈 수 있는 실력인지 어떻게 아냐”고 말했다.

학부모한테 학원의 레벨테스트 결과는 곧 특목고 입시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초교 4학년이 되는 자녀를 둔 방미화(35·서울 중구)씨는 “4학년 때는 ㅊ어학원의 ㅈ레벨은 돼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돈다”며 “그 레벨에 한참 못되는 나는 벌써부터 외고의 꿈이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ㅌ학원 정세웅 부원장은 “대학입시는 수능 모의고사나 학력평가처럼 전국 단위의 시험이 있어서 자녀의 수준을 수시로 가늠할 수 있지만 특목고 입시는 그런 게 없다”며 “과고, 상위권 자사고, 상위권 외고 등을 판별해 줄 수 있는 기준으로 쓰이는 게 학원의 레벨”이라고 말했다.


학원이 레벨식으로 수업을 운영하게 된 것도 특목고 입시가 본격화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목고 입시학원은 실제로 과고반, 영재학교반, ㄷ외고반, ㅁ외고반 등으로 특목고 이름을 딴 반을 운영하며 각 학교의 서열에 따라 학원의 레벨도 순위가 매겨진다.

학원들은 대개 최상위 레벨에 대해 외고나 특목고 입학 가능성을 높게 부여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늘 최상위 레벨을 두고 경쟁한다. 학원의 최상위 레벨에 든 것만으로 특목고 입학을 낙관하는 부모들이 생기는 이유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중3 딸을 둔 김아무개(43·서울 강남구)씨는 “딸이 유명한 ㅈ어학원의 최고 레벨까지 간 걸 보고 특목고 입학을 은근히 기대했는데 막상 중3이 되니 여러모로 부족한 실력이 많더라”며 “말하기·듣기·쓰기·읽기 네 영역을 고루 가르치고 또 그 네 영역을 두루 평가해 주는 학원은 없기 때문에 학원의 레벨만 믿다가는 큰코다친다”고 말했다. 학원 스스로도 이를 인정한다. 경기 일산의 특목고 입시학원 ㅎ학원의 송석근 실장은 “일부 학부모는 민사고반에 들면 누구나 다 민사고에 가는 줄 알고 으쓱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민사고반에서도 10%만이 합격할 수 있으므로 레벨이 합격을 보장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학원의 레벨을 믿는 것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기 성남의 ㅈ초교 권아무개 교사는 “학부모와 상담을 하다 보면 자녀의 성적에 대한 교사의 말을 잘 믿지 않는 부모가 있다”며 “학원의 레벨을 근거로 국제중 원서를 써 달라는 학부모도 있는데 자녀의 진짜 실력을 모르고 고집을 부릴 때는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