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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독서명문 된 시골학교 ‘기적의 도서관’

등록 2008-07-06 19:00

‘꽃언덕’이란 뜻 때문일까. 꽃재도서관에는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진명선 기자
‘꽃언덕’이란 뜻 때문일까. 꽃재도서관에는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진명선 기자
커버스토리 / 경산시 하양초교 ‘꽃재도서관’의 대변신

2006년 4월21일, 책의 날을 이틀 앞둔 금요일.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하양초교(교장 김재식)에서는 오전 8시30분으로 정해진 등교시간을 전후로 학생들이 교실보다 학교도서관을 먼저 찾았다. 100여명의 학생들은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뒤 돌아가지 않고 차례로 줄을 섰다. 도서관이 있는 4층부터 시작된 줄은 2층 계단까지 이어졌다. 작은 품에 책을 안고 얌전히 줄을 선 학생들은 김수희(30) 사서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날 행사 때문이었어요. 그날 책을 빌리는 학생들에게 막대사탕을 준다고 했거든요. 막대사탕이 그렇게 큰 선물도 아닌데 아이들이 줄을 서면서까지 기다릴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후로도 하양초교 학교도서관, ‘꽃재도서관’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지난해 도서관의 대출건수는 모두 3만7542권으로 2004년 5746권이었던 것에 견줘 6배가 늘어났다. 한해 동안 1500여명의 전교생이 1인당 평균 25권의 책을 빌린 셈이다. 2006년 기준으로 전국의 초중고생은 학교도서관에서 1인당 0.27권의 책을 빌렸다.

“선생님, 하루 연체 됐는데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지난 1일, 꽃재도서관에서 한 학부모가 김 교사를 붙들고 사정한다. 하루 연체된 것을 없던 걸로 하고 바로 대출해 갈 수 있도록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아들이랑 같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대가 생기고 대화가 늘었어요. 아들이 책을 읽고서 이런저런 느낌을 제게 얘기하는 걸 보면 사교육 좀 덜 시켜도 도시 애들한테 뒤지지 않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고요. 전부 학교도서관 덕분이죠.”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김샛별(27)씨의 말이다.

책 늘리고 이벤트 하고 방학도 열고
3년간 학교의 노력 끝에 학생 북적


꽃재도서관은 도시가 아닌 ‘시골’이라 쓰임새가 남다른 곳이다. 김 교사는 “주변에 대학교가 많아 읍소재지치고는 형편이 낫지만 그래도 한달에 책 한권 사기가 버거운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도서관을 찾는 일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꽃재도서관에는 서가 말고도 학생들의 인기를 끄는 공간이 많다. 앉은뱅이 책상이 여럿 놓인 너른 마루는 ‘모둠학습방’으로 방과후에는 누구나 숙제를 하고 자습을 할 수 있다. 장해리(11)양은 “학교 말고는 공부할 공간이 없는데 도서관에 학습방이 생겨서 정말 좋다”고 했다. 한달에 한번 어린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도 학생들이 좋아하는 문화행사다. 6학년 전현지(12)양은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친구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경산시까지 영화를 보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다”고 했다. 하양읍에는 영화관이 없다. 김 교사는 “얼마 전 영화제 때는 아이들이 학교 앞 문구사에서 300원짜리 팝콘을 사들고 오는 것을 봤다”며 “시골이지만 아이들도 영화라는 문화를 즐길 줄 알게 되는 것 같아 뿌듯했다”고 했다.

하양초교의 학교도서관에 이런 변화가 시작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김 교사가 2005년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학교도서관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늪과 같았다. 김 교사는 당장 교실 두 칸을 확보해 도서관을 확장 이전했다. 한칸에 백만원이 넘는 서가는 사지도 못하고 일반 교실에서 남는 책장과 과학실 등에서 남는 책상을 재활용했다.

2006년에 교육부의 ‘학교도서관 활성화사업 지원’ 대상 학교로 선정돼 6000만원을 지원받았고 2007년 2월 기왕의 학교도서관을 대대적으로 보수해 완전히 새로운 도서관을 열었다. ‘꽃재도서관’이란 애칭 같은 이름도 새로 생겼다. 2004년 6131권이던 장서가 2008년 현재 1만4001권으로 늘어났다.

도내 독후감 우수작도 11% 휩쓸어
학습방·영화관 구실 겸하기도

학교도서관의 모양새를 갖추는 일은 국가가 맡았지만 학교도서관의 쓰임새를 만드는 일은 학교의 몫이었다. 학교장과 교사들, 사서교사인 김 교사가 한마음이 됐다. 교실에서는 아침마다 교사가 제자들과 함께 책을 읽는 ‘사제동행 아침독서’가 진행됐고 꽃재도서관에서는 책의 날 행사와 같은 아기자기한 이벤트들이 매주 열렸다. 지난해 가을에는 운동장에서 대규모 ‘독서페스티벌’도 열었다. 무엇보다 꽃재도서관의 인기 비결은 방과후 저녁 8시까지, 방학에도 매일 문을 여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도서관의 쓰임새를 깨닫자 ‘독서명문’이라는 명망이 자연스레 쌓였다. 경북도교육청이 인터넷에 올린 학생들의 독후감 가운데 매월 우수작을 선정해 시상하는 ‘이(e)독서친구’에서 하양초교 학생들이 보이는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경북도내 500개 초교 가운데 하양초교가 지난해 수상자(650명)의 11%(71명)를 배출한 것이다. 지난 한해 동안 가장 많은 독후감을 제출한 것 역시 하양초교였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꽃재도서관에도 걱정거리가 있다. 학교도서관의 ‘엄마’ 같은 김수희 교사가 내년이면 학교를 떠나는 것이다. 30개 초교가 있는 경산시에 사서교사는 김수희 교사 한명뿐이라 새로 오는 사서교사가 없을지도 모른다. 김수희 교사는 “예전에 있었던 학교를 떠나와 오랜만에 가봤더니 도서관 문이 하루에 4시간 열리더라”며 “교육이나 문화적 혜택이 적은 지방일수록 학교도서관이 주는 파급력이 크므로 국가와 사회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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