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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진로교육 시간은 ‘영어 테이프’ 듣기 시간?

등록 2008-02-24 15:51수정 2008-02-24 15:59

진로탐색의 기초인 심리검사, 적성검사를 해석하지 못해 난감해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 이를 도와줄만한 시스템들을 찾을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제공
진로탐색의 기초인 심리검사, 적성검사를 해석하지 못해 난감해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 이를 도와줄만한 시스템들을 찾을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제공
15년동안 진로교육 강조 불구
전문교사 부재, 관리자 인식 낮아
고교현장 ‘형식적’수업 그쳐
가정·학교·사회 연께 지원 모색을
진로교육/ 진로교육을 바로 세우자! / 2. 진로교육의 현주소

수도권 지역에 사는 박아무개(17)양은 고교 1학년이었던 지난해 외고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반계고로 전학했다. 전학 뒤 달라진 교과목 가운데 `진로와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외고에서는 선행학습을 하고 온 친구들을 따라가느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계고에서 한 학기를 지낸 박양은 “이 학교나 저 학교나 다를 게 없다”고 실망했다.

일주일에 2시간씩 있는 `진로와 직업’ 시간. 교과서가 필요할 것 같았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필요 없다고 했다. 첫 시간에는 컴퓨터 담당 선생님이 한 방송사의 인생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틀어주셨다. 때 지난 프로그램을 보며 친구들은 지루해했다. 10분이 지나자 조는 아이도 보였다. 선생님은 몇 번 눈총을 주었지만 나중엔 보고도 모르는 척했다. 다음 시간에는 영어 선생님이 들어와 교육방송의 영어 회화 프로그램을 보여주셨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해 벌어졌다. 그렇게 한 학기가 갔다.

서울의 한 인문계 고교에 다니는 이아무개(17살)군이 설명한 `진로와 직업’ 수업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는 “영어 듣기 테이프를 듣다가 자습이나 숙제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본격화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고재성 부연구위원은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고 취업 관련 논의가 확산되면서 진로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장기적으로는 학교에서부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5년 동안 필요성만 강조됐을 뿐, 내실 있는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학교에서는 교과서 활용 통계조차 없고,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 정도를 활용해 진로교육을 하고 있다. 2007년도에 `진로와 직업’을 선택교과로 택한 고교는 전체의 54.2%(2172곳 가운데 1178곳)이지만, `진로와 직업’이라는 이름만 내걸었지 사실상 이 시간은 자습, 영어, 숙제, 낮잠 시간이 되고 있다.

누구나 진로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런 실정인 이유는 무엇일까? 교사들은 전문교사가 없음을 먼저 꼽는다. 학기 초, `진로와 직업’ 은 미술, 가정 등 시수가 적은 교사들이 나눠갖기 식으로 운영하기 일쑤다. 이러다 보니 그나마 정작 열의를 갖고 수업을 해보려는 교사들도 방법을 모른다. 진로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참여와 탐색, 검사 등의 활동이다. 직업탐색, 심리검사 등 보조 자료도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교사에게 자료는 모자라 수업을 준비할 시간은 짧다. 지난해 말 한국고용정보원이 진로지도 연수를 받은 중ㆍ고등학교 교사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9.3%가 중ㆍ고등학교의 학생 진로지도를 위한 자료나 정보 보유 정도에 대해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학교장 등 관리자의 인식도 턱없이 낮다. 서울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아무개군은 “대학 몇 명 보냈다는 건 지역에서도 알아주니까 혹 미달하는 과가 있으면 무조건 집어넣어야 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을 듣고 실망했다고 털어놨다. 학생들은 `진로와 직업’ 시간뿐 아니라 진로지도 및 상담 그리고 진로교육 자체가 형식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한국기술대학교 강혜영 교수는 “명문대 진학률이 곧 그 학교의 진로상담 성과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관리자들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진로교육은 어떨까? 안산 성포중 이진영 교사는 교사 한 명이 학생 35명의 적성과 흥미를 찾아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진로교육에서 부모들의 참여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정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로에 대해 얘기하면 무조건 교사 아니면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학생들은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난에 교사 또는 공무원이라고 적지만, `특기’ 난에는 아무것도 적지 못하곤 한다.

사회적 시스템은 그나마 낫다. 특히 몇 년 전부터 ‘멘토’, ‘역할모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특정 직업인을 만나고 직업세계를 체험하는 등의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04년도부터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잡스쿨, 청소년수련관 등에서 노는 토요일을 이용해 실시하는 직업체험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5월 셋째 주를 ‘직업세계 체험주간’으로 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직업세계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들 역시 학생 개인 차원에서는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학급이나 학교 차원에서 단체로 신청을 받는다. 대전 우송고등학교 김성환 교사는 “교육청에서 기업체와 연계해 실시하는 프로그램들을 적극 활용하는 교사의 의지, 이를 지원해줄 학교 차원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정철영 교수는 “선언적 차원의 진로교육 논의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로교육의 현주소가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가정ㆍ학교ㆍ사회가 공동으로 진로교육을 강조하는 것에 걸맞게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진로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진로와 직업’ 교과목 채택 고교 54% 그쳐

07년도 고교 진로와 직업교과 선택 현황
07년도 고교 진로와 직업교과 선택 현황

진로지도 교사들이 교육당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지난해 진로지도 연수를 받은 교사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진로교육을 정규교과목화 해달라"는 응답이 24.2%로 가장 많았다. 또 "진로지도 전담교사 배치와 교사들에게 충실한 진로지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각각 19.4%로 뒤를 이었다.

중학교에서 ’진로와 직업’은 정규교과목이 아니다. 대신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진로교육을 강조하면서 국민공통 교과 가운데 일부 교과(기술·가정, 도덕, 사회 등)에서 진로교육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는 수준이다. 그러나 범교과적인 진로교육은 부실한 상태다. 교육인적자원부 직업교육진흥팀 남현우 연구사는 “교수학습의 자료 개발이 부족하고 발달적 연계도 미흡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교에서는 전체의 54.2%(2007년 기준)가 ’진로와 직업’을 교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전체 고교의 절반 정도만이 진로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일반계고의 58.1%(1458개교 가운데 847개교), 전문계의 46.4%(714개교 중 331개교)가 교과로 선택하고 있어 사회에 먼저 진출할 학생들에 대한 진로교육이 더 부실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진로와 직업’ 선택과목률은 지역별로도 편차를 보인다. 교과목 개설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남으로 152개교 가운데 118개교(77.6%)에 이르렀고, 대전이 60개교 가운데 43개교(71.7%)로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광주는 61개교 가운데 고작 7개교(11.5%)에만 관련 과목이 개설돼 있어 가장 높은 전남과 무려 7배 차이가 났다. 학교에 배치된 진로상담 교사수는 전국 평균 1.39명에 불과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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