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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돈 ‘버는 법’ 아니라 ‘쓰는 법’ 배워요

등록 2007-11-19 19:15

제윤경씨와 딸 예진이가 용돈 기입장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윤경씨와 딸 예진이가 용돈 기입장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랑 부모랑] 재무전문가 제윤경씨 딸 ‘경제교육법’
한주 3천원 용돈주고 기입장 쓰게 해
주마다 엄마와 씀씀이에 대해 대화
문제 생겨도 부모는 도와주지 말아야

한때 <열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키라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으며, 조기 경제교육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부모들 사이에서 경제교육은 곧 ‘부자 되기’ 교육으로 통했다. 그러나 가계재무 전문가인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경제교육의 핵심은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돈을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거예요. 돈을 통제한다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통제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돈의 속성을 잘 이해해야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는 “경제교육이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으로만 오해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돈을 밝히는’ 아이가 아니라 ‘돈에 밝은’ 아이로 키우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경제교육의 목표다.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집에서 어떻게 경제교육을 시키고 있을까?

제씨는 용돈교육이 가장 좋은 경제교육이라고 말한다. 제씨는 딸 예진(11)이가 3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용돈교육을 시작했다. 용돈을 주기에 앞서 용돈의 의미와 돈의 속성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중요하며, 당장 갖고 싶은 것을 다 사다 보면 정작 필요한 것을 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해 줬다. 만일 그런 일이 생겨도 엄마는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용돈의 액수와 용돈으로 해결해야 할 범위도 대화를 통해 정했다. 한 주에 3천원으로 학교 준비물과 학용품을 사고,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사는 데 쓰기로 합의했다. 반드시 용돈기입장을 쓰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보며 씀씀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했다. 이번 주에는 돈이 남더라도 나중에 비싼 준비물을 사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돈을 아껴 쓰고 남은 돈은 모아 둬야 한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갑자기 자유롭게 쓸 돈이 생기니 충동구매가 잦아졌다. 예진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사놓기만 하고 안 쓸 게 뻔한 물건을 사는 것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그러나 물건을 못 사게 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대신 “안 보이던 물건이 있네. 이거 새로 산 거니?” “이렇게 사놓고 보니까 기분이 좋아?” 하고 질문을 던졌다. 제씨는 “충동구매를 하면 나중에 불편해진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해야 한다”며 “잔소리나 간섭은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습관을 기르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문제가 터졌다. 돈이 없어서 학교 준비물을 못 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딸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제씨는 “처음에 약속한 대로 엄마는 도와줄 수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예진이는 준비물 없이 학교에 가야 했다. 그 뒤로 예진이는 ‘원하는 데’가 아니라 ‘필요한 데’에 돈을 쓰고, 나중에 돈을 써야 할 일이 있는지 등을 따져 본 뒤 계획을 세워 돈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항상 1만원 정도는 여윳돈으로 남겨 두고, 여윳돈이 더 쌓일 경우 엄마에게 맡겨 자기 명의의 적립식 펀드에 넣는다. 용돈관리능력이 커지자 용돈 액수도 늘려줬다. 현재 예진이의 용돈은 주당 5000원이다.


제씨는 예진이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 ‘사고 싶은 것’을 살 때는 3일 동안 세 번 가게에 가 본 뒤, 그래도 갖고 싶다면 사라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제씨가 아이를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짠순이’로 키우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대신 필요한 곳, 꼭 쓰고 싶은 데에 폼나게 쓰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그의 용돈교육의 목표다. 예진이는 아껴 모은 돈으로 3살짜리 동생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등 가끔씩 의미있게 큰 돈을 써 가족들을 감동시킨다.

아이가 용돈으로는 살 수 없는 비싼 물건을 꼭 갖고 싶어할 때도 제씨는 선뜻 사주지 않고, 아이에게 엄마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 보라고 한다. 최근에는 닌텐도 게임기를 사줬는데, 예진이는 “엄마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3주 동안 고민한 끝에 ‘동생 책 한 권씩 읽어주기’, ‘주말에 설거지 하기’ ‘한 달에 1만원씩 저금하기’ 등 9가지 다짐을 내놨다. 일종의 ‘특별용돈 벌기’인 셈이다. 욕구는 즉시 채워지는 것보다는 어렵게 채워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용돈교육을 하면 합리적인 의사결정능력을 키울 수 있고,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필요한 선택과 포기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요. 눈앞의 작은 욕구를 참고 미뤄 더 큰 목표를 이루는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맛볼 수도 있지요.”

제씨는 예진이와 함께 실천한 용돈교육 경험을 담아 최근 <현명한 부모들의 우리 아이 용돈교육법-당신의 자녀를 경제대통령으로 키워라>라는 책을 펴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아이를 현명한 소비자로 키우려면

물건 산 뒤엔 스스로 평가해보도록 해야

경제교육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소비자교육이다.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배순영 선임연구원의 도움말로 아이를 현명한 소비자로 기르는 방법을 알아봤다.

■ 사달라고 떼 쓸 때=일단 그 욕구를 인정해주고, 엄마가 인정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아이에게 표현한다. 그 다음에 “저게 예쁘니?”와 같은 질문을 한다. 처음 그런 대화를 나눌 때는 가능하면 사줄 필요가 있다. 차근차근 얘기하면 사준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물건을 사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아이에게 “처음의 네 생각처럼 그렇게 예쁘니?” 등과 질문을 해 스스로 평가해 볼 기회를 준다. 그런 뒤에는 점점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단계는 물건을 사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우고 욕망을 조절하는 일이다. 미리 종이에 사고 싶은 목록을 쓰는 것이 좋다.

■ 광고 보는 눈 키우기=가장 먼저, 우리가 즐겨 보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은 바로 그 상품을 만든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파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광고를 봤을 때 생기는 욕구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광고를 통한 충동적인 행동의 결과는 오래 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객관적인 소비자 정보와 일방적인 상업광고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신문을 통해 상업광고 지면과 정보 지면을 비교해 보도록 하는 것도 좋고 인터넷에서 공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와 상업적인 사이트의 차이를 설명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용돈 주기=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주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맨 처음에는 아이가 원하는 물건 값에 맞춰 수시로 주다 점차 일주일, 한달 단위로 늘린다. 용돈 액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기호 식품, 장난감, 책의 일부를 아이가 사도록 하고 평균적인 가격을 감안해 부모가 결정한다. 10대 청소년이 되면 가족회의를 통해 아이의 의견을 반영해 재량 범위와 액수를 정한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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