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학원 설립자 정경진씨
한겨레가 만난 사람
종로학원 설립자 정경진씨
과정보다 결과만 따지는 세태
시험 어떻게 보느냐보다
어떻게 가르칠까 먼저 고민을 정부에서 시험 출제 전담하고
대학들 자율적으로 채점 땐
입시문제 상당부분 해소될 것 우리나라 본격적인 사설학원의 효시격인 종로학원 설립자 겸 회장 정경진(78)씨는 요즘도 교육에 관한 걱정이 늘 앞선다고 한다. 1965년 서울 인사동에 종로학원을 세웠으니 만 43년 동안 사설학원을 운영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정씨지만 “학원들이 안 되더라도 학교교육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했다. 정 회장은 “새 정부 들어 교육분야에 많은 변화가 올 걸로 예상하지만 교육의 본질적인 면을 여전히 소홀히 하는 것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훌륭한 스승 아래 제대로 된 학생이 나온다”며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식처럼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온 사회가 존경심을 보내면 교육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3년부터 정 회장 측근에서 일해온 종로학원 김용근 평가실장은 “회장님은 직원들에게 ‘선생님들에 대한 공경심을 잃어선 절대 안된다’고 강조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새 정부 들어 교육분야에 많은 변화가 올 걸로 예상됩니다. 회장님께서도 그렇게 보시는지요?
=이명박 대통령 되고 나서도 기대가 컸었는데 좀 그렇습니다. 요새 나가는 거 보니까 조금 뭐, 뭐 크게 잘못했다는 것보다도 적어도 입시를 논하면서 교육이 빠진다는 거 그게 참 문제라고 봅니다. 이번에 시험을 어떻게 보느냐 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우리나라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인간을 만들지 하는 방향을 먼저 설정해야 하는데 한번도 교육부에서 그런 말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한번도 교육의 중심이 뭔지 이야기를 안 해요.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된 바가 없어요. 그래서 난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교육은 우리나라 자체에서만 해결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경쟁 같은 걸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국내에서만 논의돼야 할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글로벌시대에 맞춰서 가야지 거꾸로 가면 안 되죠. 어떤 인간형,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게 없으니까, 전제가 없으니까 이 나라가 흔들리는 거예요. 본고사라고 안 될 이유도 없고, 만일 그게 잘못됐다면 그 병폐가 무엇인가, 그게 뭐가 잘못됐는지 시정할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나쁘다고 하면 그건 곤란합니다. 그게 이념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입시제도에 대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대학은 전공분야를 연구하는 곳이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곳은 아니거든요. 시험문제를 출제하는데 뭐가 안 돼 있냐면 여러 가지로 볼 때 미숙한 데가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어요. 시험문제는 정부에서 내고 채점은 대학에서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부정 같은 것도 많이 방지할 수 있고요. 대신 답안은 학교 맘대로 하게 해야죠. 어떤 문제를 내주고 답까지 주어지는 교육은 (대학 자율적인 면에서) 안됩니다. 문제는 낼 수 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는 서울대도 다르고 다른 대학들이 다 다른 건데 그게 답까지 같을 수는 없거든요. 출제는 국가에서 하고 채점이나 배점은 대학이 마음대로 하도록 하면 좋을 듯합니다.
-공정성 시비가 생기지 않을까요?
=공정성이요? 공정하다는 말은 어떤 특수한 학생을 합격시키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무언가를 할 때 그걸 공정하지 않다고 하는 거지요. 불교학교에서는 그 가치에 맞는 학생을 뽑고 그리스도 학교도 그렇게 맞는 학생들을 뽑아야 합니다. 참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입시제도가 교과서나 마찬가지로 그게 잘못되면 큰일 나는 거로 국가에서 보니 답답하지요. 시험제도는 선발기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다음 교육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겁니다. 학생 선발에만 중요성이 있는 게 아니라 교육에 대한 방향제시와 관련된 거죠. 교과서보다 더 미래교육 방향과 관련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학에 자율성을 주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거를 자꾸만 머리 좋은 애 나쁜 애를 가르고 이렇게 하는 건 안된다고 봐요. 앞으로 재능 있는 애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이게 단순히 이랬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미국 같은 경우 학생들 비전을 보고 미래를 보는 연구가 잘 되어있죠. 거기에 돈도 많이 들이고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뽑자는 게 미래를 보자는 것도 아니고, 농어촌특별전형 같은 제도들을 따로 만들면서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그 나라 미래가 달려있는 거거라고 저는 봅니다.
-40년 이상 학원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계셨으니 세태의 변화 같은 걸 느끼실 것 같습니다. 지금 스무살 아이들과 40년 전 그 또래와 많이 다르죠?
=영 다르죠. 자유분방하고 좋지 못한 건 먼저 들어오듯이 담배도 그렇고….미국이 무법천지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아요. 거기는 자유분방할 뿐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우리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그래요.
-기억에 남는 제자들은 누구인지요.
=우리 사회에서 웬만한 인물들은 모두 종로학원 출신들이죠. 그건 참 자부할 수 있어요. 저도 15년 전까지는 직접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직접 안 하니 잘 몰라요.(인터뷰를 끝나고 점심을 하려고 염천교 부근 학원에서 코리아나 뒤편 중국음식점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그는 “기억에 남는 종로학원 학생 가운데 한화 김승연 회장이 있었다”며 “그 친구 그때도 사고 치고 그래 조금 시끄러웠다”고 했다.)
채수찬이라고 있어요, 국회의원이 하는. 고등학교때 데모하다 쫓겨나 우리 학원에 왔는데, 서울대학교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했죠. 주위에서 천재로 소문났는데, 교수 하다가 왜 국회의원 한다고 그만뒀는지 참 안타까워요. 경기고 시절 제자인 이태섭 부부가 찾아와 국회의원 한다고 그래요. 참 대단한 화학자가 될 사람이었는데, ‘이러다간 나라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공계로 가려는 학생이 없잖아요. (그는 이 대목 즈음에 ‘나라가 망하겠다는 걱정이 든다’는 말을 세번이나 반복했다) 법과대학이나 의대는 찾아도 이과생이라는 게 없어요. 좋은 공과대학이 없으니 나라가 암담해요. 지금 이나마 나라를 이끌고 있는 건 그때 공부했던 사람들이 끌고 가는 거지. 진학지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성적보다도 학과가 뭔지를 잘 모른다는 거죠. 애들이 학과에서 뭘 하는지를 잘 몰라요. 애들이 기계공학과랑 기계과 차이도 모르고 말이죠. 텔레비전도 그래요. 10년 후 한국의 산업이 어떻게 변할 거고, 어떤 직업이 유망한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여주는 게 별로 없어요. 요즘 이소연양이 우주비행을 하면서 과학에 조금 관심이 일어나니 다행입니다.
-수학을 오랫동안 가르쳐오셨는데, 재미없는 과목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첫째가 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수학교육이 없는 거예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따지고 논리를 중시해야 하는데 결과만 가지고 답이 몇 번이나 하고 고르고, 몇 번을 찍으면 된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해답을 찾는 게 중요한데, 정답만 찾고, 문제 푸는 요령만 가르치는 지금의 수학교육은 정말 문제지요.
-수학을 왜 그리도 좋아하셨는지요? 60년대 학원가 명강사셨다죠.
=저는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어요. 그리고 서울대엔 농대로 입학하였는데, 당시 금속공학과에 심상칠 교수란 분이 계셨어. 그분 말씀 듣고 공대로 옮겼지요. 수학 너무 재밌어서 열심히 했어요. 특히 17~20살 무렵 수학에 푹 빠졌지요. 일본 사람이 쓴 <기하학의 산책>이란 책이 있었어. 17살엔가, 그책을 발견하고 단숨에 읽어내려 갔어요. 500페이지쯤 되었어요. 논리적인 게 그렇게 재미있는 거는 지금까지 못 찾았어요. 사업하면서도 수학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결정적인 순간이 몇차례 찾아오는데, 내겐 그때가 그랬던 것 같아요. (인터뷰에선 자신의 강사 시절에 관한 얘기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는 인터뷰 며칠 후 60년대 초반 종로1가 EMI학원에서 정 회장의 명강의를 직접 수강했던 한 인사로부터 우연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고려대를 졸업한 전직 국정원 간부 출신인 박아무개씨는 고1때 강원도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와 정경진 강사한테서 수강했다고 한다. 박씨가 전하는 수학선생 정경진의 실력이다. <서울로 전학 오자마자 정씨가 강의하는 EMI학원으로 찾아갔지요. 창피를 무릅쓰고 중학 2년 과정을 들었어요. 새벽 6시 수업인데, 강의실은 나같이 기초가 부족한 고교생들도 상당수인데, 특히 학교 선생님들도 적지않았습니다. 정씨한테 강의법을 배우려는 것이었죠. 얼마나 쉽고 재밌게 가르치는지 한마디로 ‘교수법의 천재’였습니다. 가령 약분을 가르치면서 때리고 쓰다듬으면 2/4가 1/2이 된다는 식입니다. 전학 온 1학년 1학기초 15점을 맴돌던 수학평균 점수가 고3 때는 90점대로 올랐습니다. 무난히 고려대 이과계열에 합격했지요.>
-<수학의 완성>이란 참고서는 70년대까지 수험생 필독서 아니었나요?
=그랬지요. 하지만 얼마 뒤 우리학원(종로학원) 강사였던 홍성대씨가 <수학의 정석> 시리즈를 내면서 내 책은 인기가 없어졌어요. 정석은 지금도 수학의 명수험서로 꼽히지. 요즘도 자주 홍성대씨 만나 식사도 하고 그래요. (서울 종로학원 본원 정 회장 집무실엔 자신이 지은 <수학의 완성>은 없었다. 하지만 책꽂이 곳곳에 <수학의 정석>이 꽂혀있다. 기자는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에게 정 회장에 대해 한 말씀해달라고 부탁했다.
홍 이사장 말이다. “그분은 내 책이 당신의 <수학의 완성> 하고 경쟁이 될 것을 아시면서도 자신이 운영하는 수험사란 출판사에서 내 책을 내주셨다. 1966년에 <수학의 정석> 내 책이 나오고 나서 그분 책은 점점 줄어들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더라. 그분과 나는 형제처럼 지내는데, 종종 내기 바둑을 둘 때면 그분의 통이 얼마나 큰지 놀라곤 한다. 가령 처음에 1만원 내기에서 지면 다음엔 2만원, 4만원, 8만원, 16만원, 32만원 이런 식이다. 그분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수학발전에 정말 큰 공을 세우셨다.")
-종로학원을 운영하다 한때 어려운 일도 당하셨던 걸로 압니다.
=내가 교육하면서 소송도 몇 번 당한 사람인데, 학원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제 맘대로 정해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거는 학생을 모집하기 전에 주어진 제도틀 안에서 이러저런 식으로 하겠다고 공지가 돼야하는데 그게 안돼요. 정부에서 그걸 해줘야 하는데, 운영방침 같은 것을 안내서 같은 데에 정확하게 하고, 교육당국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잘못하는 데는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학원장들을 불러서 무조건 다 그냥 똑같이만 (수강료) 받으라고만 하고…. 그러면 안돼요. 수강료 이런 거 다 자율화하고 애초 규정을 지키게 해야죠. 학원을 어떤 식으로 운영하겠다는 걸 공개하게 하고 교육청에서는 그게 틀릴 적에 감시해 조치를 취하면 됩니다. 투명하게 안 하는 게 문제입니다. 내용이 다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다 다른데, 과목도 다르고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그걸 똑같이 (수강료를) 받으라는 건 아니라고 봐요.
우리 종로학원은 엄청 투명하게 합니다. 제가 형을 받고 할 때도 그때 YS아들 김현철 문제로 여론이 나빠지니까 엉뚱하게 언론에서 방향을 틀어버리려고 학원을 희생양 삼은 거지. 언론의 방향을 틀려고 하다보니까 제일 큰 학원인 종로학원이 그렇게 됐던 거지요. 막상 구속되고도 내심 기대를 했었어요. 우리가 얼마나 투명하게 하는지 법적으로 판결이 나겠구나 했는데, 엉뚱하게 학원 책을 학원에서 발행하지 않고 출판사에서 냈다며 그걸 문제삼더라구요. 발행주체가 분명하게 밝혀지면 되는 거지 왜 딴 사람이 했냐 이렇게 해서 종로학원이 탈세했다, 그렇게 됐던 겁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이 사건을 만들려고 자신을 표적수사해 구속시켰다며 당시 수사검찰을 ‘나쁜 X’이라며 ‘국민검찰은 무슨 국민검찰이냐’고 했다. 그는 인터뷰 뒤 식사자리에 가는 차안에서도 ”법관들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나라고 사법정의고 제대로 선다“며 ”의사 역시 기초의학분야엔 천재가 필요하지만 대부분 의사들은 환자를 따스하게 돌볼 줄 아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얘기로 넘어가 보죠.
=일단 방향은 올바른 거라고 봐요, 자율을 주는 면에선 말입니다. 교육은 그 방향으로 가긴 가야지요. 그런데 영어몰입 교육 같은 건 뭔가 혼동하고 잘못 가고 있다고 봐요. 생활영어하고 학문하는 영어의 차이를 둘 줄 알아야 해요. 그걸 혼동을 하면서 생활영어만 제일이라고 하면 그럼 우리 학생들의 가장 선망의 대상이 돼야 할 사람이 호텔 웨이터냐, 그런 비약이 가능해지죠. 학문을 위한 영어는 또 따로 해야 하는 거고, 생활영어는 그대로 하면서 영어는 영어대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한쪽으로만 몰아가고 그러면 안 되죠. (그는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아쉬운 점이라며 몇마디 더했다.)
사람들 쓰는 게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패거리에 너무 신경쓰는 것 같구요. 총선만 해도 그래요. 전국구 의원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해야 하는데, 참 속상하지요. 박정희씨가 나중에 독재해서 그렇지만 대단한 사람이예요. 독재를 해서 존경을 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점은 평가해야 합니다. 그를 제2의 국부라고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참 대단한 게 뭐냐하면 과학기술처를 설립하고, 외국학자 데려와 KAIST 설립하고, 군인출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놀라와요. 두뇌를 중시한 대통령이지요.
-말 많고 탈도 많은 입시제도 뭐 해결책이 없을까요?
=딱 이거다 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그래도 토플출제방식 같은 것이 나은 게 아닌가 해요. 채점 후에는 다음 문제를 위한 샘플을 만들어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는 시험이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저 아이들을 떨어뜨릴 생각으로만 문제를 내니까 나라가 어떻게 되겠어요. 기자들도 입시제도에 책임이 있죠. 시험 보고 나서 이게 쉬웠다 어려웠다 어쩌고 저쩌고, 그게 왜 논증의 대상이 되고 사회문제가 돼야 합니까?
(이쯤에서 기자가 “어느 해인가 수능이 쉽게 출제되자 서울대에서 면접시험 때 수학문제를 풀게 했는데, 그보다는 미분의 원리라든가 일상생활에서 미분이 어떻게 적용될 지 등을 물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 그래야 고교에서도 문제풀이보다 원리나 이해를 중심으로 가르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정 회장은 “전적으로 공감”이라며 이어나갔다.)
=미분이라는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어요. 미분해서 답이 얼마인지는 아는데 원리를 몰라요. 원리를 가르치고 이게 왜 우리한테 필요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니 수학은 어려운 학문이고 재미없고,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이공계 합격생들에게 미분 기초부터 가르쳐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된 거죠.
-온 국민이 사교육비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하는데요. 족집게 강사들은 수백만원씩 과외비를 받는다고도 하고 말입니다.
=종로학원엔 족집게 강사가 없어요. 수학을 가르칠 때도 다들 족집게를 원해요. 그런데, 그러면 안되는 거죠.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게 사기꾼이죠. 미국은 우리보다 사교육비가 더 많아요. 미국에서 초중고 대학생들 따져보면 엄청 많죠. 그런데 방침이 뚜렷해요. 공립학교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으니 자기 돈 내서 배울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내고 배우는 거죠. 문제는 족집게 과외를 안 하고서도 공부를 할 수 있게 시험문제 출제를 유도해가야 돼요. 가장 중요한 게 시험출제 방향인데 이상하게 그걸 안하고, 비밀과외네 뭐네 하니까 바로잡아지지 않는 겁니다. 하여튼 제 생각으로는 가장 중요한 게 입시출제에요. 정부는 출제위원회 같은 걸 구성해서 거기서 책임지고 좋은 문제를 내게 하면 상당부분 지금의 문제들을 해소시킬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는 기자가 시험문제유출이 또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잘라말했다. 인터뷰가 1시간 반 가까이 계속되자 피곤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10여년전부터 척추수술과 심장, 폐수술 등 대수술을 받은 후유증인 듯했다. 한때 그렇게 즐기던 골프도 재미를 못느껴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쯤해서 화제를 소프트한쪽으로 돌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종로학원 현황을 물었다. 정 회장은 자세한 것을 일러주겠다면 김찬우 부원장을 불렀다. 사돈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사위인 큰 아들 태영씨와 서울대 불문과 동창이라고 했다. 김 부원장은 “강남북 본원에 3100명이 종로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하신지 50년이 훨씬 지나셨지요? 대학 동창들 종종 만나시는지요?
=같은 과 친구들이 40명인데, 2/3 정도가 생존했어요.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 식사 하는 재미가 있어요. 경제적으로는 내가 제일 나은 것 같아. 그런데, 묘한게 김씨가 단 한명이 없어요. 그것 참 신기해….
-한때 경기고에서 교편을 잡으셨지요?
=50년대 잠깐 있었어요. 3년인가. 그때 영어로 유명하시던 안현필 선생도 계셨는데, 누구보다 기억나는 분은 단연 이어령 장관이지요. 그분 정말 천재예요, 천재. 우리 사람들의 지적능력으로 분석력 추리력 조직력 기억력 같은 게 있잖아요. 그분은 이걸 모두 갖췄어요. 그런 분 하고 한때 강단에 같이 섰다는 게 정말 자부심을 느낍니다.
-종교가 있으신가요?
=기독교에서 10여년 전 천주교로 바꿔 혜화동성당 나가요. 니콜라가 세례명이지요. 처음엔 소망교회 다녔는데, 분위기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바꾼 거지요. 작년에 제주도에 가서 하꼬방 같은 성당에 갔는데, 정말 좋습디다.
-인생관 같은 것 있으시면 들려주십시요.
=하루를 성실히, 일년을 보람있게, 바로 이겁니다. 젊은이들이 껑충껑충 단번에 뛰기보다 벽돌 한장 쌓듯이 인생을 차근차근 설계했으면 좋겠어요. 첫걸음에 우주선부터 타려고 하지 말고 말입니다.
-존경하는 수학자가 있습니까?
=현대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가우스가 있습니다. 그는 요점과 핵심을 찌르며 수학의 깊이를 깊게 한 분이지요. 스티븐 호킹도 훌륭한 수학자인데, 그가 만일 한국에서 출생했다면 과연 그렇게 됐을까요? 혹 북한에서 낳았다면 가능했겠지만 말입니다. 모든 걸 국가에서 해주니 말이죠. 저는 중국에서 부러운 게 두가지 있어요. 하나는 전세대 혹은 전임자가 하던 일이 계승, 승계가 잘 되는 것이고, 또하나는 이공계출신들이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고요. 우리나라 기업가 중에서 이공계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거의 없어요.
(중국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하면서 보니 그의 식사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탕수육과 사천탕면을 시켰는데, 기자가 2/3를 채 못 먹는 동안 그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는 “오후 헬스클럽에서 두어 시간 운동을 한 뒤 귀가해 아내와 저녁을 같이한 뒤 텔레비전 드라마, 뉴스 등을 보는 게 요즘 사는 맛”이라고 했다.)
글 이상기 선임기자 amig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시험 어떻게 보느냐보다
어떻게 가르칠까 먼저 고민을 정부에서 시험 출제 전담하고
대학들 자율적으로 채점 땐
입시문제 상당부분 해소될 것 우리나라 본격적인 사설학원의 효시격인 종로학원 설립자 겸 회장 정경진(78)씨는 요즘도 교육에 관한 걱정이 늘 앞선다고 한다. 1965년 서울 인사동에 종로학원을 세웠으니 만 43년 동안 사설학원을 운영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정씨지만 “학원들이 안 되더라도 학교교육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했다. 정 회장은 “새 정부 들어 교육분야에 많은 변화가 올 걸로 예상하지만 교육의 본질적인 면을 여전히 소홀히 하는 것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훌륭한 스승 아래 제대로 된 학생이 나온다”며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식처럼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온 사회가 존경심을 보내면 교육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3년부터 정 회장 측근에서 일해온 종로학원 김용근 평가실장은 “회장님은 직원들에게 ‘선생님들에 대한 공경심을 잃어선 절대 안된다’고 강조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새 정부 들어 교육분야에 많은 변화가 올 걸로 예상됩니다. 회장님께서도 그렇게 보시는지요?
=이명박 대통령 되고 나서도 기대가 컸었는데 좀 그렇습니다. 요새 나가는 거 보니까 조금 뭐, 뭐 크게 잘못했다는 것보다도 적어도 입시를 논하면서 교육이 빠진다는 거 그게 참 문제라고 봅니다. 이번에 시험을 어떻게 보느냐 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우리나라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인간을 만들지 하는 방향을 먼저 설정해야 하는데 한번도 교육부에서 그런 말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한번도 교육의 중심이 뭔지 이야기를 안 해요.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된 바가 없어요. 그래서 난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교육은 우리나라 자체에서만 해결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경쟁 같은 걸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국내에서만 논의돼야 할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글로벌시대에 맞춰서 가야지 거꾸로 가면 안 되죠. 어떤 인간형,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게 없으니까, 전제가 없으니까 이 나라가 흔들리는 거예요. 본고사라고 안 될 이유도 없고, 만일 그게 잘못됐다면 그 병폐가 무엇인가, 그게 뭐가 잘못됐는지 시정할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나쁘다고 하면 그건 곤란합니다. 그게 이념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입시제도에 대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대학은 전공분야를 연구하는 곳이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곳은 아니거든요. 시험문제를 출제하는데 뭐가 안 돼 있냐면 여러 가지로 볼 때 미숙한 데가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어요. 시험문제는 정부에서 내고 채점은 대학에서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부정 같은 것도 많이 방지할 수 있고요. 대신 답안은 학교 맘대로 하게 해야죠. 어떤 문제를 내주고 답까지 주어지는 교육은 (대학 자율적인 면에서) 안됩니다. 문제는 낼 수 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는 서울대도 다르고 다른 대학들이 다 다른 건데 그게 답까지 같을 수는 없거든요. 출제는 국가에서 하고 채점이나 배점은 대학이 마음대로 하도록 하면 좋을 듯합니다.
종로학원 설립자 정경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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