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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고교서열화?

등록 2008-10-26 19:14

고교서열화?
고교서열화?
‘학력공개+학교선택’ 잘못된 만남으로
학생·학부모 학교선호 쏠림 자명해져
커버스토리 /

“학교선택권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되돌려주고 학교간 선의의 경쟁을 촉진하겠다.” 지난 8월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두 달 뒤 서울교육청은 ‘후기 일반계고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한 2010학년도 학생 배정방법 개선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그런데 고교선택제라고 하는 이 새로운 고교 배정 방식은 시행이 되기도 전에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평준화 해체, 고교 서열화의 전주곡이라는 비판 탓이다.

서울시의 방식은 새로운 게 아니다. 서울을 뺀 나머지 평준화 지역은 이미 고교선택제와 비슷한 형식으로 학생을 배정하고 있다. 이른바 ‘선지원 후추첨제’다. 학생이 먼저 학교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교육청이 추첨을 통해 학생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학생을 배정하는 ‘뺑뺑이’와는 다르다. 서울은 평준화 지역 가운데 유일하게 ‘뺑뺑이’를 고수하던 지역이었다.

왜 다른 곳과는 달리 서울시의 고교선택제가 도마에 오른 것일까. 올 12월부터 실시되는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 즉 학교정보 공시제와의 ‘잘못된 만남’ 때문이다.

시행령에 따라 올 12월부터 모든 초·중·고는 학교 운영과 관련된 대개의 정보를 누리집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교과 및 재량 그리고 특별활동 계획, 교외체험 활동 계획과 학생·학부모 상담 실적까지 공개할 내용이 40가지에 이른다.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로서는 학교 선택의 객관적인 기준이 생긴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문제는 공개 대상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각 학교는 평가 결과를 보통학력(50% 이상), 기초학력(50~20%), 기초학력 미달(20% 이하)로 구분해 해당하는 학생 비율을 공개해야 한다. 송인수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 공동대표는 “우수학력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 서열화를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높고 낮음에 따라 서열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이런 정보를 얻게 되면 선택권을 지닌 학생과 학부모가 어디로 갈지는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내용의 학교정보 공시제는 고교선택제를 고교 서열화로 내모는 불씨가 될 수 있다. 물론 서울교육청은 고교선택제 실시에 앞서 2007년 12월에 중3 학생(현재 고1) 11만3225명(전체 중3 학생의 87.5%)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의 배정’ 결과를 들어 이런 우려를 거부한다. 이 결과를 보면 ‘통학거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학군의 경계를 넘는 선택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학생들에게 학교정보 공시제로 알 수 있는 학업성취도 결과 등의 자료를 제공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초·중등교육기관의 정보 공시 범위
초·중등교육기관의 정보 공시 범위
이미 서울과 비슷한 형태의 고교 배정 방식이 강원, 경북, 충북 등 세 곳의 비평준화 지역을 뺀 전국에서 시행됐지만 고교 서열화 등의 잡음이 나지 않은 까닭은 이 때문이다. 예전에는 학교의 학력 수준에 대한 공신력 있는 정보가 없었다. 성취도 평가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치른 결과다. 학교의 학력 수준을 전국적으로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인 것이다.

공개되는 정보가 많은데 왜 학생과 학부모가 유독 학력과 관련된 정보에만 매달릴까. 인천의 한 고교는 신입생 수가 2년 사이 130여명이나 늘었다. 학교의 진학지도 교사가 중학교를 돌며 입시 결과와 진학 지원 정책을 홍보한 덕이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와야 하는 거리에 있는 중학교에서 지원한 성적 상위 5% 학생이 9명이나 됐다. 박종훈 경남 교육위원은 “경남의 몇몇 지역에서는 시설이나 급식 환경이 열악한 사립고가 성적우수자를 독점하는 구조가 형성돼 버렸다”며 “학생과 학부모는 다른 모든 조건을 제쳐두고 성적우수자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학교에 몰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교 1학년의 학업성취도를 공개하는 것은 각 고교의 신입생 유치 경쟁에 불을 붙이는 뇌관이 될 수 있다.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치르는 시험의 결과는 학교가 얼마나 교육을 잘 시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우수한 학생을 많이 뽑았느냐를 평가하는 일이 돼 버리는 탓이다.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학교의 교육력을 키우자고 하는 일이지만 학교정보 공시제가 맞물리게 되면 고교는 우수 신입생을 모으는 데 명운을 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택 기준이 반드시 성취도 평가 결과 등 학력과 관련된 사항에만 집중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도 있다. 이범 곰티브이 강사는 “대학의 예체능계 정원은 16~18%에 달하는데 예체능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는 5%도 안 된다”며 “이들을 위한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가 생기면 지원자들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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