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어린이집은 교사와 아이들이 손수 빚은 수수팥떡과 과일 등으로 생일상을 차린다. 이 어린이집의 생일잔치에서는 가공식품과 상업적인 선물 등을 찾아 볼 수 없다. 통통어린이집 제공
[아이랑 부모랑] 통통·솔 어린이집 상차림과 놀이 구경
아이·교사 함께 떡 만들고 상 차리고
성장과정 공유 촛불의식 “넌 소중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생일잔치 풍경은 다들 거기서 거기다. 한 달에 하루씩 날을 잡아 그달에 생일이 있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연다. 생일을 맞은 아이 부모들이 각자 맡은 음식을 사 보내면 그것을 모아 상을 차린다. 과자나 사탕, 초콜릿, 패스트푸드, 유제품, 생크림케이크 등이 단골 메뉴다. 후다닥 촛불 끄고 사진 찍고, 엄마가 포장을 해서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는 선물을 건넨 뒤에는 다들 먹느라 바쁘다. 부모가 열어 주는 생일잔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내 놀이시설이나 피자집에 아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 세트 메뉴로 잔치를 치른다. 생일 축하 노래도 기계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배를 채운 뒤에는 2차로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간다. 물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아이들은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생일잔치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다. 바로 잔치를 열어 주는 이들의 정성이다. 틀에 맞춰 속전속결로 진행되다 보니 생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축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양은희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상무이사는 “아이들의 생일마저 어른들의 문화를 답습해 쾌락과 소비 위주로 흐르고 있다”며 “탄생의 의미를 알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적인 생일 문화, 어떻게 가능할까?
서울 노원구 통통어린이집에선 한 달에도 여러 차례 생일잔치가 열린다.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그때그때 잔치를 열어 주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아이들 하나하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생일이 되면 교실에서 손수 수수팥떡을 만든다. 수수팥떡은 옛날부터 액운을 막아 준다고 여겨,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생일 때마다 해먹이던 떡이다. 아이들은 교사가 수수팥떡을 준비하면 벌써 눈치를 채고 ‘오늘은 누구 생일이냐’고 물어온다. 옆에 앉아서 함께 떡을 빚기도 한다. 주방에서는 미역국을 끓이고 원장은 전을 부친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끼어들면 자연스럽게 요리활동으로 이어진다. 나들이를 나간 아이들은 들꽃이나 풀을 꺾어와 생일상을 장식한다. 어린이집 식구들이 너나없이 한 아이의 생일상을 차리는 데 힘을 보탠다. 어린이집은 온종일 잔칫집 분위기가 된다.
생일잔치가 시작되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생일 맞은 아이의 부모가 미리 어린이집 홈페이지에 올린 태몽을 들려 준다. 아이들은 저마다 종이에 생일 축하말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뒤, 반별로 책 한 권으로 묶어 선물로 준다. 교사는 자연물로 꾸민 액자에 아이 사진을 담아 건넨다. 이정은 원장은 “생일잔치 자체보다는 교사와 아이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해가는 과정이 훨씬 소중하다”며 “생일을 맞은 아이는 자신을 위해 모두가 애를 써 주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정말 소중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솔어린이집에는 좀 독특한 생일 의식이 있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태양을 상징하는 빨간색 양초 주변을 나이 수만큼 돈다. 1살 때부터 생일을 맞은 해까지 연령대별로 가장 특징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과 설명이 순서대로 붙어 있는 ‘성장표’를 미리 준비해 놓고, 아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 주면서 당시 아이의 특징을 말해 준다. 김홍은 원장은 “생일을 계기로 1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깨닫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그 동안 어떻게 자라 왔는지 등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도 대안적인 생일문화가 가능하다. 초등학생 두 딸의 엄마인 김인자(42·인천 계양구)씨는 아이들 생일 때마다 아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손수 장만한 음식을 함께 먹는다. 생일상에는 피자나 햄버거 대신 아이들과 함께 빚은 만두가, 치킨 대신 닭볶음탕이, 청량음료 대신 식혜가, 생크림케이크 대신 떡케이크가 올라온다. 음식을 다 먹은 뒤에는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가는 대신 김씨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 박영란(47·서울 강동구)씨는 아이 생일 때면 친구들을 동네 공원 등 가까운 숲으로 초대해 비석치기, 솔방울 던져 넣기, 장승 만들기와 같은 생태놀이를 한다. 박씨는 “생일을 ‘파티’가 아니라 자연 속 놀이로 치르면 돈도 들지 않고 아이들도 좋아한다”며 “아이들이 생일에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피시방 등으로 몰려다니는 데는 건강한 놀이문화를 만들어 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 이 크다”고 말했다. 양은희 이사는 “정성을 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명 탄생을 축하하기보다는 패스트푸드로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식으로 소비주의와 형식주의에 물든 생일을 치러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성장과정 공유 촛불의식 “넌 소중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생일잔치 풍경은 다들 거기서 거기다. 한 달에 하루씩 날을 잡아 그달에 생일이 있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연다. 생일을 맞은 아이 부모들이 각자 맡은 음식을 사 보내면 그것을 모아 상을 차린다. 과자나 사탕, 초콜릿, 패스트푸드, 유제품, 생크림케이크 등이 단골 메뉴다. 후다닥 촛불 끄고 사진 찍고, 엄마가 포장을 해서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는 선물을 건넨 뒤에는 다들 먹느라 바쁘다. 부모가 열어 주는 생일잔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내 놀이시설이나 피자집에 아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 세트 메뉴로 잔치를 치른다. 생일 축하 노래도 기계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배를 채운 뒤에는 2차로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간다. 물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아이들은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생일잔치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다. 바로 잔치를 열어 주는 이들의 정성이다. 틀에 맞춰 속전속결로 진행되다 보니 생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축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양은희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상무이사는 “아이들의 생일마저 어른들의 문화를 답습해 쾌락과 소비 위주로 흐르고 있다”며 “탄생의 의미를 알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적인 생일 문화, 어떻게 가능할까?
통통어린이집은 교사와 아이들이 손수 빚은 수수팥떡과 과일 등으로 생일상을 차린다. 이 어린이집의 생일잔치에서는 가공식품과 상업적인 선물 등을 찾아 볼 수 없다. 통통어린이집 제공
통통어린이집은 교사와 아이들이 손수 빚은 수수팥떡과 과일 등으로 생일상을 차린다. 이 어린이집의 생일잔치에서는 가공식품과 상업적인 선물 등을 찾아 볼 수 없다. 통통어린이집 제공
서울 용산구 솔어린이집에는 좀 독특한 생일 의식이 있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태양을 상징하는 빨간색 양초 주변을 나이 수만큼 돈다. 1살 때부터 생일을 맞은 해까지 연령대별로 가장 특징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과 설명이 순서대로 붙어 있는 ‘성장표’를 미리 준비해 놓고, 아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 주면서 당시 아이의 특징을 말해 준다. 김홍은 원장은 “생일을 계기로 1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깨닫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그 동안 어떻게 자라 왔는지 등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도 대안적인 생일문화가 가능하다. 초등학생 두 딸의 엄마인 김인자(42·인천 계양구)씨는 아이들 생일 때마다 아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손수 장만한 음식을 함께 먹는다. 생일상에는 피자나 햄버거 대신 아이들과 함께 빚은 만두가, 치킨 대신 닭볶음탕이, 청량음료 대신 식혜가, 생크림케이크 대신 떡케이크가 올라온다. 음식을 다 먹은 뒤에는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가는 대신 김씨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 박영란(47·서울 강동구)씨는 아이 생일 때면 친구들을 동네 공원 등 가까운 숲으로 초대해 비석치기, 솔방울 던져 넣기, 장승 만들기와 같은 생태놀이를 한다. 박씨는 “생일을 ‘파티’가 아니라 자연 속 놀이로 치르면 돈도 들지 않고 아이들도 좋아한다”며 “아이들이 생일에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피시방 등으로 몰려다니는 데는 건강한 놀이문화를 만들어 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 이 크다”고 말했다. 양은희 이사는 “정성을 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명 탄생을 축하하기보다는 패스트푸드로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식으로 소비주의와 형식주의에 물든 생일을 치러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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