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눠준 재료들을 이용해 로보트, 배, 집 등을 스스로 만든 뒤 들어 보이고 있다.
테마가 있는 체험학습
‘마음대로 놀이터’
휴가를 다녀온 가족들은 여름이 끝나기까지 별 낙이 없다. 집안에 쳐박혀 그저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붙들고 찜통더위와 씨름해야 한다. 하나 애들까지 그렇게 붙들어둘 수는 없는 법. 놀고 싶어 좀이 쑤신 아이를 보고 있자면 집 근처 어디라도 가야 할 듯하다. 이런 참에 도심(충무아트홀 1층)에 ‘마음대로 놀이터’란 체험학습터가 마련됐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집을 떴다.
●“맘대로 만들어라”
로비에 들어서니 우선 시원해서 좋다. 아이가 뛰기 시작한다. 앞쪽에 나무로 만든 멧돼지가 널부러져 있다. 옆에는 자동차도 있다.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뿐만 아니다. 헬리콥터가 있는데 식판이 재료다. 신나는 표정을 놓칠새라 찰칵!
안으로 들어가니 비닐 커튼이 가로막는다. 커튼 안에는 금붕어가 헤엄치고 물에 푼 색색의 물감이 담겨 있다. 미로 같다. 첫번째 방의 이름은 ‘자연아이’. 강사가 작은 주머니를 하나씩 나눠줘 풀었더니 잡동사니 투성이다. 삼각형, 사각형 모양의 나무토막들과 솔방울, 빨대, 짚, 고무줄 등이 쏟아져 나왔다. 뭘 하라는 걸까? 강사 왈 “자 뭐가 들어있나요? 별 게 다 들어 있죠. 아무 거나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세요. 여러분 생각을 작품으로 만드는 겁니다. 자 시작!” 허탈했다. 2만원씩이나 주고 들어왔는데 강사는 아무 것도 안하고 아이들더러 맘대로 하라니….
부모들의 뜨악한 표정을 읽었는지 대표란 사람이 와서 몇 마디 설명했다. “미술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겁니다. 재료를 보고 떠오르는대로 만들면 되는 거죠. 점수, 기준을 따지는 건 진짜 미술 교육은 아닙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하루 미술교육 받는다고 아이가 기능이 숙달되고, 화가가 되는 것도 아닌데, 저 혼자 충분히 즐거우면 되지 않을까?’ 부모들은 방에 못들어가게 해서 비닐 커튼 틈으로 엿보니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던 아이들이 뭔가 만들기 시작한다. 토막을 쌓고, 나뭇가지를 자르고, 고무줄로 묶고, 매직펜으로 칠한다. 스삭스삭 하는 소리 말고는 고요 그 자체다. 가끔 강사가 “어, 이걸 붙이니 새롭네.” 하며 아이들을 격려한다.
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아이들은 작업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각양각색이다. 몸뚱아리는 짚, 치마는 스티로폼으로 된 인형, 나뭇잎 강아지, 사각형 까마귀, 과자 모양 집, 괴상한 모양의 곤충 집, 네모 바퀴가 달린 자동차 등. 부모들이 들어오자 저마다 자신의 작품을 들고, 조잘조잘댄다. 흰색 도화지에 파란 색 점을 찍은 작품을 만든 한 여자 아이는 “어제 오고 남은 비예요.”라며 엄마에게 설명한다.
기차를 만든 김정민(6)군이 “자 기차 출발합니다. 빨리 타세요.” 하며 달려가자 아이들이 졸졸졸 뒤를 따른다. 로보트를 만들었다며 침을 튀기며 자랑하던 내 아이도 로보트를 한 손에 든 채 기차놀이에 합류한다. 다른 아이들도 뒤따른다.
● 맘대로 놀아라 =
옆방으로 옮기니 푹신푹신한 육면체와 스티로폼 공들이 널려 있다. 물 만나 고기들이다. 난리가 난다. 던지고 굴리고 밀고… 난장판이 된다. 집단으로 한참을 떠들고 놀더니 지친 모습이 보인다. 이제 서너명씩 쪼개져서 논다. 육면체를 쌓아서 집을 만들고, 공굴리기 놀이를 하고, 구멍 통과하기 놀이를 하고, 폐타이어 그네를 타고- 아이들 모두들 제 멋대로 신나게 논다.
놀이방 뒤켠은 숨박꼭질 하기에 적당하다. 짚풀들이 깔려 있고 작은 통로가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곳곳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 꾀꼬리, 물방울, 개 소리 등. 이것도 일종의 장치. 아이들은 소리라는 자극을 시각적으로 기억해서 나중에 그림이나 만들기 등으로 표현하게 된다고
강사가 설명했다.
다시 방을 옮겼다. 이번엔 영상방. 초침이 째깍거릴 때마다 거기에 맞는 사람들의 일상이 보여지는 ‘모션 시계’가 눈길을 끈다. 낮 12시엔 밥을 먹고 오후 6시엔 퇴근하는 영상이 펼쳐진다. ‘디지털 애완견’이라는 작품은 아이들의 참여와 상호작용을 유도하기 위한 작품. 마우스를 움직여 쓰다듬으면 강아지는 애교를 부리고, 주먹으로 때리면 멍멍 짖고 얼굴을 찌푸린다. 작품의 주인공 김성민(38)씨는 “모든 일에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열린 사고, 자유로운 생각이 중요하다 =
학원, 박물관, 학습지, 책…. 자식을 잘 키우고자 하는 욕심이 부모를 조급하게 한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 이상으로 잠재 능력이 무한하다. 따라서 획일적 기준만 고집할 게 아니라 아이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충분히 존중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날밤 아이는 만들다 남은 재료들로 다시 뭔가에 도전했다. 2시간여를 낑낑대더니 만들어낸 게 ‘장수풍뎅이 놀이터’. 곤충통에 갇혀 있기만 한 장수풍뎅이가 불쌍했나 보다. 내일은 또 어떤 기발한 것을 만들어낼까 궁금해졌다.
*‘마음대로 놀이터’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어린이문화창조학교 도움아이(doum-i.com)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특강 형식으로 한달(7월29일~8월30일)동안 운영한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참여할 수 있다. 행사 주제는 ‘자연과 재활용, 영상’으로, 흙, 짚풀, 나뭇가지 등 생활주변의 소재를 활용해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루 3회(오전 10시30분, 오후 1시30분, 오후 3시30분) 2시간씩 진행된다. 2만원. (02)3473-3459.
글·사진 윤현주/나들이 칼럼니스트 whyrun@naver.com
부모들의 뜨악한 표정을 읽었는지 대표란 사람이 와서 몇 마디 설명했다. “미술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겁니다. 재료를 보고 떠오르는대로 만들면 되는 거죠. 점수, 기준을 따지는 건 진짜 미술 교육은 아닙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하루 미술교육 받는다고 아이가 기능이 숙달되고, 화가가 되는 것도 아닌데, 저 혼자 충분히 즐거우면 되지 않을까?’ 부모들은 방에 못들어가게 해서 비닐 커튼 틈으로 엿보니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던 아이들이 뭔가 만들기 시작한다. 토막을 쌓고, 나뭇가지를 자르고, 고무줄로 묶고, 매직펜으로 칠한다. 스삭스삭 하는 소리 말고는 고요 그 자체다. 가끔 강사가 “어, 이걸 붙이니 새롭네.” 하며 아이들을 격려한다.
한 아이가 종이상자를 잘라 만든 선인장을 만든 뒤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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