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사건’은 기독교근본주의와 이슬람근본주의 사이의 가장 격렬한 투쟁인 동시에 두 문명 또는 문화 사이의 격돌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를 ‘악의 세력’이라고 부르는 두 집단은 세계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이런 종류의 이질적 문화의 충돌이 국내에서도 생겨날 가능성을 미리 막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의 개별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통합논술 교과서 / ③ 문화에 우열은 없는가
관련 논제 해결하기 / 난이도 = 고등
[논제]
제시문에는 문화 수용에 대한 입장들이 나타나 있다. 이들의 주장을 크게 둘로 분류해 각각을 설명하고, 그 중 하나의 입장을 택해 주어진 사례를 평가하시오. [사례] 돼지숭배의 중심지는 뉴기니아와 남태평양 멜라네이사 군도에 있다. 돼지 애호자들은 기르고 있는 돼지를 자기 식구로 생각한다. 돼지 숭배를 하는 마링족은 12년에 한번 꼴로 돼지축제를 연다. 이 축제 때에는 자기 부족들이 기르고 있는 대부분의 다 큰 돼지를 한꺼번에 잡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이 축제는 거의 일 년이나 계속된다. 마링족은 이 축제를 ‘카이코’ 라고 부른다. 축제가 끝 난 후에는 두세 달 이내에 다른 부족과 전쟁을 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며 영토를 빼앗거나 빼앗긴다. 남아 있는 돼지들은 전쟁 동안에 드리는 제사에 바쳐진다. 돼지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전쟁이 종식되고 성역에 모여 ‘룸빔’이라는 작은 나무들을 심는다. 그리고 전쟁 마술사는 전쟁이 끝났으며 룸빔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 전쟁은 없다고 조상들에게 굳게 맹세한다. 그 때부터 살아있는 자들의 돼지 사육은 시작이 된다. 그리고 다시 ‘카이코’에 대비하여 충분한 돼지무리를 키워 놓았을 때에만, 무사들은 ‘룸빔’을 뽑고 전쟁을 준비한다. 축제의 완전한 한 사이클-카이코 이후 전쟁, 룸빔의 식목, 새로운 돼지사육, 룸빔의 벌채, 새로운 카이코 등으로 연속된다-이 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과 생산 활동에 적당한 인구 수 및 가축 수의 규모와 그 분배를 적절하게 조절한다. -제주교육청 전자도서관 자료 중 발췌 (가)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일종의 문화적 선민사상(選民思想)을 가지고 있어서 우월한 문화와 한민족(漢民族)을 연결시켜 생각하였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상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세계에 퍼져 나간다고 믿는 중국의 민족 사상이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은 <삼국지>등에서 처음 나타났다. 과거의 한족(漢族)은 이 사상을 통해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자랑해왔다. 과거 한족이 황허강 유역에서 농경 생활을 하면서 문명을 개척해 나갈 무렵 그 주위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한족은 다른 민족과 접촉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발달시켰는데, 문화가 무르익은 서주(西周)시대. 중국은 자신을 중화(中華), 동쪽의 우리나라를 동이(東夷), 서쪽의 민족을 서융(西戎), 남쪽의 민족을 남만(南蠻), 북쪽의 민족을 북적(北狄)이라 하였다. 당시 중국의 통치자들은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天子)로 칭함으로써 우월 의식을 더욱 고취하였다. 중화사상은 그 배후에 이민족을 천시하는 개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화이(華夷) 사상이라고도 한다.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진·한·당대에 이르러서는 중화사상이 극에 달했는데 당시 중국의 문화유산은 중화사상을 뒷받침하는 요소가 되었다. 진의 만리장성, 한의 서역길(실크로드) 개척, 당의 세계 제국 건설이 그것이다. 특히, 한과 당은 세계적인 대제국으로서 한의 서역길 개척으로 동·서의 교역이 처음으로 이루어져 로마의 사신을 받아들였고, 당의 장안은 당시 이미 백만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으며, 국제적인 제국답게 네스토리우스교, 기독교, 불교, 라마교, 조로아스트교 등 거의 모든 종교가 유포되었다. 그들은 예교가 없는 이민족을 성인의 도에서 벗어난 금수로 취급했다. 그래서 중국의 천자가 모든 이민족을 덕화(德化)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중촌원 <중국인의 사유방식, 중국인의 사유> 중 발췌·수정 (나) 다윈의 진화론과 실증주의에 영향을 받은 문화 진화론은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동일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의 방향도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고 가정하며, 문화 또한 원시적이고 저급한 단계에서 일정한 단계를 거쳐 고급의 우수한 문화로 발전한다고 본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E. B. 타일러는 종교가 애니미즘에서 생겨나 다신교로 옮아가 이윽고 일신교로 발전했다고 주장했고, J. G. 플레이저는 주술(呪術)에서 종교를 거쳐 과학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L. H. 모건은 사회의 발달을 몽매·야만·문명의 3단계로 나누어 문화 진화론을 전개했다. 문화 진화론에 따르면 옷을 입지 않고 사는 등 우리가 흔히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생활양식을 보이는 문화는 인류의 발달 진화 단계 중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 이들은 단순한 ‘연대상의 전후 관계’와 ‘발달·진화한다고 간주되는 인류의 진보’를 구별하는데, 이에 따라 동시대에 생존하고 있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문화적으로는 더 진보되거나 덜 진보된 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각 사회는 발달 정도나 진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특정한 척도에 의거하여 높고 낮은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입장을 적용하게 되면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산업혁명을 이끌어내고 발전시킨 가장 발달된 문명으로 간주된다. 이들 사회보다 미개한 사회의 경우 유럽 문명의 변천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국 이들 국가가 도달한 수준의 문명을 형성하게 된다. (다) 완전한 사회란 없다. 각각의 사회는 그 사회가 주장하는 규범들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불순물을 본디부터 그 내부에 지니고 있다. 이 불순물은 구체적으로, 숱한 잔인과 부정, 그리고 무감각이다. 우리는 이 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해야만 하는가? 민족학적 조사가 이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적은 수의 사회를 비교하면, 서로서로가 매우 상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사의 영역이 확대되어 나감에 따라서 이 차이점들은 점점 감소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어떤 인간 사회도 철저하게 선하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인간 사회도 근본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는 겉으로 볼 때, 어떤 일정한 수효의 불공정한 대접을 받는 일부 구성원들까지 포함한 모든 성원들에게 어떤 이점을 제공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일부 구성원이란 사회생활에서의 어떠한 타성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모든 조직적 노력에 장애물이 되는 구성원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만약 어떤 다른 사회의 관찰자가 우리를 조사하게 된다면, 우리와 관계된 어떤 사실이, 그에게는 우리가 비문명적이라고 여기는 식인 풍습과 비슷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들의 재판과 형벌의 습관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이것들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상반되는 사회형을 구별해 보고 싶어질 것이다. 즉, 식인 풍습을 실행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중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을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변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자기네의 육체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우리 사회와 같은 두 번째 유형의 사회는, 소위 말하는 앙트로페미(anthrop mie:특정인을 축출 또는 배제해 버리는 일)를 채택하는 사회이다. 즉,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여 우리와 같은 사회는 정반대의 해결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리와 같은 사회는 이 끔찍한 존재들을 일정 기간 또는 영원히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한다. 이 존재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시설 속에서 인간성과의 모든 접촉이 거부된다. 우리가 미개하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와 같은 사회의 이 같은 관습은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들이 오직 우리와는 대칭적인 관습들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들을 야만적이라고 간주하듯이 우리들 자신도 그들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 (라) 보편문명(universal civilization)은 18세기 이후 전개되고 있는 광범위한 근대화 과정의 결과이다. 근대화는 곧 산업화이며 도시화이다. 나아가 이것은 문자 해독률, 교육, 부, 사회적 유동성의 수준이 높아지고 직업 구조 또한 복잡 다양해지는 사회 변화를 말한다. 근대화는 18세기에 들어와 과학 기술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시작되었다. 덕분에 인간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로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화 과정은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의 이행, 다시 말해 기원전 5천 년을 전후하여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인더스 강 유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출현한 문명의 탄생에 버금가리만큼 혁명적이었다. 근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 가치관, 지식, 문화는 전통 사회의 그것과는 현저하게 다르다. 가장 먼저 근대화에 도달한 문명으로서 서구는 근대화의 문화를 남보다 한 발 앞서 터득하였다. 다른 사회도 이와 유사한 교육, 노동, 부, 계급 구조의 패턴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면 근대 서구 문화는 보편문명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마) 삶의 양식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 문화를 단순한 생활 양식으로 이해할 때,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과 다른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다른 집단과는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거든. 그것이 바로 ‘문화의 다양성’이야. 사람들은 사는 환경이 다르고, 전해 내려온 지식이 다르고, 인구 등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양식도 다를 수밖에 없지. 우리는 쌀밥을 먹는데 미국 사람들은 빵을 먹고, 미국 사람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곤 하는데 우리는 아무래도 그러지 못하는 등의 차이가 모두 그래서 생겨난 거야. 따라서 문화는, 어떤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해. 한 사회의 문화를 ‘그 사회’의 입장과 ‘그 역사’의 흐름에서 이해하려는 이러한 태도를 문화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라고 하지. 이런 입장에 서면, 어떤 사회에 존재하는 문화는 다른 사회에 비하여 어떤 것이 더 좋고, 더 우수하고, 도덕적인가를 평가할 수 없어. 얼마 전 이슬람 예언자 무하마드를 조롱한 덴마크 한 신문 만평 때문에 중동 지역의 덴마크 대사관이 불타고 이슬람권 전체가 벌집 쑤셔 놓은 듯 시끄러운 적이 있었지. 아무리 그것이 만화라는 형식을 빌렸다 해도 무슬림의 종교적 영성과 삶의 존재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문화 다양성의 시대에 자신과 다른 가치, 이질적인 종교적 신성성에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마땅해. 이 사건에서 우리는 서양인들의 서구 중심적 가치관과 문화적 편견을 확인할 수 있었어. -2007년 6월4일 <한겨레>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중 발췌
제시문에는 문화 수용에 대한 입장들이 나타나 있다. 이들의 주장을 크게 둘로 분류해 각각을 설명하고, 그 중 하나의 입장을 택해 주어진 사례를 평가하시오. [사례] 돼지숭배의 중심지는 뉴기니아와 남태평양 멜라네이사 군도에 있다. 돼지 애호자들은 기르고 있는 돼지를 자기 식구로 생각한다. 돼지 숭배를 하는 마링족은 12년에 한번 꼴로 돼지축제를 연다. 이 축제 때에는 자기 부족들이 기르고 있는 대부분의 다 큰 돼지를 한꺼번에 잡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이 축제는 거의 일 년이나 계속된다. 마링족은 이 축제를 ‘카이코’ 라고 부른다. 축제가 끝 난 후에는 두세 달 이내에 다른 부족과 전쟁을 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며 영토를 빼앗거나 빼앗긴다. 남아 있는 돼지들은 전쟁 동안에 드리는 제사에 바쳐진다. 돼지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전쟁이 종식되고 성역에 모여 ‘룸빔’이라는 작은 나무들을 심는다. 그리고 전쟁 마술사는 전쟁이 끝났으며 룸빔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 전쟁은 없다고 조상들에게 굳게 맹세한다. 그 때부터 살아있는 자들의 돼지 사육은 시작이 된다. 그리고 다시 ‘카이코’에 대비하여 충분한 돼지무리를 키워 놓았을 때에만, 무사들은 ‘룸빔’을 뽑고 전쟁을 준비한다. 축제의 완전한 한 사이클-카이코 이후 전쟁, 룸빔의 식목, 새로운 돼지사육, 룸빔의 벌채, 새로운 카이코 등으로 연속된다-이 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과 생산 활동에 적당한 인구 수 및 가축 수의 규모와 그 분배를 적절하게 조절한다. -제주교육청 전자도서관 자료 중 발췌 (가)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일종의 문화적 선민사상(選民思想)을 가지고 있어서 우월한 문화와 한민족(漢民族)을 연결시켜 생각하였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상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세계에 퍼져 나간다고 믿는 중국의 민족 사상이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은 <삼국지>등에서 처음 나타났다. 과거의 한족(漢族)은 이 사상을 통해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자랑해왔다. 과거 한족이 황허강 유역에서 농경 생활을 하면서 문명을 개척해 나갈 무렵 그 주위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한족은 다른 민족과 접촉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발달시켰는데, 문화가 무르익은 서주(西周)시대. 중국은 자신을 중화(中華), 동쪽의 우리나라를 동이(東夷), 서쪽의 민족을 서융(西戎), 남쪽의 민족을 남만(南蠻), 북쪽의 민족을 북적(北狄)이라 하였다. 당시 중국의 통치자들은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天子)로 칭함으로써 우월 의식을 더욱 고취하였다. 중화사상은 그 배후에 이민족을 천시하는 개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화이(華夷) 사상이라고도 한다.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진·한·당대에 이르러서는 중화사상이 극에 달했는데 당시 중국의 문화유산은 중화사상을 뒷받침하는 요소가 되었다. 진의 만리장성, 한의 서역길(실크로드) 개척, 당의 세계 제국 건설이 그것이다. 특히, 한과 당은 세계적인 대제국으로서 한의 서역길 개척으로 동·서의 교역이 처음으로 이루어져 로마의 사신을 받아들였고, 당의 장안은 당시 이미 백만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으며, 국제적인 제국답게 네스토리우스교, 기독교, 불교, 라마교, 조로아스트교 등 거의 모든 종교가 유포되었다. 그들은 예교가 없는 이민족을 성인의 도에서 벗어난 금수로 취급했다. 그래서 중국의 천자가 모든 이민족을 덕화(德化)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중촌원 <중국인의 사유방식, 중국인의 사유> 중 발췌·수정 (나) 다윈의 진화론과 실증주의에 영향을 받은 문화 진화론은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동일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의 방향도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고 가정하며, 문화 또한 원시적이고 저급한 단계에서 일정한 단계를 거쳐 고급의 우수한 문화로 발전한다고 본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E. B. 타일러는 종교가 애니미즘에서 생겨나 다신교로 옮아가 이윽고 일신교로 발전했다고 주장했고, J. G. 플레이저는 주술(呪術)에서 종교를 거쳐 과학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L. H. 모건은 사회의 발달을 몽매·야만·문명의 3단계로 나누어 문화 진화론을 전개했다. 문화 진화론에 따르면 옷을 입지 않고 사는 등 우리가 흔히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생활양식을 보이는 문화는 인류의 발달 진화 단계 중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 이들은 단순한 ‘연대상의 전후 관계’와 ‘발달·진화한다고 간주되는 인류의 진보’를 구별하는데, 이에 따라 동시대에 생존하고 있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문화적으로는 더 진보되거나 덜 진보된 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각 사회는 발달 정도나 진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특정한 척도에 의거하여 높고 낮은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입장을 적용하게 되면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산업혁명을 이끌어내고 발전시킨 가장 발달된 문명으로 간주된다. 이들 사회보다 미개한 사회의 경우 유럽 문명의 변천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국 이들 국가가 도달한 수준의 문명을 형성하게 된다. (다) 완전한 사회란 없다. 각각의 사회는 그 사회가 주장하는 규범들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불순물을 본디부터 그 내부에 지니고 있다. 이 불순물은 구체적으로, 숱한 잔인과 부정, 그리고 무감각이다. 우리는 이 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해야만 하는가? 민족학적 조사가 이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적은 수의 사회를 비교하면, 서로서로가 매우 상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사의 영역이 확대되어 나감에 따라서 이 차이점들은 점점 감소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어떤 인간 사회도 철저하게 선하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인간 사회도 근본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는 겉으로 볼 때, 어떤 일정한 수효의 불공정한 대접을 받는 일부 구성원들까지 포함한 모든 성원들에게 어떤 이점을 제공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일부 구성원이란 사회생활에서의 어떠한 타성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모든 조직적 노력에 장애물이 되는 구성원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만약 어떤 다른 사회의 관찰자가 우리를 조사하게 된다면, 우리와 관계된 어떤 사실이, 그에게는 우리가 비문명적이라고 여기는 식인 풍습과 비슷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들의 재판과 형벌의 습관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이것들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상반되는 사회형을 구별해 보고 싶어질 것이다. 즉, 식인 풍습을 실행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중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을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변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자기네의 육체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우리 사회와 같은 두 번째 유형의 사회는, 소위 말하는 앙트로페미(anthrop mie:특정인을 축출 또는 배제해 버리는 일)를 채택하는 사회이다. 즉,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여 우리와 같은 사회는 정반대의 해결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리와 같은 사회는 이 끔찍한 존재들을 일정 기간 또는 영원히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한다. 이 존재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시설 속에서 인간성과의 모든 접촉이 거부된다. 우리가 미개하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와 같은 사회의 이 같은 관습은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들이 오직 우리와는 대칭적인 관습들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들을 야만적이라고 간주하듯이 우리들 자신도 그들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 (라) 보편문명(universal civilization)은 18세기 이후 전개되고 있는 광범위한 근대화 과정의 결과이다. 근대화는 곧 산업화이며 도시화이다. 나아가 이것은 문자 해독률, 교육, 부, 사회적 유동성의 수준이 높아지고 직업 구조 또한 복잡 다양해지는 사회 변화를 말한다. 근대화는 18세기에 들어와 과학 기술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시작되었다. 덕분에 인간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로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화 과정은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의 이행, 다시 말해 기원전 5천 년을 전후하여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인더스 강 유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출현한 문명의 탄생에 버금가리만큼 혁명적이었다. 근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 가치관, 지식, 문화는 전통 사회의 그것과는 현저하게 다르다. 가장 먼저 근대화에 도달한 문명으로서 서구는 근대화의 문화를 남보다 한 발 앞서 터득하였다. 다른 사회도 이와 유사한 교육, 노동, 부, 계급 구조의 패턴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면 근대 서구 문화는 보편문명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마) 삶의 양식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 문화를 단순한 생활 양식으로 이해할 때,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과 다른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다른 집단과는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거든. 그것이 바로 ‘문화의 다양성’이야. 사람들은 사는 환경이 다르고, 전해 내려온 지식이 다르고, 인구 등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양식도 다를 수밖에 없지. 우리는 쌀밥을 먹는데 미국 사람들은 빵을 먹고, 미국 사람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곤 하는데 우리는 아무래도 그러지 못하는 등의 차이가 모두 그래서 생겨난 거야. 따라서 문화는, 어떤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해. 한 사회의 문화를 ‘그 사회’의 입장과 ‘그 역사’의 흐름에서 이해하려는 이러한 태도를 문화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라고 하지. 이런 입장에 서면, 어떤 사회에 존재하는 문화는 다른 사회에 비하여 어떤 것이 더 좋고, 더 우수하고, 도덕적인가를 평가할 수 없어. 얼마 전 이슬람 예언자 무하마드를 조롱한 덴마크 한 신문 만평 때문에 중동 지역의 덴마크 대사관이 불타고 이슬람권 전체가 벌집 쑤셔 놓은 듯 시끄러운 적이 있었지. 아무리 그것이 만화라는 형식을 빌렸다 해도 무슬림의 종교적 영성과 삶의 존재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문화 다양성의 시대에 자신과 다른 가치, 이질적인 종교적 신성성에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마땅해. 이 사건에서 우리는 서양인들의 서구 중심적 가치관과 문화적 편견을 확인할 수 있었어. -2007년 6월4일 <한겨레>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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