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들은 ‘남녀공학’을 의심에 찬 눈초리로 보지만, 학생들은 이성과 ‘효과적’으로 공존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사진은 발표수업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박창식 기자
커버스토리 /
학부모 ㄱ씨는 아들이 고교 배정을 받은 뒤부터 은근히 걱정이다. 남녀공학 고교를 배정받았는데, 아들이 여학생과 사귀면서 공부를 뒷전으로 밀어내지 않을까 고민인 것이다. 중학교 때도 학교나 학원에서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성적이 떨어진 적이 있다. 그는 "남녀공학 고교에 배정받지 않기를 바랐는데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특히나 그 학교가 남녀 교제로 대학 진학이 좋지 않다고 다른 학부모들이 말해 더 조바심을 내고 있다.
이성교제 비율, 남학교·여학교와 큰 차이 없어
“외모 신경쓰는 건 사실” - “경쟁하며 더 자극받아”
학부모 ㄴ씨는 요즘 딸아이의 뒤를 ‘캐고’ 있다. 남녀공학 특성화고에 입학한 뒤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생긴 것 같은데, 딸은 거듭 부인한다. 그는 “내가 보기엔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은데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며 “고교생은 어른이나 마찬가지여서 이성교제를 한다고 하면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런 학부모들이 많다. 특히 고교 배정 때에는 남녀공학 고교로 결정되면 한숨을 내쉬는 학부모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성교제를 한다는 것이 염려스러운데, 남녀공학 고교는 그 기회가 더욱 많을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이런 걱정은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막연한 예단일 수 있지 않을까? 수험생 커뮤니티 ‘수만휘'(www.sumanhui.com) 고교생 회원들을 상대로 ‘남녀공학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들어봤다. ■ 남녀공학 학생들이 이성교제 많이 한다?(거짓)=남녀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성교제를 많이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에는 외려 여고와 남고생들이 반기를 들었다. 남녀공학을 다니다 여고로 전학 온 ㅇ(17)양은 “남녀공학 다닐 때 사귀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여고에 와보니 남학교 학생이랑 사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더라”며 “연애 안 하는 애들은 어디서든 안 하게 마련”이라고 잘라 말했다. 남고생 ㅈ(17)군 역시 “내 주변에 연애하느라 공부 못하는 녀석들이 많다”며 “남녀공학이라고 연애 많이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여고와 남녀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각각 자기 반 친구들의 이성교제 여부를 조사한 결과, 여고는 40명 가운데 6명(15%)이, 남녀공학은 37명 가운데 6명(16%)이 이성교제를 하고 있었다. 남녀공학 학생이나 남학교, 여학교 학생들의 이성교제에 차이가 없는 이유는 이들이 모두 입시성적에 구속된 수험생 신분이라는 데 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ㅇ(18)양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는 어리지 않다”며 “고교생이 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압박으로 이성교제 하고 싶어도 참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최혜진(19)씨는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내 앞길 여는 것도 힘든데 이성친구까지 어떻게 신경 쓰겠냐”고 했다. 지난 2006년 통계청이 낸 ‘사회통계조사 보고서’를 보면, 15~18살(중1~고3) 청소년에게 ‘고민하는 문제’를 물은 결과 ‘이성교제’를 꼽은 이들은 8.6%에 불과했지만 ‘공부’를 꼽은 이들은 79.2%에 달했다. 김재익 한양대 사범대 부속고 교감은 “요즘 아이들은 자기한테 무엇이 득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 남녀공학 학생들은 이성 때문에 공부 못한다?(절반의 진실)=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조건이 공부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학생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성교제를 하지 않더라도 이성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ㅇ(17)양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로 외모 관리에 에너지를 쏟는 친구들이 있다”며 “남학생인데도 매니큐어를 바르고 교복과 사복을 번갈아 입는다거나 여학생은 파마, 화장에 굽 있는 구두를 신기도 한다”고 했다. 반면 여고나 남고생들은 한결같이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남고의 ㅁ(16)군은 “입학했을 때는 남녀공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그곳에 간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비공학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남녀공학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윈―윈’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ㅇ(18)양은 “여자와 남자가 잘하는 과목이 다르니까 서로 도와줄 수 있다”며 “나는 수학을 잘 못하는데 여자친구들보다 남자친구들한테 많이 물어본다”고 했다. 여고생 ㄱ(18)양은 “여고나 남고는 평소에 서로 실력을 잘 몰라서 수능과 같은 전국시험을 대비하는 데 불리한 면이 있다”며 “컴퓨터 게임에나 빠져있을 것 같은 애들이 모의고사 성적 나오는 거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했다. 남녀공학은 남녀 학생 서로에게 동등하게 경쟁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정경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학, 과학, 체육 등의 교과에서 여학생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고 남학생들은 수행평가 점수 등으로 고충을 호소한다”며 “여학생과 남학생의 특성을 고려한 교수법에 대한 연구나 교사들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이런 학부모들이 많다. 특히 고교 배정 때에는 남녀공학 고교로 결정되면 한숨을 내쉬는 학부모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성교제를 한다는 것이 염려스러운데, 남녀공학 고교는 그 기회가 더욱 많을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이런 걱정은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막연한 예단일 수 있지 않을까? 수험생 커뮤니티 ‘수만휘'(www.sumanhui.com) 고교생 회원들을 상대로 ‘남녀공학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들어봤다. ■ 남녀공학 학생들이 이성교제 많이 한다?(거짓)=남녀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성교제를 많이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에는 외려 여고와 남고생들이 반기를 들었다. 남녀공학을 다니다 여고로 전학 온 ㅇ(17)양은 “남녀공학 다닐 때 사귀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여고에 와보니 남학교 학생이랑 사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더라”며 “연애 안 하는 애들은 어디서든 안 하게 마련”이라고 잘라 말했다. 남고생 ㅈ(17)군 역시 “내 주변에 연애하느라 공부 못하는 녀석들이 많다”며 “남녀공학이라고 연애 많이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여고와 남녀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각각 자기 반 친구들의 이성교제 여부를 조사한 결과, 여고는 40명 가운데 6명(15%)이, 남녀공학은 37명 가운데 6명(16%)이 이성교제를 하고 있었다. 남녀공학 학생이나 남학교, 여학교 학생들의 이성교제에 차이가 없는 이유는 이들이 모두 입시성적에 구속된 수험생 신분이라는 데 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ㅇ(18)양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는 어리지 않다”며 “고교생이 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압박으로 이성교제 하고 싶어도 참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최혜진(19)씨는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내 앞길 여는 것도 힘든데 이성친구까지 어떻게 신경 쓰겠냐”고 했다. 지난 2006년 통계청이 낸 ‘사회통계조사 보고서’를 보면, 15~18살(중1~고3) 청소년에게 ‘고민하는 문제’를 물은 결과 ‘이성교제’를 꼽은 이들은 8.6%에 불과했지만 ‘공부’를 꼽은 이들은 79.2%에 달했다. 김재익 한양대 사범대 부속고 교감은 “요즘 아이들은 자기한테 무엇이 득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 남녀공학 학생들은 이성 때문에 공부 못한다?(절반의 진실)=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조건이 공부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학생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성교제를 하지 않더라도 이성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ㅇ(17)양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로 외모 관리에 에너지를 쏟는 친구들이 있다”며 “남학생인데도 매니큐어를 바르고 교복과 사복을 번갈아 입는다거나 여학생은 파마, 화장에 굽 있는 구두를 신기도 한다”고 했다. 반면 여고나 남고생들은 한결같이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남고의 ㅁ(16)군은 “입학했을 때는 남녀공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그곳에 간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비공학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남녀공학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윈―윈’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ㅇ(18)양은 “여자와 남자가 잘하는 과목이 다르니까 서로 도와줄 수 있다”며 “나는 수학을 잘 못하는데 여자친구들보다 남자친구들한테 많이 물어본다”고 했다. 여고생 ㄱ(18)양은 “여고나 남고는 평소에 서로 실력을 잘 몰라서 수능과 같은 전국시험을 대비하는 데 불리한 면이 있다”며 “컴퓨터 게임에나 빠져있을 것 같은 애들이 모의고사 성적 나오는 거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했다. 남녀공학은 남녀 학생 서로에게 동등하게 경쟁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정경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학, 과학, 체육 등의 교과에서 여학생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고 남학생들은 수행평가 점수 등으로 고충을 호소한다”며 “여학생과 남학생의 특성을 고려한 교수법에 대한 연구나 교사들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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