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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영국의 학교선택제 실패가 남긴 것

등록 2008-10-26 19:12

이병곤/런던대 교육연구대학원 박사과정(교육철학)
이병곤/런던대 교육연구대학원 박사과정(교육철학)
커버스토리 / 고교서열화?

영국은 1988년 이래 공교육 체제에 선택과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육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대표적인 나라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영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기대했던 만큼 향상되지 않았다. 영국의 양심적인 교육학자들은 공교육에서 이뤄진 평가의 강화, 학교간 성적 비교표 발표,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부여, 성취 수준이 낮은 학교에 대한 폐교 조처, 기업체의 학교 운영 개입 확대 등 여러 가지 시도가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사람들은 ‘선택이 효율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신념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난 40여년간의 급격한 경제 발전을 경험하면서 ‘선택=경쟁=효율성=발전’이라는 등식을 내재화했다. 고교선택제의 뿌리는 여기에 닿아 있다. 그렇다면 교육정책의 뿌리가 경제 발전의 경험에 닿아 있는 현실이 잘못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선택은 합리적 판단 아래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학부모들은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와 전인교육에 힘을 쏟는 학교 가운데 어떤 곳을 선택할 것인가? 시장에서 소비자는 품질과 가격을 종합 판단하여 가장 합리적인 상품을 선택한다. 그런데 학교의 교육 서비스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기준이 우리나라에선 모호하다. 단언하건대 학교교육의 효과를 명문대 진학률로 아주 거칠게 재단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즉,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교육 소비자’는 선택을 위한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둘째, 선택은 공정성을 전제로 한다. 자유로운 시장에서도 공익성을 지키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 중앙은행의 감사 기능 등이 작동하고 있다. 고교선택제는 그러한 안전장치를 갖고 있을까? 같은 학군이라 해도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사회경제적 지표에 따라 ‘이미 헤비급인 학교’와 ‘아직 주니어급인 학교’가 선명히 나뉘어 있다. 두 학교를 링 위에서 싸움하도록 만들고, 학부모로 하여금 채점표를 들게 하는 일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위기의 학교>(닉 데이비스 지음, 이병곤 옮김, 우리교육)에서 밝혀졌듯이 선택받지 못해 폐교 위기에 내몰리는 학교들은 대개 가난한 지역에 있다.

셋째, 선택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고교들이 학부모의 선택이라는 압력을 받는다 해도 과연 교육 서비스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 정부의 예산 지원도 비슷하며, 교사들의 실력 차이도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보라. 학교교육의 질은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측면보다 어떤 학생들이 입학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높다. 과학고 학생과 일반고 학생을 통째로 교환하여 가르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아무리 뛰어난 과학고 교사진이 3년간 온 힘을 다하여 가르친다고 해도 예년과 동일한 수의 학생을 명문대학에 진학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이들 과학고 교사진을 무능력하다고 비판할 수 없다.


이병곤/런던대 교육연구대학원 박사과정(교육철학) , <위기의 학교>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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